우승 그거 쉽던데?

김정용 기자 2024. 6. 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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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안첼로티 레알마드리드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카를로 안첼로티 레알마드리드 감독이 유럽의 제왕임을 확인시켜 준 결승전이었다.


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2023-2024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에서 레알마드리드가 보루시아도르트문트를 2-0으로 꺾고 우승했다.


안첼로티 감독이 다섯 번째 우승으로 UCL 최다 우승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굳건히 했다. 이미 2022년 네 번째 우승을 달성했을 때 확보한 타이틀이다. 그의 뒤를 이어 밥 페이즐리, 지네딘 지단,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3회 우승으로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선수 시절에도 축구 역사상 최강팀 중 하나로 꼽히는 AC밀란의 멤버로서 UCL(당시 유로피언컵) 2회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안첼로티는 감독으로 변신한 뒤 그 이상의 성공을 쟁취했다. 밀란 감독으로서 2002-2003, 2006-2007시즌 두 차례 우승을 가져갔다. AC밀란 감독 시절 자국리그와 자국컵을 통틀어 우승이 3회인데 UCL 결승에 세 번 올라 두 번 우승했다는 건 대외 경기에서 얼마나 강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다.


강팀을 맡을 때 진가가 발휘되는 안첼로티 감독은 첼시와 파리생제르맹(PSG)에서 조금 아쉬웠지만 세계 최고 명문 레알 지휘봉을 잡고 다시 정점에 올랐다. 그리고 바이에른뮌헨, 나폴리, 에버턴에서 아쉬웠던 모습을 레알 복귀 후 다 회복했다.


레알 1기 시절인 2013-2014시즌 UCL 우승을 차지했다. 레알이 통산 10회 우승 '라데시마'를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대 이하의 모습만 반복하고 있던 UCL에서 탁월한 전술과 리더십을 보여주며 정상에 올려놓았다. 이때 다져 놓은 우승 공식은 그의 코치였던 지네딘 지단이 후임 감독을 맡아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는 발판이 되어 줬다.


레알로 돌아온 안첼로티 감독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탈 이후 팀이 심각하게 흔들리던 와중에 중심을 딱 잡고 새로운 주축멤버를 발굴하면서 명문의 위용을 회복시켰다. 2021-2022시즌 카림 벤제마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드라마틱한 우승을 차지했다. 벤제마가 떠난 이번 시즌에는 원래 미드필더로 영입한 주드 벨링엄을 공격적으로 기용하는 혜안을 보여주며 다시 정상에 올랐다. 이번 시즌 레알은 개막 이벤트 경기인 수페르코파 데에스파냐(슈퍼컵) 우승으로 시작해 라리가와 UCL까지 가져갔다.


한때 자국리그에 약했지만, 요즘 안첼로티 감독에게는 그런 모습도 없다. 2021년 레알로 돌아온 뒤 3시즌 동안 우승컵을 9개나 따냈다.


안첼로티가 명문을 명문답게 이끄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주축 선수들의 기량을 극대화한다. 특히 유망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체기를 겪고 있던 비니시우스와 호드리구는 안첼로티 감독 부임 후 기량이 만개했다. 여기에는 현재 65세로 큰아버지뻘이지만 어린 선수들과 격의없이 지낼 수 있는 온화한 리더십이 큰 역할을 한다. 선수들이 스스로 원하는 바와 자신의 장단점을 주장할 수 있게 해 주고, 여기 맞춘 전술과 자신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카를로 안첼로티 레알마드리드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카를로 안첼로티 레알마드리드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두 번째 단계는 경기장에서 클래스 높은 선수들의 역량을 믿는 것이다. 34세 토니 크로스와 38세 루카 모드리치가 동시에 풀타임을 소화하기 힘들어지자, 크로스에게 70분을 맡기고 모드리치에게 막판 20분을 맡기는 식으로 두 선수를 나눠 한 명은 경기장에 서 있게 한다. 이들의 능동적인 경기운영은 지단 감독 때부터 선수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 우승해 온 원동력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들을 믿는 것이다. 원래 안첼로티 감독은 주전 선수의 기량을 극대화하는 플랜 A 구상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대회 도중 대처하는 능력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AC밀란 시절 우승하지 못한 시즌을 보면 극적인 역전패가 많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코치로 동행시키면서 한때의 인맥 논란을 넘어서 뛰어난 동반자로 성장시킨 다비데 안첼로티가 계속 감독의 계획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감독은 그 중 활용할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식으로 변화를 준다. 이를 통해 선발 라인업은 유지한 채 선수 배치를 미묘하게 바꾸는 승부수로 최대 난관이었던 8강 맨체스터시티전을 넘어섰다.


밤낮으로 팀의 모든 걸 고민하는 감독들에게 안첼로티 감독은 너무 쉽게 우승을 쟁취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억지로 건드리는 것보다 내버려두는 게 낫다. 안첼로티 감독은 건드려야 할 곳과 내버려둬야 할 곳을 잘 구분하며 다시 정상에 올랐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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