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톡]반도체지원금 뒤에 숨은 '노조' 변수…삼성전자는 괜찮을까
3월 보조금 발표 인텔에 "노조와 협력" 압박
미 노조 "인텔 반응 냉랭…마이크론과는 협상"
"인텔은 미국 상무부와의 사전 계약에 따라 오늘 발표한 투자로 창출되는 일자리에 채용되는 근로자들을 개발, 훈련하기 위해 인력 교육 제공자(교육기관, 주 및 지방기관,노동조합 등)와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오하이오와 애리조나 건설 현장에는 모두 노조 소속 건설 직원들이 있다. 행정부는 근로자의 단결권을 강력 지지한다. 인텔이 반(反)노조 컨설턴트를 고용하지 않는 등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근로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오랜 전통을 이어갈 것이라 기대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3월 20일 자국 반도체 업체인 인텔에 200억달러(약 26조8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보조금과 대출을 지원한다는 발표문에 이러한 내용을 담았다. 백악관 발표 직후 미국 기술·미디어 노동자를 대표하는 미국통신노동자연합(CWA)은 곧바로 "인텔이 반도체지원법을 통한 연방정부의 보조금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구속력 있는 합의(a Binding Agreement)에 서명해야 한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인텔이 직원의 자유로운 노조활동을 하도록 CWA와 협약을 맺으라는 압박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반도체 공장이 전기차 공장에 이어 미 노조의 다음 타깃이 됐다"며 CWA의 이러한 요구에 인텔이 냉랭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클라우드 커밍스 CWA 위원장은 "인텔과의 초기 논의는 안타깝게도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또 다른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과 협약을 맺는 것이 내 희망이자 소망"이라며 "이를 계기로 다른 반도체 업체들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지지' CWA, 마이크론과 협상 시작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반도체 보조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 문제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임기 내내 친노조 행보를 보여왔던 바이든 대통령이 미 대선을 앞두고 보조금을 볼모로 노조 표심을 잡기 위한 행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WA는 미 최대 제조업 산별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와 함께 올해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단체다.
커밍스 위원장이 언급한 마이크론은 이미 지난달부터 CWA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번 협상도 마이크론이 지난 4월 바이든 정부로부터 61억달러의 보조금을 받은 이후 시작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이크론 보조금 지급을 발표한 당일 공사 부지를 방문해 "마이크론과 노조가 만나 노동 평화를 논의하기 위해 협상 일정을 세운 것이 기쁘다"고 연설했다. 현장에 함께 있던 척 슈머 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마이크론은 노조와 함께 근로자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거의 유일한 대기업으로 앞장서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12월 공장 건설을 위해 건설 근로자들이 포함된 노조와 먼저 합의를 한 상황이다. 이를 바탕으로 마이크론은 건설 담당 인력 3700명을 노조 가입자에서 채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마니시 마티아 마이크론 글로벌 운영 담당 수석 부사장은 회사가 준비된 인력을 확보하고자 다른 반도체 업체와 차별화해 노조와 협력하고 있다는 발언을 내놨다.
마이크론은 앞으로 20년간 뉴욕에만 반도체 공장 4개를 짓기 위해 최대 10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현지에는 9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CWA와 마이크론 사이에 합의가 성사된다면 CWA는 2028년 공장이 문을 열 때까지 피켓 시위, 파업 등으로 마이크론을 방해하지 않으며, 마이크론도 CWA의 노조 설립 및 활동을 방해하지 않을 예정이다.
반도체법으로 영향력 키우는 美노조…기업은 '골머리'CWA는 이처럼 정부의 반도체지원법을 계기로 반도체 공장에 노조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공을 들이고 있다.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부터 이후 계약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회수하는 것까지 미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만큼 이러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글로벌 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고 커밍스 위원장은 설명했다.
실제 보조금을 받고자 노조를 활용한 기업도 있다.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반도체 업체 아카시시스템즈는 노조 가입자 내에서만 직원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회사가 정부 보조금 신청을 해둔 시점이었다. 이 회사의 펠릭스 데젝캄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역사상 반도체 업계는 노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바이든 정부가 여기(노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여기에 분명 기대보려 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블룸버그도 이러한 회사의 행보에 "역사적으로 노조를 반대하는 업계에서 보기 드문 움직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와 노조의 이러한 적극적인 협력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산업 자체가 노조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장을 365일 24시간 가동하는 반도체 업계 특성상 미국에서 종종 벌어지는 대규모 파업 등이 실제 발생할 경우 라인에 투입된 웨이퍼 등을 폐기할 수밖에 없어 타격을 입게 된다.
이에 평소 반노조 입장을 공개석상에서 드러내 온 장중머우 TSMC 창업자는 지난해 대만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노조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다소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2022년 TSMC의 애리조나 공장 착공식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를 '세계 최고'라고 강조하고 "TSMC의 두 번째 미국 공장 또한 노조의 힘으로 건설될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이를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창업자가 강하게 반발하는 TSMC마저도 미국의 친노조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TSMC는 지난해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 현장에서 숙련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TSMC의 인력 정책에 반발한 애리조나주 노동계가 주와 지역 정부에 TSMC의 비자 요청 거부 촉구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반발에 나서면서 공장 건설 자체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TSMC는 지난해 12월 애리조나 피닉스의 건설 노동자들이 소속된 현지 노조와 합의하고 인력양성, 근로자 안전, 외국인 근로자 활용 등에 대해 협약을 맺었다.
삼성전자 등 우리기업도 바이든 정부의 친노조 행보 영향권에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팹을 건설 중이다.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에 64억달러(약 8조9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인디애나주에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고, 퍼듀 대학교 등 현지 연구기관과 반도체 연구·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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