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은 명함에 '이 문구' 새겼다…지방 일반고의 의대진학 사투

최민지 2024. 6.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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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성여고 교장이 교내 자습실에서 학생들의 지방 고교생의 의대 진학에 대한 노하우에 대해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 “이제 우리 같은 평범한 지방 일반고에도 의대 진학의 ‘희망’이 생겼습니다.” "
전국 39개 의과대학이 모집요강을 공개하며 증원 절차가 마무리 되자, 김형길 부산 남성여고 교장이 한 말이다. 의대 정원이 확대로 ‘지역인재전형’ 모집정원이 늘어나며 지역 고교 졸업생이 의대를 갈 확률도 높아졌다는 의미다. 올해 입시에서 비수도권 의대 26곳은 지난해보다 두 배 가량 늘어난 1913명을 지역인재전형으로 뽑는다. 지역인재전형은 의대가 있는 권역 내 고교 출신 졸업자만 원서를 낼 수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 교장이 긍정적인 분석을 자신하는 데엔 근거가 있다. 최근 남성여고의 의대 진학 실적 덕분이다. 이 학교는 지난 3년 간 9건(중복합계)의 의대 합격 성과를 냈는데, 이 중 7건이 모두 지역인재전형 문을 통과한 케이스였다. 2024학년도 부산대·울산대·경상국립대·동아대 등 6건, 2022학년도 경상국립대 1건 등이다. 같은 기간 의예과와 입학 성적이 비슷한 SKY(서울·연세·고려대) 이공계열 합격생은 한 명도 없었던 걸 고려하면 ‘의대 지역인재전형 특화’ 학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도심 속 소규모 일반고 “학생부 바꿔 살아남았다”

남성여고가 의대 진학에 특장점이 있는 학교는 아니다. 학교는 부산 서부 원도심인 중구의 산복도로에 위치해있다. 인근엔 그 흔한 아파트 단지나 학원가가 형성돼있지도 않다. 학생 수가 적어 같은 재단의 중학교는 몇 해 전 폐교했다. 남성여고 역시 지난 2월 기준 졸업생이 122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2020~2021학년도만 해도 의예과 합격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원하는 입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김 교장은 그 답으로 본인의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별 모양의 교표 위에 ‘학생부 열심히 적는 학교’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부산 남성여고 교사들이 21일 교내 강당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발제에 나선 교사가 학생부 수정 방향에 대해 설망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비슷한 성적의 학생들끼리의 경쟁에서 차별점을 부각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가 학생부입니다. 그렇지만 일반고에선 같은 학교, 같은 과목 교사끼리도 학생부에 적는 내용과 분량이 다른 일이 흔해요. 퀄리티 보장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적어도 학생이 한 것은 제대로 적어줘야죠. 그래서 2022년 부임하자마자 교사들의 ‘학생부 수정 발표회’ 모임을 만들었어요. 서로가 쓴 학생부를 보며 비교하고 어떤 점을 수정해야할지, 잘쓴 학생부는 무엇인지 논의하는 자리를 과목별, 학년별로 운영하도록 했죠.”

교육과정에도 변화를 줬다. 학기말 1주일 간 융합 교과 수업만 몰아서 실시하는 ‘수업량 유연화 활동’ 등이 그 예다. “학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는 특징적인 수업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게 김 교장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의예과나 한의예과를 지망하는 학생을 위해 생물 과목 심화 수업을 개설하고 수업 중 맥박을 재어본다든가, 한의사들이 직접 진맥하는 부위가 어디인지 알아보는 과제를 수행하는 거죠. 학생 수가 적고 같은 수업이 한 주 간 연이어 진행되다보니 학생은 밀도 있게 전공적합성을 키우고, 교사는 학생을 자세히 관찰하게 됩니다.”


“상담은 진로지도 기본…학생 알아야 지원서 쓸 수 있어”

김 교장이 직접 학생 상담에도 나서기도 했다. 김 교장은 평범한 생물교사 출신이자, 10여 년 전 포털사이트에서 일반인끼리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지식인(IN)’ 코너가 유행하던 시절, 입시 상담 글에 수천건의 답글을 달던 ‘명예 지식인’이기도 했다. 부산시교육청에서도 진학지원단 교사로 활동해왔다.

“저는 매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상담을 합니다. 상담은 진학 지도의 기본이에요. 예를 들어 저희 학교에서 기회균형 전형으로 좋은 학교에 합격한 학생이 있었어요. 이건 학생이 대학이 요구하는 ‘저소득층’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걸 학교에서 알고 있기 때문에 지원이 가능한 케이스였습니다. 요새는 학생 개인 정보 때문에 스스로가 말하지 않으면 담임교사도 가정 형편을 알지 못하거든요.”

부산 남성여고에 설치된 노래방. 김 교장은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할만한 환경을 만드는 것도 교장의 몫"이라며 "수십명이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는 자습실부터 막간을 이용해 목청을 높일 수 있는 노래방 부스까지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장의 목표는 올해보다 조금 더 많은 학생들이 의예과에 진학하는 것이다. “의대 진학 실적이 좋은 학교의 지표는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 상담을 해보면 메디컬 계열에 진출하고 싶다는 학생이 전교생의 3분의1 가량 됩니다. 현실이 그렇다면 학생들을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도 학교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능 최저 등급만 맞추면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 학교 전교권 학생들도 충분히 의대에 도전할 수 있을 겁니다.”

부산=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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