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없이도 탄소 중립한다"…토요타 하이브리드 고집 속사정 [주말車담]

오삼권 2024. 6.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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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토요타‧스바루‧마쓰다는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차세대 엔진을 공동으로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왼쪽부터 오사키 아츠시 스바루 CEO ‧사토 코지 토요타 CEO ‧모로 마사히로 마쓰다 CEO. 사진 로이터

토요타가 차세대 엔진으로 탄소 중립(탄소 순 배출량 0)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에 힘을 주는 모양새다. 이쯤 되면 토요타의 ‘고집’ 또는 ‘집착’이라 할만도 하다. 이런 전략엔 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애국심 영향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28일 토요타는 일본 자동차 업체 스바루·마쓰다와 탄소 중립을 위한 신형 엔진을 공동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3사는 모터·배터리 등 전기 장치와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차세대 엔진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 엔진보다 출력은 높으면서도 크기는 작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또 3사는 새 엔진이 탄소 중립 연료와 호환되도록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토 코지 토요타 대표는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미래 에너지 환경에 맞는 엔진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토요타는 전기차 전환이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에 ‘올 인(All-In)’할 때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에 ‘배팅(Betting)’했다. 그 덕분에 토요타는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둔화) 시기에도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지만, 그늘도 있다. 부실한 전기차 라인업은 토요타의 약점이다. 지난해 토요타는 전 세계에서 1123만3039대를 팔았는데 이 중 하이브리드차는 344만대(30.6%)인 반면 전기차는 10만4018대(0.9%)에 불과했다.

토요타는 소비자에게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수소 등 여러 동력원을 제시하는 '멀티 패스웨이'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은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차 프리우스. 사진 뉴스1

토요타는 전기차 대신 다양한 동력원을 강조한다. ‘멀티 패스웨이’로 상징되는 토요타의 전동화 전략은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수소 등 여러 동력원을 제시하고 고객이 자신의 여건에 가장 잘 맞는 차량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아키오 회장은 지난 1월 “전 세계 10억 명의 인구가 전기 없이 사는 상황에서 비싼 전기차만을 내세우는 것은 답이 아니다”며 “순수 전기차 비중은 최대 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내연기관·하이브리드·수소차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토요타가 고집스럽게 내연기관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자동차 업계에선 일본의 평생직장 문화와 아키오 회장의 애국심에 주목한다. 미국 오토모티브뉴스는 30일 보도에서 “내연차 산업과 연관된 일본 내 일자리가 토요타의 전기차 전환을 더디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연차는 부품이 약 2만5000개~3만개로 전기차보다 부품이 2배 가까이 많다. 토요타의 내연차에 중요 부품을 납품하는 1등급(Tier 1) 공급 업체는 일본에 100곳 이상 있다. 내연차가 전기차로 대체된다면 기존 부품업체 일자리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평생직장 문화가 남아있는 일본에서 직원을 줄여야 하는 혁신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JAMA)는 “내연차와 관련된 일본 내 일자리는 약 550만 개에 달한다”며 “이들의 생계를 위협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전기차 전환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키오 회장도 자동차 산업 내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다.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전기차 전환이 늦다는 지적이 나오자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최전선에서 일하는 550만 명의 직원 덕분”이라며 “전기차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토요타는 1950년대 초 이후로 노사 분규가 한 번도 없었던 대표적인 노사 상생 기업이자 국민 기업”이라며 “자국 내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아키오 회장의 강력한 신념이 엔진 중심의 친환경차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일본 내 550만 개의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사진은 렉서스 전기차 앞에서 전동화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아키오 회장.

다만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토요타의 노력이 기대대로 효과를 볼 것이란 보장은 없다. 내연차 보호에 힘쓰다가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토모티브뉴스는 “직업 안정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하고 칭찬할 만한 목표”라면서도 “혁신이 너무 뒤처진다면 일본이 소중하게 여기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토요타의 전기차 없는 탄소 중립 전략이 실현되려면 계획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토요타는 “향후 몇 년 내에 차세대 엔진을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을 밝히지는 않았다. 또 탄소 중립 연료의 가장 큰 장애물인 비용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하지 않았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연구에 따르면 2030년 탄소 중립 연료의 가격은 휘발유 가격의 3~4배에 달한다. 게다가 탄소 중립 연료라 해도 연소 과정에서 약간의 질소산화물이 배출된다는 문제가 남는다. 하이브리드차 배팅에 성공했던 토요타가 신형 엔진 개발에도 성공할지 자동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오삼권 기자 oh.sam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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