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명동성당~시청앞~을지로입구... 광장 막혀도 서울에 뜬 무지개

복건우 2024. 6. 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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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1일 서울퀴어퍼레이드 성황... 수만명 3km 행진... "내가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곳"

[복건우 기자]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광장 건너편을 행진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무지개 깃발과 우산 등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 복건우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광장 건너편을 행진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무지개 깃발과 우산 등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 복건우
 
"(무지개 깃발을 건네며) 우리 같이 응원해요!"

행렬은 꺾이지 않았다. 무지갯빛 팔찌를 차고, 무지갯빛 망토를 두르고, 무지갯빛 티셔츠를 입은 성소수자들이 행진 말미 서울광장을 지나자 환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시민들은 서울광장 건너편에서 연대의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는 이들을 반겼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시의 사용 불허로 서울광장에서 열리지 못하게 된 퀴어퍼레이드는 대신 을지로에서 행사를 열고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다. 서울시의 '차별 행정'을 뚫고 아스팔트 도로로 나온 '사람들'의 힘이었다.

올해로 25회를 맞은 서울퀴어퍼레이드가 1일 오전부터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 무대가 있는 종각역을 출발해 명동성당과 서울광장을 지나 을지로입구역으로 돌아오는 3km 행진에는 성소수자와 지지자(앨라이·ally) 등 4만3000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일 년에 하루, 서울은 무지개빛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류완호(오른쪽)·고하연(왼쪽)씨가 무지개 망토를 두르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복건우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무지개 치마를 입은 김소리(오른쪽)씨와 친구 신지윤(왼쪽)씨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복건우
 
행진에 앞서 행사장엔 다양한 부스들이 눈에 띄었다. 60여 개 부스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미국·캐나다·호주 등 14개국 대사관, 서울대·연세대·중앙대 등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가 참여해 퀴어퍼레이드(퀴퍼)에 지지와 연대를 보냈다. 혼인평등법 입법을 촉구하는 캠페인 조직 '모두의 결혼'은 "#동성결혼", "#혼인평등", "#동성혼법제화"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프레임을 들고 참가자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큐앤에이'는 성소수자 연인들의 축복식을 집례했다.

각양각색의 '무지개'를 뽐내는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 무지개 망토를 두르고 행사에 참여한 하극(23·예명)씨는 "퀴퍼를 조금이나마 더 알렸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작년에도 퀴퍼에 참여했는데 언제 와도 재밌고 즐겁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무지개 치마를 입은 김소리(19)씨는 "해외에 살고 있다가 한국 오는 일정에 맞춰 서울 퀴퍼가 열려서 처음으로 즐겁게 참여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퀴어퍼레이드는 친구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기도 했다. 친구 사이인 변정원(22)·신인아(22)씨는 "퀴퍼가 처음이라 떨린다. 퀴어 문화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다른 축제들처럼 똑같이 즐기러 왔다"라고 말했다. 류완호(28)·고하연(27)씨는 "사회적으로 나를 드러내지 말라는 분위기 속에서 일 년에 하루는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라고 했다.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황고운(오른쪽)씨가 어머니 신영란(왼쪽)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복건우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왼쪽)이 발달장애인 동생 장혜정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복건우
 
교사 황고운(36)씨는 어머니 신영란(61)씨와 함께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부스를 둘러보던 황씨는 "퀴퍼에 올 때마다 부모님과 같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같이 오자고 했다"라며 "뉴스에서 자극적으로 떠드는 것만 보면 퀴퍼에 편견을 갖기 쉬운데, 여기 사람들이 행복하고 따뜻해하는 것을 부모님께도 보여드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딸한테 끌려왔다"라며 "처음이라 설레고 쑥스럽다. 퀴어행사라기보다 그냥 축제에 온 것 같다"라고 웃어 보였다.

"딸한테 끌려왔어요... 그냥 축제에 온 것 같은"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을 내린 서울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무지개 스카프를 두르고 축제에 참여한 여우별(23·예명)씨는 "불허라는 단어 자체가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구·경남 퀴퍼는 자주 갔는데 서울은 처음"이라며 "지역별로도 혐오가 없어져서 한국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퀴어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발달장애인 동생 장혜정씨와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 장 전 의원은 "공권력에 의한 성소수자 차별이라는 맥락 위에서 열린 축제이기에 진보 정치의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왔다"라며 "이번 퀴퍼에선 모든 연대가 연결돼 있다"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전통 문양을 상징하는 카피예(흑백 체크무늬) 스카프를 착용한 그는 "한국 정부의 이스라엘 무기 수출 문제를 그동안 지적해온 만큼 이런 연대의 장에서 (팔레스타인을 위해) 같이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출교당한 이동환 목사가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 연인의 축복식을 집례하고 있다.
ⓒ 복건우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출교당한 이동환 목사가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 연인의 축복식을 집례하고 있다.
ⓒ 복건우
 
오후 4시 30분부터 서울 도심을 활보하는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K팝 아이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며 무지개 깃발과 펼침막을 흔들었고, 행렬은 시민들의 응원과 함께 서울광장을 거쳐 다시 을지로로 돌아왔다. 행사장 인근과 서울광장 건너편에서 기독교단체 등 퀴어퍼레이드 반대 집회가 벌어졌으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위원장은 취재진과 만나 "이번 퀴어문화축제가 긍정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축제임을 얘기하기 위해 '예스 퀴어(YES, QUEER)'라는 슬로건을 함께 만들었다"라며 "축제에 처음 오는 분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을 갖는데, 현장에 오면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 중 하나로, 지난 2000년 처음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이외에도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레인보우 굿즈전, 제24회 퀴어영화제 등의 세부 행사를 준비했다. 15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지난달 27일 시작돼 오는 18일까지 계속된다.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도심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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