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동료 교사들이 거주지로 선택한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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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 기자]
▲ 동료 선생님의 집 앞 풍경 |
ⓒ 최승우 |
시간이 흐르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변화에 직면한다. 특히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정신적·육체적으로 뒷걸음치는 나를 마주한다. 검은 머리에 흰머리가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고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쉼 없이 지상 낙하 운동을 감행한다. 오래전 다쳤던 무릎은 참아온 아픔을 한꺼번에 쏟아내 조금만 걸어도 아프다고 난리다. '공부도 때가 있다'라는 말도 새롭게 시작한 공부에서 절실하게 느낀다. 새로운 장을 넘기면 이전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망각 체험을 시시각각으로 경험한다.
청·장년 시절 성장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변화에의 순응과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가 실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특히 건강한 노후를 위한 주거 문제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젊은 시절 치열하고 고단했던 경쟁적인 삶 속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열망하나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기껏해야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을 뿐이다.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쓴 배지영 작가는 "복잡한 도시가 싫어서, 젊은 날을 돈 버는 데만 쏟는 게 싫어서,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가정과 일의 조화를 찾고 싶어서, 서울 밖 사람들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회사 임원이 되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서울을 떠났다. 그리고 소도시에, 고향에, 산골에, 시골에 정착했다"라는 3·40대 7명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삶은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며 '선택과 결정' 뒤에 오는 결과는 오로지 자신의 책임이다. 도시의 삶을 떠나 시골을 선택한 젊은이의 용기와 결단, 두려움 없는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에게 거주지 선택은 좀 더 복잡하고 현실적이다. 외로움과 두려움, 생소한 환경과 건강에 대한 염려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쉽지 않으며 얼마 남지 않은 제한된 선택의 기회이기에 결정하기 더욱 어려운 문제다.
▲ 동료 선생님의 주택 |
ⓒ 최승우 |
정신적·육체적 변화와 생존의 문제를 겪고 있는 60·70대의 거주지 선택 기준은 무엇일까? 내 경우에는 질병에 취약한 구십이 넘은 노모와 익숙한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 속에 도시 생활을 하고 있다.
정년퇴직한 동료 선생님은 도시 근교 면 소재지를 거주지로 삼았다. "저는 지금까지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남편이 아파트의 답답함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툭 터진 공간을 좋아해서 시골로 거주지를 옮겼네요." 선생님은 퇴직 후 정원에서 보내는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울타리 안에서 즐길 수 있는 편안함이 있어 좋다고 한다.
면 소재지의 '지역 건강 생활 센터'에서 무료 제공하는 치매 예방,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새로운 친구도 사귈 기회가 있어 여러모로 시골 생활에 만족해한다. "시골에 살아도 KTX 역이 가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쉽게 집에 올 수 있도록요." 선생님은 시골 생활의 여러 가지 이점을 말하며 교통 조건도 중요한 거주지 선택 조건임을 강조한다.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친구도 응급 시 쉽게 서울 소재의 병원에 갈 수 있도록 KTX 역이 있는 곳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어떤 사람은 '많은 노동과 쏠쏠한 즐거움'으로 주거 공간을 정했고 또 다른 사람은 '건강상의 이유'로 교통의 편리함을 갖춘 곳을 삶의 장소로 선택했다.
과학을 가르쳤던 후배 교사는 과학·기술문명에 따른 대기 오염과 기온 상승 등 기후 환경 변화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집은 어린 시절은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 청년 시절은 획득해야 할 목표, 장년 시절은 자산 관리 수단 그리고 노년은 주거로서의 가치가 큰 것 같아요." 시절에 따른 주거의 의미를 말한다.
▲ 후배 선생님의 주택 |
ⓒ 최승우 |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한정된 재화의 모순 속에 서로 많은 것을 얻으려는 무한 경쟁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경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승자가 모두 가지는 냉혹한 현실에서 패자에게는 남은 선택지가 별로 없어 주어진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주거의 문제에도 그들에게는 어떠한 결정권이 없고 주어지고 강요된 환경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원하는 주거의 선택은 일부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에 지나지 않고 다수의 노인에게는 해결하지 못한 삶의 숙제이다. 아래 <아시아 경제>(2020. 5. 20) 기사는 노인 주택 문제의 해소라는 우리의 당면 과제에 시사점을 준다.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한 것이 일본 노인 주택 정책의 핵심이다. 덕분에 중산층 노인주택(서비스 제공형 고령자주택·주택형 유료 노인 홈)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일본 노인 주택 플랫폼인 '카이고 홈'에 따르면 20일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2만 개가 넘는다. 시장이 포화상태라 폐업하는 곳까지 생겨날 정도로 변했다."
베이비붐 세대와 산업화 시대를 거친 60·70대의 주택 문제 해결에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재정 확대가 요구되며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미래 사회의 목표와도 맞닿아 있다. 나이 듦이 패자의 저주로 이어지는 슬픔보다는 삶의 연륜이 담긴 진정한 기쁨의 순간이 되면 좋겠다. 노인들 모두는 어느 젊은 시절 '갓생'의 삶을 살았다. 단지 원했던 결과만 다를 뿐이다.
평균 수명의 연장은 삶의 축복이면서 저주일 수 있다. 미처 준비하지 않은 노후의 삶은 연장된 시간이 주는 고통의 연속선일 따름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자유 경쟁의 성격을 가지지만 경쟁 과정에서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하듯 경쟁에서 패한 사람을 위한 결과의 공정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 국가 주도의 노인 주택 공급과 유지는 국가 재정의 부담을 가져오지만, 노인의 주거 불안으로 인한 사회 문제의 발생과 사회적 비용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국가가 앞장서 노인 주거 정책을 적극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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