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고 버스 드물 때 전화하세요, 막막할 때 찾아오는 특별한 택시
농촌지역인 충북 옥천의 청소년, 자녀를 양육하는 주부, 면 지역 주민, 고령운전자 등을 만나 이들의 생활 속 이동권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5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월간 옥이네]
▲ 읍내 오일장에 나가 텃밭 채소를 파는 조경남(90)씨는 최근 다람쥐택시를 처음 이용했다. |
ⓒ 월간 옥이네 |
충북 옥천읍에 위치한 옥천역을 기준으로 마을까지는 약 20km. 승용차로는 20여 분이 걸리며, 택시를 타는 경우 약 2만5700원의 요금이 발생한단다.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있는 버스를 이용한다면 버스 이동 30분과 도보 20분, 도합 50여 분이 소요된다고. 옥천읍에서 가까운 듯 먼 이 마을은 지난 3월 다람쥐택시 신규마을로 선정된 안남면 화학2리 수일마을이다.
버스 타기 어려운 마을 위한 '다람쥐택시'
다람쥐택시는 버스노선이 닿지 않는 마을 주민들의 이동을 돕는 교통수단으로, 2015년 10월 6개 마을 시범운행 후 2016년 1월 13개 마을로 본격적인 운행을 시작했다. 다람쥐택시는 매년 신규마을을 추가 선정해 현재 34개 마을에서 운행 중이다.
2024년 3월 추가로 선정된 신규마을은 7개(▲동이면 상촌리·용운리 ▲안남면 도덕2리·연주2리·도농2리·화학2리 ▲군서면 사정리). 원래 '마을 거점에서 버스정류장까지의 거리가 1km, 이용 대상 인원이 10세대 15명 이상'이던 기준이 '0.7km, 5세대 10명 이상'으로 완화되며 운영마을로 선정될 수 있었다. 올해 다람쥐택시 운행이 시작된 수일마을은 그 편리함을 이제 막 누리기 시작한 셈이다.
조경남(90)씨는 5일에 한 번은 꼭 읍내를 나간다. 텃밭에서 키운 작물과 산에서 뜯은 나물 등을 오일장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다. 가장 가까운 정류장은 마을 입구에 놓인 느티나무에서 0.9km 떨어진 점촌 정류장. 여기까지도 걸음으로 15분이 걸리지만, 이곳은 버스가 자주 서는 곳이 아니기에 아랫마을에 있는 청정 정류장까지 가야 한다. 청정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20분, 마을로부터 1.2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정류장까지 가는 길 중간중간 경사가 심한 내리막이 있고, 올해 아흔 살이 된 경남씨에게 1km는 꽤 긴 거리이기에 그가 택한 방법은 전동차다.
▲ 충북 옥천 안남면 수일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점촌정류장 풍경 |
ⓒ 월간 옥이네 |
취나물, 미나리따위를 조금씩 들고 나가는 날은 버스로도 충분히 다녀오곤 하는데, 문제는 장터에 가지고 갈 작물이 많은 날이다. 올해 3월부터 다람쥐택시가 마을에서 운행을 시작했어도 여전히 익숙한 버스를 타던 경남씨지만, 최근 버스를 고집하지 못할 일이 생겼다.
"얼마 전에 텃밭에서 대파를 수확했어. 장에다 가져다 팔으려고 봤더니 10단이나 나온 거야. 버스정류장까지는 전동차 타고 옮길 수 있는데, 거기서 버스에다 그 짐을 어떻게 싣고, 또 그걸 파는 데까지 어떻게 가지고 가. 혼자는 못하겠어서 다람쥐택시를 불렀지. 사실 다른 사람한테 대신 불러 달라고 했어. 나도 번호가 있긴 한데, 처음이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더라고(웃음). 그래도 다람쥐택시 덕분에 잘 팔고 왔지."
다람쥐택시가 낯선 경남씨를 위해 대신 전화를 걸어준 이는 이웃 김일순(82)씨다.
"아니, 새벽에 택시 좀 불러달라고 연락이 왔더라고. 그때가 새벽 6시였나. 기사한테 전화를 해봤는데 받지를 않어. 새벽이니까 자고 있었던 거지. 좀 기다리니까 전화가 오더라고. 그래서 7시 30분쯤에 타고 가셨을 거야. (…) 아유, 전화를 못하긴 왜 못해. 아들들한테 전화하잖아.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다음엔 직접 해봐요."
▲ 왼쪽부터 조성열, 김일순씨 |
ⓒ 월간 옥이네 |
경로당 활동 지원사업인 쿡클린 참여자 일순씨는 평일 점심마다 마을 식사를 준비한다. "쿡클린 사업 교육 참석, 장보기 등 옥천읍에 나갈 일이 많다"는 그는 자가용이 없는 터라 버스를 이용한 외출이 많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의 울창한 가지와 잎사귀가 만든 그늘을 뒤로 하고 마을 아래로 향하는 길은 농암저수지 풍경과 걸음을 같이 한다. 산과 물을 친구 삼아 걷는 길은 일순씨에게 좋은 운동 핑계가 돼 줬다. 올해 초 무릎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운동 삼아 걸어 다니며 버스를 이용했던 그였지만, 수술 후 6개월 간은 경과를 지켜봐야 하기
에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기가 어려워졌다. 앞으로 어떻게 이동하나,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수일마을이 다람쥐택시 신규마을로 선정된 것은 경남씨에게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차가 없으니까 버스를 타고 다녔지. 무릎 수술을 하고 나니까 무릎이 아파서 빨리 걸을
수도 없고, 힘들더라고. 요즘은 버스 말고 다람쥐택시를 타고 다녀. 아마 우리 마을에서 내가 제일 많이 타고 다닐 거야(웃음). 지난 달에만 7번 탔을걸?"
다람쥐택시는 마을마다 2대가 배차되는데, 1일 4회(편도 기준) 운영 제한이 있다. 이는 최소 운행이 2회인 다른 마을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함이란다. 오고가는 횟수로 하루 2번까지만 이용할 수 있기에, 간혹 이용하지 못하는 주민이 생기기도 한다. 이에 수일마을 주민들은 시간을 맞춰 함께 외출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 버스 시간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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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상규씨가 마을 주민을 청정정류장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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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택시는 마을에 새로운 편리함을 가져다 줬지만, 마을과 옥천읍만 이동 가능하고, 횟수 제한도 있다보니 여전히 도보 20분 거리의 버스정류장을 찾는 주민이 많다. 민상규(91)씨는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1인용 전동기가 아닌 4인용 전동카트를 운전해 다니는데, 버스정류장으로 나가는 주민이 생기면 자주 태워다 주곤 한단다. 마을 구호가 "열심히 일하자, 굳게 뭉치자, 서로 받들자"일 만큼 단합이 잘 되는 마을로 이름을 날린 수일마을의 유명세답게 서로를 위하는 정겨운 풍경이다.
"전동카트에 자리가 있으니 태워다 주는 거죠.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경사진 길을 지나기가 위험하긴 한데, 왔다 갔다 30분도 안 걸려요. 읍내 가는 버스 3시 10분에 있으니까 잘 타고 가요."
월간옥이네 통권 83호(2024년 5월호)
글·사진 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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