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으로, 구의역으로, 광주로... "나는 유족" 고백한 하림의 5월

복건우 2024. 6. 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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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홀로서기 후 1년, 그가 간 현장들... 연이어 부르게 되는 "더는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노래"

[복건우, 이정민, 소중한 기자]

▲ 구의역 참사 8주년, 하림 추모공연 현장실습생 김군이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 전동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지 8년이 되는 28일 오후 서울시노동센터협의회 주최로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역사에서 '구의역 참사 8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가수 하림이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 이정민
    
ⓒ 최주혜

추모곡 '그 쇳물 쓰지 마라(그쇳물)'가 흘렀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로비 중앙에 설치된 롤랜드 키보드 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8년 전 2016년 5월 28일 이곳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몸이 부서진 김군(당시 19살)의 죽음을 추모했다.

40여 명이 참석한 '구의역 참사 8주기 시민추모식'은 익숙하고 차분하게 진행됐다. 일터에서 깔려 죽고, 끼여 죽고, 떨어져 죽는 절망을 따라 불리는 노래가 구의역 참사가 발생한 9-4 승강장과 그 아래 놓인 국화와 컵라면을 떠돌았다. '산업재해'로 너무 많은 청년이 죽었다며 애도하는 목소리로, 죽음에 죽음을 잇대는 목소리로.

"안전한 내일이 왔으면 좋겠단 바람으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노래가 갖고 있는 메시지와 힘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의 마음을 울리는 일이 됐으면 합니다."
 
▲ 하림 - 그 쇳물 쓰지 마라 [구의역 참사 8주기] ⓒ 소중한, 복건우

   
가수 하림(48)은 이날 처음으로 구의역에서 '그쇳물'을 불렀다. 지난 2010년 충남 당진 철강공장에서 섭씨 1600도가 넘는 용광로에 떨어져 숨진 청년 노동자를 기리는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에 하림의 멜로디가 더해진 노래였다. 2020년 노래를 만들 당시 하림은 "가사와 멜로디와 감정이 딱 맞아떨어질 때까지" 그 시를 소리 내어 읽었고, 어느 늦은 저녁 구의역으로 향했다. 열차에서 내리는 "일하는 사람들의 구겨진 옷과 몸 냄새와 지쳐 있는 모습"을 승강장에서 30분 가까이 지켜보고 나서야 노래를 완성했다. 당진 철강 노동자의 죽음 위로 김군의 죽음은 그렇게 겹쳐졌다.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쇳물' 중)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동요 같기도 하고,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풀어낸" 가곡이나 민중가요 같기도 했다. 장조와 단조를 번갈아 이동하는 가사들은 단조에 머무는 사각지대 노동자의 현실을 하나하나 쪼개어 드러냈다. 구의역 참사가 발생한 2016년 1777명과 비교하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2021년 2080명, 2022년 2223명, 2023년 2016명으로 늘어났다(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분석).

히트곡 가수가 고민하는 음악의 쓰임새
  
▲ 8년이 지나도 그대로 "다음 김군에겐 안전한 일터를" '구의역 참사 8주기 추모식'이 열린 구의역의 승강장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귀와 컵라면, 국화 등이 놓여 있다.
ⓒ 이정민
  
ⓒ 이정민
 
공연장이 된 지하철 로비는 "연극 무대" 같았다. 선로로 들어오는 열차가 역사를 쿵쿵 때리는 소리, 승강장의 소음과 역무원의 안내 방송이 '구의역 참사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손팻말 문구와 섞여 하림의 공연을 이뤘다. 그는 노래에 귀 기울이는 관객들의 눈동자를 보며 "5~10초마다 울컥거림"을 느꼈다. 세 곡으로 예정돼 있던 공연은 다섯 곡까지 늘어났고 노래를 시작할 때마다 그의 시선은 관객 너머 허공을 향했다.

하림은 '그쇳물'에 이어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우사일)', '열대야의 뒷모습', '위로', '소풍'을 불렀다. 그는 공연을 마치고 김군이 스러진 승강장 앞에 국화를 내려놨다. 이날 추모식은 90분 가까이 진행됐다.

하림은 5월 내내 노동절, 5·18 민주화운동 등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해 소속사(미스틱스토리)를 12년 만에 나온 하림은 '그쇳물' 챌린지(함께 부르기) 같은 사회적인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난치병', '출국' 등 "히트곡이 있는 성공한 가수"이지만 음악의 쓰임을 계속 고민했다.

노동 문제에 관심이 커진 뒤로 그는 음반판매·방송·행사로 대표되는 '음악 시장' 대신 집회·파업 현장을 찾아 노동자들을 위해 노래했다. 택배노동, 청소노동 등 필수 노동을 떠올리며 지난해 '우사일'과 '열대야의 뒷모습'을 잇달아 공개했고, '우사일' 챌린지는 그림책으로 출간돼 북콘서트로 이어졌다.
 
ⓒ 이정민
 
ⓒ 이정민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공간이 부족한 음악 생태계에서 하림의 무대는 노래와 사회가 만나는 다리가 되었다. "누군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을 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 그에겐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연도 '대중 가수'이기에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음악가로서 어떤 음악을 할 것인지" 40대 중반부터 이어져 온 그의 고민은 "돈과 인기가 아닌 사람과 세상에 노래가 작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묻어났다.  

추모식에서도 하림은 공연 중간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도 일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예술 노동자라고 얘기하면서 저와 친구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우사일')입니다. 이 노래가 더는 들리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부른 '우사일'에 한 남성은 고개를 들고 눈물을 삼켰고, 한 여성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쳤다. 하림은 '일상화된 죽음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해 노래를 불렀다.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그가 음악을 매개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었고, 이 사회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용기로 고백한 5·18 가족사
  
 가수 하림이 '구의역 참사 8주기 추모식' 공연을 마친 뒤인 28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공유공간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복건우
 
"세상 공부나 좀 하자."

추모식 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하림은 20년 전을 이렇게 떠올렸다. 2집 앨범을 '상업적으로' 실패한 하림은 한국을 떠나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인도 등 세계를 유랑하며 각 지역 음악(월드뮤직)을 공부했다.

처음엔 국가의 이야기에서 나중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관심이 옮겨 갔다. "지배자가 아닌 피지배자의 음악"을 따라 "힘들고 약한 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월드뮤직의 역사"가 펼쳐졌다. 그 경험은 한국에 돌아와 '기타 포 아프리카(공연 수익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기타 지원)', '국경 없는 음악회(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 공연)' 등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고통과 이동, 디아스포라(본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의 이야기들이 월드뮤직의 주된 음악사이거든요. 세계 어디를 가도 음악은 강한 자들의 마음을 대변하지 않아요. 제 음악도 그걸 닮아 자연스럽게 흘러간 거죠."

하림의 진혼곡은 '오월 광주'에서도 불리었다. 지난 14일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 상설무대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자신도 유족임을 처음 고백했다.

"셋째 외삼촌이 5·18 때 신장이 망가져서 평생 아프게 살다 돌아가셨습니다. 외삼촌은 5·18 피해자이고 저는 유족입니다.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어요. 오늘 이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가수 하림이 어머니와 함께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로 세상을 떠난 외삼촌이 안장돼 있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찍은 사진.
ⓒ 하림
 
4~5년 전 광주에 공연하러 갈 때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광주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던 외삼촌이 실은 5·18 때 군인들에게 맞아 건강이 악화해 돌아가셨다는. 훗날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아 현재 국립5·18민주묘지에 묻혀 있더라는. 외삼촌 전엔 '인혁당 사건'에 휘말려 간첩으로 조작돼 두 차례 옥에 갇혔던 외할아버지가 있었다는. 그렇게 오랜 시간 가족을 괴롭힌 슬픈 수난사를 "굳이 알아서 좋을 일 없으니" 밖에다 이야기해선 안 된다는.

"5·18 피해자라고 말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슬프고 답답했어요. 법과 제도는 약자들의 편이 아니구나. 결국엔 용기가 필요하고 주변의 연대가 필요하구나. 그날 (광주에서의) 공연에도 저희 외갓집 같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많이 아팠다고, 우리의 피해를 당당히 얘기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알려드리고 싶었죠."

그는 광주에서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고해성사' 등 일곱 곡으로 공연을 만들었다.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삶으로 5·18과 민주주의를 노래했다. 외가의 비극과 그것이 44년 동안 하림에게 흘린 이야기들이 45분 가까이 연주됐다. 5·18 44주년 당일 하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가족사를 공연 사진과 함께 공유했다. 그 여파로 "북한 공작설, 가짜 유공자설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악플을 많이 받았지만 "그렇게 뭉친 화난 마음을 평안과 감동으로 풀어주는 것"조차 음악의 힘이라고 하림은 믿었다.

'일합니다'에서 '노래합니다'로
  
 가수 하림이 지난 14일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 상설무대에서 열린 '너의 오월을 들려줘' 음악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 유튜브 오월의 노래
 
5월이 아니어도 현장이 있는 거리라면 하림을 볼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 49재(2022년 12월 17일)를 맞아 이태원역 앞 도로에서 하림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건반에 손이 짝짝 달라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였는데도 "유족들의 파란 눈동자"가 조명처럼 밝게 빛났다. 지난 4월 22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 시민센터에서 공연을 마치고 참사 희생자 신애진씨 아버지 신정섭씨를 만났다. 하림은 신씨가 만든 딸의 그림책을 '우사일' 그림책과 주고받았다. "비극들의 맞교환"이었다.

"이런 목소리를 같이 내고 노래하는 뮤지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동물이든 성소수자든 학교폭력 피해자든 모두의 이야기가 노래의 소재가 될 수 있으니 각자의 선한 생각을 자유롭고 용감하게 펼칠 수 있었으면 해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오는 6월 하림은 인디 가수들과 새로운 기획을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합니다' 프로젝트다.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료들(50명 이상 모집 예정)이 다른 동료들을 위해 노래 '우사일'을 부르고 그렇게 발생한 수익이 음악인들의 정신 건강 지원에 쓰이도록 전태일의료센터에 기부하기로 했다. '우사일' 프로젝트의 마지막 기록이다.

하림의 이런 행보는 뮤지션의 '책임' 같기도 하고 '직업윤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의 새길을 먼저 모색해 온 그가 동료들과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제안은 따로 있었다.

"책임보단 용기라고 봐야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세상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용기. 그저 음악이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에요. 제가 해봤더니 그렇게 큰 문제 없어요(웃음)."
 
▲ 하림 - 우사일 [구의역 참사 8주기] ⓒ 소중한, 복건우

 
▲ 하림 - 열대야의 뒷모습 [구의역 참사 8주기] ⓒ 소중한, 복건우

 
▲ 하림 - 위로 & 소풍 [구의역 참사 8주기] ⓒ 소중한,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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