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의연한 '얼차려'로 군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서부원 2024. 6. 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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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훈련병 사망 사건이 떠올리게 한 군 생활의 기억

[서부원 기자]

▲ 얼차려 중 쓰러진 훈련병 영결식 엄수 30일 오전 전남 나주시 한 장례식장 야외 공간에서 얼차려 중 쓰러졌다가 이틀만에 숨진 훈련병에 대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군에 갓 입대한 훈련병이 '얼차려'를 받다가 숨졌다.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간부가 완전군장을 착용한 상태에서 뛰게 하고 팔굽혀펴기를 시켰다고 한다. 규정에 없는 위법한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군사경찰과 민간 경찰이 합동으로 수사에 나섰다. 지난달 30일, 전남 나주의 한 장례식장에서 숨진 훈련병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숨진 훈련병의 안색과 건강 상태가 안 좋아 보여 동료 훈련병들이 도중 현장의 간부에게 보고했는데도 묵살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된 상태다. 꾀병으로 여겨 무시한 게 화근이 됐다는 거다. 상명하복이 강조되는 병영 문화 속에서 '열외'는 이른바 '고문관'에게나 적용된다는 편견이 뿌리 깊다. 하물며, 훈련병임에랴.

고래 심줄보다 질긴 '얼차려' 관행

한때 '기합'으로 통칭하던 군대 내 '얼차려'의 관행은 고래 심줄보다 질기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고유한 우리말로, 군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비폭력적 방법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일로 정의된다. 굳이 동의어를 찾는다면, '정신 차려'쯤이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군에 입대한 뒤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이 '얼차려'다. 목소리가 작다거나 동작이 굼뜨다고, 심지어 행동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적인 '얼차려'를 받는다. 지금이야 사라졌겠지만, 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땅바닥을 뒹굴게 하거나 끝없이 PT 체조를 반복시키곤 했다. 그러다 탈진한 동료도 여럿이었다.

종일 좌향좌와 우향우, 뒤로 도는 걸 훈련하고, 경례의 손동작을 교정하며 복명복창하느라 한나절을 보낸다. 대체 이게 전쟁을 수행하는 데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모두가 군말 없이 하니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게 된다. 지휘관은 제식훈련이야말로 군인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 교육이라고 부르대지만, 누구 하나 토를 다는 이가 없다.

군 복무 시절 지휘관으로부터 전해 들은 '불문율' 하나가 있다.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에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군인에겐 그 어떤 질문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만 있을 뿐, '왜?'라는 말은 결코 사용할 수 없다. 그랬다간 군기가 빠졌다며 내무반 전체가 '얼차려'를 받게 될 것이다.

그는 군대 내에서 질문이 허용되는 순간, 지휘 체계가 허물어져 전쟁을 수행할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까라면 깐다'는 속된 표현이 수십 년 동안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군에 전승되어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했다. 참고로, '엉덩이로 밤송이를 까라면 깐다'의 줄임말이라는데, 상명하복의 의무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군인은 손발만 있으면 된다'는 말도 들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머리가 복잡하면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는 거다. 진격과 퇴각, 발사와 중지 명령은 지휘관이 내릴 테니, 병사들은 절대복종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는 단순해져야만 용감할 수 있다고 연신 강조했다. 과연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얼차려'의 존재 이유라는 군기의 사전적 의미는 '군대 내 법도와 질서'다. 줄여 말하면, '군대 내 기강'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군기가 중요한 건, 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열쇠라서다. 기강이 해이해진 군대는 아무리 좋은 무기와 전략을 가졌다고 해도 무용지물이다.

문제는 요즘 세상에 군 기강을 과연 '얼차려'로 다잡을 수 있느냐는 거다. 당장 군기의 의미조차 낯설어하는 이들에게 맹목적인 '얼차려'는 심정적 반발만 부를 뿐이다. 군대라는 폐쇄적 공간이 주는 위압감에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하지만, 내키지 않은 '얼차려'가 효과를 거두리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다.

'얼차려'를 받는 이유에 대해 당사자는 물론,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군 기강의 해이에 끼친 악영향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얼차려'가 의미 있는 교육이자 훈련이 된다.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한다면, 나치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하등 다를 게 없다.

훗날 저명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방청한 뒤 그의 '생각 없음'을 문제 삼았다. 상관의 불의한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한 것을 죄로 명토 박은 것이다. 상명하복을 철칙으로 하는 군인도 우선은 '인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질문이 허용되어야 한다.

숨진 훈련병이 만약 밤에 떠들어 다른 동료의 잠을 방해했다면, 얼마든지 그에 합당한 교육적 처벌을 내릴 수도 있었다. 예컨대, 불침번 근무 횟수를 늘린다던가 휴식 시간에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등의 다양한 방안이 고민될 수 있다. 소란 행위에 대한 반성문과 각서를 쓰게 하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이유 불문하고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구태의연한 '얼차려' 방식으로는 군 기강을 바로 세우긴 어렵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거나 '남자라면 군대에 가서 고생을 해봐야 사람이 된다'는 기성세대의 말에 요즘 세대는 이렇게 반문한다. 이번 사망 사건으로 이러한 목소리가 더욱 커질 듯하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군사 문화는 남자들이 군대에서 '얼차려'에 가랑비에 옷 젖듯 길들어진 결과 아닐까요?"

진정한 군기의 확립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급선무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젠 군기의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대 내 기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군인들의 사기'다. 부대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내걸린 '군기 확립'이라는 말은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자는 뜻으로 읽는 게 현실에 부합한다. 엄격한 법도와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는 단지 '필요조건'일 뿐이다.

얼마 전 아이의 군 입영을 배웅하기 위해 훈련소에 다녀왔다. 중대장부터 훈련 교관과 군악대의 지휘자, 주차 요원에 이르기까지 여군들이 부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여군의 수가 늘어나는 건 남성 중심의 군대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늦었지만 바람직한 변화다. 양성성 교육이 가장 필요한 곳이 군대라고 믿어온 터다.

그런데, 여군이되 체격이 조금 작은 걸 제외하곤 복장부터 동작, 말투에서 남성과의 차이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멀리서 보면, 언뜻 '여장남자'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갓 입대한 훈련병들과 동료 기간병들 앞에서 솔선수범하겠다는 듯, 그늘 없는 연병장에서 미동도 없이 초여름 땡볕을 견뎌내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여군이 늘어난 만큼 과연 '마초적' 군사 문화가 약해졌을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긴 어려울 듯하다. 이번에 숨진 훈련병에게 '얼차려'를 가한 간부가 여군 장교였다는 점은 자못 상징적이다. 섣부르지만, 여군은 남성 중심의 군대가 지닌 폐습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남성보다 더 남성 같은' 여군이 되기 위해 몸을 갈아 넣고 있다고 한다면 나만의 억측일까.

대학 교정에서 만나는 학군단(ROTC)의 우렁찬 경례 소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각 잡힌 제복에 '007가방' 차림으로 수업을 듣는다. 듣자니까, 학군단 내에 '얼차려' 관행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한다. 굳이 달라진 게 있다면, 학군단 제복을 입은 여대생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애먼 중고등학교 수련회를 군대 생활 체험 시설로 떠나는 형국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마는, 이번 훈련병 사망 사건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군사 문화를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얼차려'를 가하고 군인복무규율을 달달 외게 한다고 군기가 서는 게 아니다. 진정한 군기의 확립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급선무다.

사족. 최근 보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세계 5위라고 한다. 군사력이 전쟁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라는데,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얼차려'가 전가의 보도처럼 횡행하는 군대에서, 전쟁이 났을 때 전우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 군인이 과연 몇이나 될지가 솔직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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