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입장료, 관광객 더 늘었다…日후지산 가림막도 부작용 [세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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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세계 최초로 도입했던 '도시 입장료'(5유로, 약 7400원)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을 막기 위해 도입했지만 오히려 관광객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후지산과 편의점의 모습을 함께 담는 '인증 샷'을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을 줄이려 대형 가림막을 도입했지만, 기대했던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행 성수기인 여름철을 맞아 팬데믹 이후 찾아온 오버투어리즘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세계 유명 관광 도시들의 고민이 한층 커지고 있다.
"베네치아, 5유로 도시 입장료 비참하게 실패"
최근 영국 더타임스·유로뉴스 등은 베네치아 시의회 측 자료를 인용해 관광세 개념인 5유로 도시 입장료를 지난 4월 말에 도입한 후, 약 보름 동안 관광객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19일 하루 7만명이 베네치아를 찾았는데, 이는 공휴일인 지난해 6월 2일 공화국의 날(6만5000명)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오반니 안드레아 마르티니 시의원은 "입장료 도입으로 주말·공휴일에 관광객이 줄지 않았다"면서 "베네치아의 도시 입장료 정책은 비참하게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베네치아는 시범적으로 지난 4월 25일 공휴일(해방기념일)부터 오는 7월까지 주말·공휴일(총 29일)에 오는 당일 관광객에게 5유로의 도시 입장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관광객 유입을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베네치아 관광객은 연간 약 2000만명이 넘는다. 그중 당일치기 관광객은 약 70%로 추산된다. 관광객이 늘자 주민들은 높은 물가와 임대료, 소음과 쓰레기, 사생활 침해 등을 호소했다. 이로 인해 주민의 상당수가 이미 떠나, 인구가 1951년 약 17만5000명에서 현재 4만9000명 미만으로 줄었다.
베네치아에선 입장료 5유로가 너무 적어 효과가 없다며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시몬 벤투리니 시의원은 "이 정책은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내년에는 가격을 인상할 수 있으므로, 최종 결과에 관해 이야기하기엔 이르다"고 했다. 당국은 시범 기간이 지나면 입장료를 10유로(약 1만5000원)로 올리고, 입장권 없이 방문할 경우 최대 300유로(약 44만원)에 이르는 과태료도 부과할 방침이다.
베네치아는 제도가 적용된 초기 6일 동안 약 100만 유로(약 15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매체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온라인 예약 시스템 구축과 홍보, 입장권 검표 등에 쓰인 비용 300만 유로(약 44억원)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입장료가 계속 인상될 경우 관광업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내륙국 부탄의 사례가 거론된다. 부탄은 자연 보존 명목으로 1991년 관광세를 도입했다. 그러다가 2022년 코로나19로 폐쇄했던 국경을 다시 열면서 관광세를 3배 이상인 200달러(약 27만원)로 올렸다. 하지만 관광객 발걸음이 현격히 줄자 1년 만에 절반으로 인하했다.
입장료를 걷는 대신 관광객 수를 제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실제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는 "미술관, 박물관, 테마파크 등과 달리 도시는 어디서나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관광객 숫자를 통제하는 게 어렵다"고 지적했다.
가림막 설치, 호텔 신축 금지, 금주령까지 등장
팬데믹 이후 늘어난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계 관광 도시들은 베네치아처럼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엔저 등으로 관광객이 몰리고 있는 일본도 오버투어리즘으로 골치다. 지난 5월 21일 일본 후지산이 보여 인기 촬영 장소가 된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山梨県富士河口湖) 마을의 대형 편의점 체인 로손 앞엔 검은색 가림막이 설치됐다. '인증 샷'을 찍으려는 관광객이 도로에서까지 사진을 촬영하고, 일부는 쓰레기를 마구 벌여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지자체가 내놓은 '특단의 대책'이다.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지난달 29일 오후 중앙일보가 찾아간 이 마을은 여전히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높이 2.5m의 검정색 가림막 20m에는 군데군데 사람이 손가락으로 벌린 듯한 구멍들이 발견됐다. 일부 관광객이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에 뚫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편의점 주변 도로에선 무단 횡단하는 관광객이 종종 목격됐고, 차들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댔다. 행인들이 좁은 인도에서 엉키며 차도로 튕켜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후지카와구치코 마을처럼 출입구가 따로 없는 관광지에서 '인증 샷' 인파가 지나치게 늘어나자, 아예 이를 금지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아름다운 항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도시 포르토피노는 지난해부터 최대 275유로(약 40만원)에 달하는 인증 사진 벌금 제도를 도입했다.
오버투어리즘에 시달리는 다른 도시들도 각각 대책을 내놓고 있다. 관광객들이 넘쳐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호텔 신축을 금지하기로 했다. 유흥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이비자와 마요르카 등의 주요 거리에선 술을 마실 수 없게 했다. 위반하면 500~1500유로(약 75만~220만원) 과태료를 내야 한다.
정란수 교수는 "거주민처럼 일상을 여행하는 게 유행이 되면서 유명 도시에 오버투어리즘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적정 관광객과 관광수입 규모를 면밀히 조사하고 거주민과 상생하는 방법을 공론화해 실용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 기자, 정원석 특파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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