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풍선' 왜 격추 못했나[양낙규의 Defence Club]

양낙규 2024. 6. 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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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60개 관측 오물풍선 무기 활용 가능
북, 보유한 생화학무기 살포 땐 수도권 위협

북한이 오물과 쓰레기를 담은 대량의 ‘오물 풍선’을 남한 전국으로 살포했다. 삐라의 일종으로 심리전인 셈이다. 삐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자취를 감췄지만, 유일한 분단지역인 한반도에서만 유독 끊임없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남북은 1972년 7·4 공동성명에 이어 1992년, 2004년, 2018년 등 여러 차례 삐라 살포 중단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은 2016년 1월 4차 핵실험 대응 조치로 남측이 확성기 방송을 전면 재개하자 삐라를 대량 살포했다. 그해 200만장이 넘는 삐라가 수거됐는데 남측 군부대가 수거한 날은 무려 269일에 달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북한이 이번에 살포한 풍선의 내용물은 오물이다. 북한이 지난 28일 밤부터 살포한 대남 풍선은 경기, 강원, 경상, 전라 등 전국 각지에서 260여 개가 관측됐다. 오물 풍선은 지난 2016년 이후 두 번째다. 북한이 오물 대신 생화학무기를 탑재했다면 무기로도 활용 가능하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라텍스 재질의 풍선 안에는 오물 담은 봉투

이번에 날아 온 풍선엔 가축 분비물을 포함하는 거름과 담배꽁초, 폐건전지 등 각종 오물이 든 봉투가 달렸다. 북한은 풍선에 큰 비닐봉지를 매달고 그 안에 오물을 담아 살포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풍선의 적재물에서 담배꽁초, 퇴비, 폐건전지, 폐 천 조각 등 각종 오염물질이 확인됐고 현재 관련 기관에서 이를 정밀 분석 중"이라며 "현재까지 화생방 오염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정 시간 후에 이 봉지를 터트릴 수 있는 타이머까지 부착했다. 풍선의 재질은 중국산 라텍스로 보인다. 공중에서 찢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풍선에는 헬륨이나 수소 가스를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풍선은 띄우기 전에 구멍을 내기도 한다. 고도가 상승하면 기압 때문에 폭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구멍으로 헬륨이나 수소가스가 빠지면서 자연적으로 고도가 조절된다. 군의 화생방신속대응팀(CRRT)과 폭발물처리반(EOD)이 출동해 지상에 낙하한 풍선을 수거하고 있고, 관련 기관에서 정밀 분석 중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북한이 오물을 담아 풍선을 띄우는 것은 우리 국민에게 치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9일 대남 오물 풍선에 대해 "인민의 표현의 자유"라며 살포를 제지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대한민국 정부에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바"라고 비아냥댔다. 우리 정부가 대북 전단이 표현의 자유라며 금지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비꼬며 자신들도 이에 대응해 "한국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오물 풍선을 보냈다는 궤변이다.

오물 대신 생화학무기 탑재하면?

북한이 전단 풍선을 보낼 때면 일반적인 풍선을 날리거나 타이머를 달아서 보낸다. 그냥 매달아서 보내는 경우에는 땅에 닿거나 시간이 지나면 터지게 되고, 타이머는 특정 시간대에 풍선이 찢어지게 된다.

실제 2016년 수거된 북한 대형풍선에는 타이머와 자동폭발 장치가 달렸다. 목표 상공에 도착하는 시간을 미리 입력해 놓고 그 시간에 자동으로 터져 전단이 떨어지도록 고안됐다. 다만, 인공위성 위치 확인(GPS) 장치는 달리지 않았다. 향후 대형 풍선을 이용한다면 타이머와 자동폭발 장치를 비롯해 청와대나 국회 등 특정 지역에 떨어졌는지 확인하도록 GPS 수신 장치를 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문제는 오물 대신 생화학무기를 탑재했을 경우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발간하는 ‘동북아안보정세분석’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보유한 화학작용제는 2500~5000t이다. 화학작용제 5000t은 서울시 면적의 4배인 2500㎢를 오염시킬 수 있는 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북한이 살포한 풍선이 전국적으로 살포된 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는 점에서 ‘만일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도 "풍선 자체는 정확한 목표를 타격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라면서도 "(공격용으로 활용했을 경우) 생화학 테러에 풍선을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라고 말했다.

지상 떠도는 풍선 격추 땐 득보다 실

우리 군은 지난 3월 말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북한 쪽에서 넘어오자 경고 후 격추한 적이 있다. 비행체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에서 백령도 방향으로 이동하자, 우리 공군 KA-1은 이날 오후 4시경 기총 사격으로 비행체를 격추했다. 군 당국이 근접 추적한 결과, 이 비행체는 민간 광고용으로 추정되는 풍선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후방이나 도심 지역까지 날아든 경우엔 파편 등으로 인한 민간 피해 우려가 더 커진다. 격추를 위한 사격 시 우리 탄이 군사분계선(MDL) 이북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우리 군이 원점 타격 등 즉각 대응에 나설 경우 득보다 실이 크다는 의미다.

군은 지금까지 풍선을 격추하는 대신 땅에 낙하한 풍선을 안전하게 수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군은 “피해의 최소화, 작전 효율성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풍선을 이용해 생화학 테러 등 공격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 군은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번처럼 대량으로 살포할 경우 격추도 쉽지 않다. 지난해 미국이 자국 내에서 중국의 정찰 풍선을 발견한 후 일주일 뒤에서야 격추에 나선 것도 격추 시 인명 피해 가능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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