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여성 생명 자유” 칸영화제, 페미니즘을 외치다
황금종려상에 션 베이커 ‘아노라’
“불법 성매매가 성 노동? 남성 시각” 비판도
그레타 거윅, 메릴 스트립 초청이 의미하는 것
전통과 보수의 칸영화제는 올해 '이 시대 여성을 향한 존경'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다. 프랑스에서는 영화계 '미투'(나도 당했다, Me Too) 가 재점화했고, 영화제는 이에 지지와 연대의 뜻을 밝혔다.
80년대생 여성 감독 심사위원장…황금종려상은 '갑론을박'제77회 칸영화제가 지난달 14일 개막해 25일 막을 내렸다. 칸은 올해 심사위원장에 여성주의 영화 '바비'(2023)를 연출한 그레타 거윅 감독을 앉혔다. 1983년생 젊은 여성 감독인 거윅을 필두로 여성 영화인 5명, 남성 4명으로 심사위원단을 꾸렸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칸 심사위원상 수상작 '가버나움'(2019) 나딘 라바키 감독,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윈터 슬립' 각본가 에브루 세일란을 비롯해 배우 에바 그린, 배우 릴리 글래드스톤,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오마 사이 등이다.
거윅 감독은 칸영화제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서 "영화계에 점점 더 많은 여성이 등장하는 게 반갑다"며 "15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미투' 운동 재점화와 관련해 "영화인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말하며 노력하는 것은 좋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올해 여성주의 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미국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가 차지했다. 미국 브루클린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콜걸이 러시아 갑부와 결혼해 겪는 갈등 그린다. 얼핏 보면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사건에 휘말리며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렸다. 션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레드로켓'(2021) 등을 초청하며 칸이 주목해온 젊은 영화감독으로, 그간 트랜스젠더나 싱글맘 등 사회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왔다.
다만 '아노라'를 여성주의 영화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성매매를 산업으로 바라본 감독의 작품에 최고상을 주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일각에서는 여성의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바라보는 건 남성의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수상 직후 감독이 "이 상을 어제와 오늘, 내일의 성 노동자에게 바친다"고 밝힌 소감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불법 성매매를 여성의 성 노동으로 바라보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사위원대상은 인도의 30대 여성감독 파얄 카파디아의 '올 위 이매진 애즈 라이트'가 받았다. 뭄바이에 사는 두 여성이 여행을 떠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인도는 30년 만에 경쟁부문에 진출해 2등상을 차지했다. 감독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여성 연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프랑스 거장 자크 오디아르는 추적을 피해 성전환 수술을 하려는 범죄단 두목과 그를 돕는 여자들을 그린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이 영화에 출연한 스페인 트랜스젠더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과 아드리안나 파즈, 셀레나 고메즈, 조이 살다나 4명이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칸영화제는 여성 배우들에게 히잡을 안 씌워 8년 형을 선고받고 이란에서 망명한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에게 특별상을 줬다. 그는 여성 히잡 착용에 반발한 시위 장면과 이란 정부의 억압을 그린 영화 '더 시드 오브 새크리드 피그'를 선보였다. 영화 상영 도중 객석에서 "여성 생명 자유"라는 슬로건이 터져 나왔다.
74세 배우 메릴 스트립은 올해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영화 '소피의 선택'(1983)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더 포스트'(2018) '철의 여인'(2012) 등에서 호평받은 배우다. '어둠 속의 외침'(1988)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수상 직후 그는 "당시(1988년) 나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마흔살을 앞두고 있었다. 내 커리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실제 그는 경력 단절을 딛고 주연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며 활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릴 스트립은 과거 남성 중심 영화 산업 구조와 만연한 성차별을 비판해왔다. '미투' 운동 당시에도 기꺼이 목소리를 냈다. 올해 칸 영화제가 그의 공적과 더불어 명예 황금종려상 주인공으로 선정한 또 하나의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칸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그는 "과거 영화사에서 권력을 독점하던 남성들은 여성 주인공에게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시대 세계 최고 스타는 여성"이라고 강조했다.
'미투 운동' 프랑스서 재점화…문화계 연대감독이자 프랑스 배우인 쥐디트 고드레슈는 2018년 '미투' 운동에 나선 용기 있는 여성 영화인이다. 당시 그는 10대 시절 겪은 남성 영화감독의 성폭력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비슷한 일을 겪은 피해자들과 지난 3월23일 프랑스 파리에 모였고, 이 모습을 카메라로 기록해 단편영화 '므아 오씨'(나도, Me Too)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현지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라시다 다티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프랑스 영화산업이 수십 년째 성폭력에 집단으로 눈을 감고 있다"며 지지의 뜻을 밝혔다. 프랑스 국회의원들은 프랑스 공연 예술과 패션 부문 전반에 걸친 성폭력과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정부 조사에 일제히 동의했다.
'므아 오씨'는 올해 칸영화제 올해 공식 섹션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개막작 초청됐다. 공식 상영을 앞두고 고드레슈 감독과 영화의 공동 제작자들은 칸 뤼미에르 극장 레드카펫에 올라 양손으로 입을 가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들은 전 세계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 영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개막 전 칸영화제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영화감독, 배우, 제작자 등 10여명이 적힌 명단이 존재하고, 이들이 관련된 작품을 경쟁부문 초청작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나돌기도 했다. 문화,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열리는 최대 영화제가 업계 만연한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이 인상적이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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