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가’ 완창하는 이자람 “전통 판소리 맛 관객과 나누고 싶어요”

장지영 2024. 6. 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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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창 건강에 무리… 하루에 안 해도 돼
맑은 목소리 타고나… 그늘 만들려 노력
“전통 판소리 잘해야 창작도 가능”
소리꾼 이자람이 최근 서울 용산구 더줌아트센터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바탕’이라는 이름으로 전통 판소리 무대를 만들어온 이자람은 6월 13일, 15일 ‘바탕: 적벽가’를 선보인다. 윤웅 기자


지난해 11월 국내 빅3 공연장인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의 공통점은 ‘이자람’이었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선 중국 경극을 원작으로 이자람이 작창을 맡은 국립창극단 창극 ‘패왕별희’(11월 11~18일)가 올라갔고,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선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이자람이 작창을 맡고 서술자인 ‘무인’으로도 더블캐스팅된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순신’(11월 8~26일)이 공연됐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선 시어터형 뮤직 페스티벌 ‘러브 인 서울’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자람 콘서트 ‘판소리 갈라 시리즈 : 작창 2007/2011’(11월 15일)이 열렸다. 이자람이 2007년과 2011년 초연한 창작 판소리 ‘사천가’과 ‘억척가’의 하이라이트 대목으로 구성된 무대였다.

이자람이 창작 판소리 '사천가'를 선보이고 있다. 국민일보DB


세 공연은 현재 한국 공연계에서 작창가 이자람의 위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작창(作唱)이란 전통 장단과 음계를 이용해 새롭게 소리를 만드는 일이다. 이자람은 작창가로서 창작 판소리의 판도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접 소리꾼으로 나선 창작 판소리 ‘사천가’ ‘억척가’ ‘노인과 바다’ ‘이방인의 노래’는 젊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또한, 이자람이 작창을 맡은 국립창극단의 ‘흥보씨’ ‘소녀가’ ‘패왕별희’ ‘나무, 물고기, 달’ ‘정년이’ 등은 창극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하지만 작창은 판소리에 통달하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이자람이 창작 판소리, 창극, 뮤지컬, 연극, 인디 록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약하면서도 소리꾼으로서 전통 판소리를 수련하고 그것을 관객과 나누는 무대를 꾸준히 선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바탕’이라는 이름으로 전통 판소리 무대를 만들어온 이자람이 오는 6월 13일, 15일 서울 용산구 더줌아트센터에서 ‘바탕: 적벽가’를 준비 중이다. 공연을 앞둔 이자람을 최근 더줌아트센터에서 만나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창작 판소리는 전통 판소리 잘해야 가능”

“학교에서 판소리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이 저를 창작하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더라고요. 제가 전통 판소리 무대를 꾸준히 가지고 있지만, 워낙 창작 판소리의 이미지가 강해서인 것 같아요. 하지만 판소리에서 창작은 전통을 정말 잘해야만 가능하거든요. 창작과 전통을 이분법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자람이 지난 2015년 11월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동편제 '흥보가'를 완창했다. 당시 무대에는 스승인 송순섭 명창이 함께했다. 국민일보DB


5살이던 1984년 동요 ‘내 이름(예솔아!)’으로 인기를 끈 이자람은 방송 활동을 하던 중 TV 국악 프로그램을 통해 고(故) 은희진 명창과 만나면서 판소리에 입문했다. 이후 국립국악중·고교, 서울대 국악과를 거치면서 판소리 인간문화재 오정숙, 송순섭, 성우향 명창에게 소리를 사사했다. 18세이던 1997년 ‘심청가’를 4시간에 걸쳐 처음 완창한 그는 1999년 ‘춘향가’를 20세의 나이에 8시간 걸쳐 최연소 완창했다. 대학 졸업 후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와 ‘판소리만들기-자’를 만들어 창작 판소리 작업을 하면서도 2007년 ‘수궁가’, 2010년 ‘적벽가’, 2015년 ‘흥보가’까지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완창했다.

이번 ‘바탕: 적벽가’는 201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적벽가’(3시간30분)를 완창하는 것이다. 다만 하루에 완창하는 것이 아니라 이틀에 걸쳐 나누어 선보인다. 대신 각각의 공연 앞에 과거 소리꾼들이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던 단가(短歌)를 배치했다. 이자람은 첫날엔 ‘적벽부’, 둘째 날엔 ‘편시춘’을 들려줄 예정이다. 그리고 ‘적벽가’가 중국의 ‘삼국지연의’ 중 적벽대전을 다뤄 한자가 많은 만큼 이번에 이자람의 해설로 변주하거나 실시간 자막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완창하되 하루에 다 할 필요는 없어”

“완창은 1968년 박동진 선생님이 판소리 대중화의 일환으로 시작해 널리 퍼지게 됐는데요. 저 역시 완창 붐에 한몫했지만, 소리꾼이 몇 시간씩 서서 판소리를 하는 완창은 차력쇼처럼 기이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소리꾼의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제 경우 귀에 문제가 생기는가 하면 뇌압과 복압이 높아졌어요. 관객 역시 힘들고요. 완창하더라도 굳이 하루에 다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전 앞으로도 오래오래 무대에 서고 싶거든요.”

‘적벽가’는 웅장한 소릿조와 박진감 넘치는 대목이 많기 때문에 판소리 다섯 바탕 중 가장 어렵다. 이 때문에 소리꾼의 기량을 드러내는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자람이 이번 무대에서 선보일 소리는 동편제 판소리 박봉술제(송순섭바디) ‘적벽가’다. 판소리의 전승 계보에 따라 음악적 특성을 나눈 것을 ‘소리제’, 판소리 창자가 스승에게 전수받아 다듬은 것을 ‘바디’라고 칭한다. 즉, 이자람이 선보이는 적벽가는 동편제 창법을 대표하는 소리꾼 박봉술이 정리한 소리를 그 제자인 송순섭이 다듬은 버전이다. 이자람은 앞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송순섭 명창을 사사했다.

“2002년 석사 과정을 밟을 때 송순섭 선생님이 대학원에 출강하신 것을 계기로 제자가 됐어요. 당시 적벽가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 ‘뭘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아라’고 늘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요. 소리를 선반 위에 (자연스럽게) 얹듯이 하라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소리가 깊어야 한다는 거에요. 이게 바로 선생님께서 지켜온 소리의 멋이라고 생각해요.”

“목소리에 그늘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

소리꾼에게 깊은 소리란 판소리 특유의 ‘구성진 성음(聲音)’으로 ‘그늘이 있는 소리’라고도 한다. 인생의 신산고초(辛酸苦草)를 거친 후 나오는 깊은 목소리를 일컫는데, 목이 쉰듯한 ‘수리성’을 기본으로 한다. 이자람은 “나는 천성적으로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한마디로 말해 ‘그늘이 없는 목소리’다. 판소리계에서는 이런 목소리를 구성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목소리에 그늘을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얼마나 소리 연습을 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지금은 목소리가 낮아지고 두터워졌다”면서도 “창작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사람들은 내게 구성이 없을 거라고 예단하곤 한다. 내게 전통 판소리 무대는 그런 오해를 푸는 기회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내 실력을 증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피력했다.

매일매일 자신의 옷방에서 소리를 연습하는 이자람은 평소엔 전통 판소리와 창작 판소리의 대목을 섞어서 하지만 요즘엔 ‘적벽가’만 붙들고 있다. ‘적벽가’를 처음 완창했을 때로부터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만큼 소리와 힘이 달라져서 밸런스를 다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에게 편안한 밸런스를 찾지 못해서인지 그는 요즘 복압으로 고생하는가 하면 이곳저곳을 다치는 등 힘든 연습 과정을 보내고 있다.

“전통 판소리 무대는 연습할 때마다 힘도 들고 무섭기도 해요. 그럴 때는 판소리가 괴물 같은 예술이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하지만 그 맛에 빠지면 벗어날 수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이 맛을 잘 전달하면 관객들도 분명히 전통 판소리를 재밌어할 거라고 봐요. 그렇게 되면 저만이 아니라 더 많은 소리꾼들을 찾게 되실 겁니다. 이런 바람 때문에 ‘바탕’ 공연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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