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격노설' 그날…12시 7분부터 3차례 통화, 무슨 말 오갔나 [채상병 의혹 나흘간의 통화]

양수민 2024. 6.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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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일 낮 12시7분 검사 시절부터 사용하던 개인 휴대전화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신 지역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오후 일정이었던 투자협약식 참석차 전북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 대통령 관저에서 전화를 건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대령이 이끌었던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 기록’이 경찰에 이첩된 지 17분쯤 지난 뒤였다. 이날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는 12시 43분, 57분에 두 차례 더 이어졌다. 대통령의 첫 통화가 있은 지 1시간 사이 박 대령은 해병대 수사단장에서 보직해임을 당했고, 그날 저녁 군은 경찰에 이첩된 사건을 회수해왔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해 8월 9일, 이 전 장관은 박경훈 당시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불러 채 상병 사망사건의 재검토를 지시했다. 같은 달 21일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이 혐의가 있다고 봤던 8명 중 대대장 2명에게만 혐의를 적시해 사건을 경찰에 재이첩했다. 지휘부로 지목됐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6명은 혐의자에서 빠지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 결과를 듣고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VIP격노설’과 임 전 사단장이 본인을 혐의자에서 제외하기 위해 로비 활동을 벌였다는 ‘구명설’은 여기서 나왔다. 이 전 장관이 직접 결재까지 한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수사 기록이 회수되고, 혐의자가 축소되는 과정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박 대령 측은 수사를 통해 임 전 사단장의 로비설과 윤 대통령의 격노설의 실체가 규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일보는 채 상병 사망사건 기록의 ‘국방부 장관 보고(지난해 7월 30일)→윤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7월 31일)→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기록 경찰 이첩(8월 2일)→국방부 검찰단의 기록 회수(8월 2일)’가 있던 나흘 간의 주요 통화 내역을 정리했다.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수사 중이다.


7월 30일…이종섭 전 장관, 수사기록 ‘결재’


차준홍 기자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작전에 나섰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사망한 채로 발견된 건 지난해 7월 19일이다. 해병대 수사단은 관련자와 관련부대를 조사했고, 조사 결과를 최종 결재권자인 이 전 장관에게 보고해 지난해 7월 30일 오후 4시 30분쯤 결재를 마쳤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인 오후 5시 39분, 박진희 전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과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은 통화를 나눈다. 10분 뒤 박 전 보좌관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 보고드린 내용을 안보실에도 보고가 돼야 할 것 같다. 내일 아침엔 국방비서관에게 인지가 돼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다. 이어 김 사령관과 임 전 비서관은 이날 오후 6시, 오후 6시 15분 두 차례 통화를 한다. 총 4분 46초 분량이다.


7월 31일…언론브리핑 취소 및 이첩보류 지시


다음 날인 7월 31일은 VIP격노설의 진원지로 꼽히는 윤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 분야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격노설이 등장한다. 오전 11시쯤 열린 회의에서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질책했다는 내용이다.

회의가 끝날 무렵인 오전 11시54분, 이 전 장관은 대통령실이 사용하는 ‘02-800’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아 2분 48초간 통화했다. 이 전 장관은 직후 본인의 비서 역할을 했던 박진희 당시 군사보좌관의 전화로 김계환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통화에서 채 상병 사망 사건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고 이날 오후 예정된 언론 브리핑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오후 2시에는 이 전 장관이 참모들과 회의를 열었다. 정종범 전 해병대 부사령관이 국방부 장관 집무실에서 받아 적었다는 이른바 ‘정종범 메모’가 나온 때다. 당시 정 전 부사령관이 메모를 보면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됨’ ‘사람에 대해서 조치‧혐의는 안됨’ ‘보고 이후 휴가 처리’ 등 사건 처리 지침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직무에 배제됐던 임성근 전 1사단장은 돌연 직무에 복귀해 낮 12시 54분 휴가를 신청했다.

이 회의 이후 이 전 장관은 국방부 청사를 떠나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던 중으로 추정되는 오후 2시 56분 임기훈 전 비서관의 전화를 받았고, 11분 넘게 통화가 이어졌다. 해병대 부사령관 등과 했던 회의 내용을 임 전 비서관에게 전달했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8월 2일…경찰 이첩 사건 회수, 박 대령 보직해임


차준홍 기자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로 이첩한 채상병 사망사건이 군으로 회수되고, 박 대령이 보직해임된 8월 2일에는 윤 대통령이 등장한다. 이날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사건 이첩을 완료한 시간은 오전 11시 50분쯤이다. 이첩이 완료될 즈음 조태용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 전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2분 40초간 통화를 한다. 이어 낮 12시 4분, 김 사령관은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건다. 일각에서는 이 통화에서 이첩이 완료된 상황이 장관에게 보고됐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로부터 3분 뒤인 낮 12시 7분,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사 시절부터 사용하던 개인 휴대전화를 통해서다. 이날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은 12시 7분, 43분, 57분 등 세 차례에 걸쳐 총 18분 이상 통화한다. 이 통화가 있던 8월 2일은 대통령이 공식 일정으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 참석한 날이었다. 개막 첫날부터 폭염으로 온열 질환자가 무더기 발생해 대혼란이 일던 잼버리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해외출장 중이던 이 전 장관에게 3차례나 전화를 건 것은 빠른 대응을 필요로 하는 다급한 현안이 있었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의 첫 통화로부터 30여분이 지난 낮 12시 45분 박 대령은 보직에서 해임됐다. 낮 12시 50분에는 임종득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이 김계환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4분 41초간 통화했다. 오후 3시 56분, 임종득 전 차장은 김 사령관과 한 차례 더 통화했다. 오후 7시 20분에는 국방부 검찰단이 경찰로부터 이첩 기록을 회수했다.


8월 8일…사건 재검토 지시 D-1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왼쪽)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21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채 상병 사건 수사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뉴스1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8일에도 이 전 장관과 통화했다. 이 전 장관이 회수한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재검토 지시를 내리기 하루 전날이다. 오전 7시55분 윤 대통령은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33초 통화했다. 이어 오전 8시30분과 33분에는 임기훈 전 비서관이 박진희 전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고, 박 전 보좌관은 임 전 비서관에게 오전 9시 1분 재차 전화를 걸었다.

이날 국방부에서는 경찰에서 회수한 채상병 사망 사건을 처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당초 채상병 사망 사건 재검토에 부정적이었으나, 지난해 8월 9일 이 전 장관이 박경훈 당시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불러 재검토를 맡으라고 지시했다.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이 혐의가 있다고 봤던 8명 중 대대장 2명에게만 혐의를 적시해 사건을 경찰에 재이첩했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 내역은 확인됐지만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분명치 않다.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현재 공수처가 수사 중이다. 다만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된 주요 국면에서 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가 출장 중인 이 전 장관과 수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공수처의 수사가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을 비롯한 용산 대통령실로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장관 측은 “대통령과의 통화 내역 공개가 적법한지 의문이고, 통화 여부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제기되는 의혹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도, 대통령실 그 누구로부터도 ‘(이첩 대상에서) 사단장을 빼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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