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영향 고려한 1심과 달랐다…'세기의 재산분할' 2심 후폭풍

박현준, 김한솔 2024. 6.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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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64)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1조 3808억원의 재산분할을 판결한 데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을 유형적 기여”로 인정한 게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불법적인 정경유착의 산물을 자녀에 상속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법조계 안팎에 논란이 일고 있다.

최태원(64)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 관장.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한 ‘1992년 12월 16일 자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50억원 약속어음 6장’을 1991년경 노 전 대통령의 최종현 선대회장에 대한 금전 지원의 증빙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는 최종현이 원래 보유한 개인 자금과 혼화되어 경영 활동을 뒷받침하는 유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를 인정한 데는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 각각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내역을 상세히 기록한 메모, 어음 6장을 겉봉에 ‘채권’이라고 적은 대봉투 안에 들어있는 ‘선경 300’ 소봉투 안에 보관해온 점, 당시 비자금을 맡긴 다른 기업의 차용증 200억원을 같은 대봉투 안에 보관한 점 등이 근거가 됐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의 300억 비자금의 성격이다. 이는 1997년 대법원이 확정한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추징액 2628억원(2013년 완납)에 포함되지 않고 33년간 숨겨왔던 돈이다.

최 회장 측은 2심에서 “노 전 대통령이 뇌물로 받은 비자금 300억원을 맡겨뒀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인정하는 건 부친의 반사회질서적 범죄행위로 얻은 수익을 딸이 찾아가는 것을 용인하는 결과”라며 “이는 불법원인 급여의 반환을 불허하는 민법 746조에 반한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하지만 “1991년 당시 300억원 금전 지원이 형사상 어떤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았고, 이후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며 “2001년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의 사후 입법 조치로 그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며 불법 자금으로 보지 않았다.

또 노 전 대통령의 무형적 ‘후광’에 의해 최종현·최태원 회장이 모험적 경영을 감행해 SK그룹을 성장시켰다고 본 점도 논란거리다. 대표적으로 ‘1992년 태평양증권 인수 과정에 세무조사를 받지 않고 이동통신사업(SK텔레콤) 진출 과정에서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는 등 결과적으로 SK그룹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 등이다.

이를 놓고 한 기업 전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해 세무조사와 자금추적 조사가 없었다고 보는 건 비약”이라며 “정경유착을 대기업 성장의 기본 서사로 삼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2심 재판부가 1991년 노 전 대통령이 지원한 300억원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으로 쓰였다고 본 것과 달리 SK 측은 계열사 자금 또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개인자금을 투입했다는 반박하고 있어서다.

이외에도 2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 측의 ‘무형적 도움’으로 1989년 10월 미국 방문과 1990년 5월 일본 방문에 최태원 회장이 동행하거나, 1991년 6~7월 부시 대통령 만찬에 최종현 선대회장이 참석한 점 등을 꼽기도 했다.

최 회장 측은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300억 비자금이나 6공 특혜를 인정하는 것은 현대사를 새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다.

최태원 재산분할, 1·2심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그룹 지주사 ㈜SK 분할 논란…“SK 지배구조 흔들었다”


항소심이 최 회장 명의 SK그룹 지주사인 ㈜SK 지분과 계열사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으면서 SK그룹 지배구조에 타격을 주는 등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현재 ㈜SK 최대주주인 최 회장(1297만주, 17.73%, 평가액 2조760억원)이 1조3800억원에 달하는 재산분할액을 마련하려면 지분을 처분해야 할 상황까지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SK는 SK텔레콤(30.57%), SK이노베이션(36.22%), SK스퀘어(30.55%), SKC(40.6%) 등의 지분을 보유해 전체 SK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SK스퀘어는 다시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20.07%)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경영자 내지 소유자와 별개의 인격체로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기업의 존립과 운영이 부부간의 내밀하고 사적인 분쟁에 좌우되게 하는 위험이 있고, 기타 이해관계인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영향을 미치게 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SK 지분 등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에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 보수와 상여와 마찬가지로 SK 주식 역시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연봉을 받지 않는 국내외 기업 경영자를 예로 들며 “배당금이나 소유 주식 가치 상승으로 자신의 경영 활동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상고심에서 SK그룹 지배구조 등 기업에 미칠 영향이 최종 변수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최 회장 측으로선 SK그룹 지배구조 방어를 위해 선친으로부터 상속·증여받은 ㈜SK 지분에 대해선 부부가 함께 기여한 공동재산이 아니라는 점을 적극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에서는 이미 판례로 형성된 법리인 만큼 우리나라도 그와 같은 판례가 도입될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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