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국민들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지만, 산업계에서만큼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주제가 있다. 바로 ‘마이데이터’다. 마이데이터는 개인정보를 보유한 기업이나 기관에 자신이 원하는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다. 정보 주체의 동의를 얻으면 개인정보를 사업자에게 제공할 수 있고, 사업자는 이를 활용해 서비스를 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25년부터 보건의료, 통신, 유통 등 모든 분야에 마이데이터를 적용하겠다면서 입법예고를 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 중이다. 연 매출 1500억원 이상 또는 플랫폼 이용자 수 100만명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마이데이터를 확대 적용하는 것이 법의 핵심이다. 입법 취지만 보면 기업들이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동의를 얻어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아 새로운 기회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기업들은 반기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규제 타파를 외치는 기업들이 마이데이터에 대해선 오히려 규제 장벽을 높여 달라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사업 영역별로 기업의 반대 논리는 명확하다. 정보기술(IT) 업계는 ‘비용’을 주로 문제 삼는다. IT 업계 스타트업은 막대한 비용으로 마이데이터 서버를 유지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스타트업들은 이용자 수를 일정 수준 확보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이데이터 정보 전송자에 포함돼 관련 비용을 연간 수억원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업계에 따르면 마이데이터의 전송 원가는 연간 1280억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일부인 약 280억원만 데이터 제공자에게 보상했다. 반면 약 1000억원은 데이터 제공자가 부담했다. 마이데이터 사업자의 부담이 현저히 적은 셈이다.
마이데이터 장벽이 사라지면 IT 기업이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투자할 유인도 줄어들 거라는 시각도 있다. 플랫폼 등 IT 기업들의 핵심 자산은 데이터다.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서비스를 개발하고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새로운 사업에 활용한다. 그런데 다른 회사의 데이터를 무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되면 굳이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이용자들을 끌어들일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없어진다. IT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다른 기업들로부터 데이터를 넘겨받을지를 핵심으로 사업 구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IT 생태계의 혁신 동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거란 우려가 팽배하다.
유통 업계에서는 해외 사업자들에게 데이터가 유출될 위험성을 주목한다. 최근 중국의 유통 기업들이 국내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과 맞물린다. 마이데이터를 통해 국내 소비자 정보가 중국 기업에 통째로 넘어갈 수 있다. 만약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 수준이 낮은 기업일 경우 개인정보가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의료계에서는 민감한 정보가 쉽게 공유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본다. 의료 데이터를 플랫폼 사업자나 일반 기업들이 데이터를 전송받으면서 얻는 산업적 이익보다 개인이 받을 위해성이 더 크다는 우려다.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 이력의 경우 환자들이 숨기고 싶어한다. 그런데 데이터 장벽이 없어지면 환자나 의료진이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관련 정보가 외부로 전송될 수 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기업들이 내 건강 이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개인으로서도 섣부른 입법이 가져올 여파는 상당하다. 현재도 나와 관련된 데이터들이 어떻게 수집되고 있고, 누가 어떻게 내 데이터를 활용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무엇이 개인정보이고, 개인정보가 아닌지조차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렵다. 나에 대한 데이터가 상품이 되어 온갖 기업에서 활용되더라도 인지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겠다면서 오히려 자기 결정권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각계에서 반대 논리가 이토록 선명한데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누구를 위해 마이데이터산업 정책을 펼치는 것인지 의문이다. 기업마저 부작용을 우려하는데 정부가 도리어 설익은 정책에 속도를 주며 개인정보 상품화를 부추기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미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이 없는 해외 제품은 직접구매(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나섰다가 거센 비난을 받는 곤욕을 치렀다. 마이데이터 역시 비슷한 저항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숙고가 필요하다. 정책은 현실이라는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전성필 산업1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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