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영웅] “아이가 장애3급, 수급자 가정입니다” (영상)

박은주,전병준 2024. 6. 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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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푹 눌러쓴 여성이 지구대 앞으로 다가옵니다.

여성은 손에 든 상자를 던지고 달아났습니다.

정학섭 경감"덕천지구대 밑에 보면 주차장이 있어요. 거기에 승합차 한 대가 들어오더라고요. 차를 대는구나 싶었는데 어떤 여성분이 후드티를 입고 자기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박스를 하나 들고 올라오더라고요."

정 경감이 다가가자 여성은 화들짝 놀라며 상자를 냅다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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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린이날, 덕천지구대에 전달된 ‘선물’


모자를 푹 눌러쓴 여성이 지구대 앞으로 다가옵니다. 발걸음은 조급하고, 움직임은 분주합니다. 갑자기 지구대 밖으로 나온 한 경찰관. 여성은 손에 든 상자를 던지고 달아났습니다. 수상함이 가득한 저 상자의 정체. 대체 무엇일까요?


정체불명 상자의 뭉클한 반전


어린이날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5월 6일. 휴일 근무에 나선 부산 북부경찰서 덕천지구대 소속 정학섭 경감은 낯선 승합차 한 대를 발견했습니다.

정학섭 경감
“덕천지구대 밑에 보면 주차장이 있어요. 거기에 승합차 한 대가 들어오더라고요. 차를 대는구나 싶었는데 어떤 여성분이 후드티를 입고 자기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박스를 하나 들고 올라오더라고요.”


정 경감이 다가가자 여성은 화들짝 놀라며 상자를 냅다 던졌습니다. 그러곤 자신을 뒤따라오던 승합차에 올라 사라져 버렸죠.

정학섭 경감
“내려가 보니까 차는 이미 가버리고 없고, 여성분도 없더라고요.”


대체 이게 뭘까…. 정 경감은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상자를 챙겨 지구대 안으로 들어왔고, 조심스레 내용물을 확인해 봤습니다. 상자 안에는 과자 여러 개와 어린아이용 옷 한 벌, 1000원짜리 서른 장, 그리고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죠. “첫째가 장애 3급인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입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저희는 자녀가 셋인, 폐지를 팔아 생활하는 부부입니다. 한 달 동안 땀 흘리며 열심히 모았는데, 옷 한 벌과 과자를 사고 나니 현금은 3만원 밖에 남지 않았네요. 능력이 이 정도뿐이라서…많이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지폐가 너무 꾸깃꾸깃해 한 장씩 다리미로 폈습니다. 아이들이 옷과 과자를 꼭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네요. 현금은 어린이날 어려운 아이 가정에 전달돼 피자라도 사 먹었으면 합니다.”


정 경감은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그는 상자를 열자마자 여성의 정체를 눈치챘다고 하는데요. 2023년 9월, 부산 동구의 한 목욕탕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수많은 소방관과 경찰관이 다쳤을 때 성금을 전달했던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정학섭 경감
“작년에도 그 여성분이 기부할 때 제가 근무를 했었고…저는 동일인이라고 99.9% 확신합니다.”


당시 기부액은 4만5000원. 마찬가지로 폐지를 팔아 마련한 돈이었습니다.

정학섭 경감
“그때 우리 경찰관도 다쳤고, 소방관도 다쳤고, 일반 시민들도 다쳤거든요. 그분들 치료비에 보태 쓰라고….”


유독 비바람이 몰아쳤던 이번 어린이날 연휴. 가족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일터로 왔던 지구대 직원들은 이들 부부 덕분에 힘이 나고, 웃음이 나고, 마음이 따스해졌다고 합니다.

정학섭 경감
“본인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직원들에게 이날은 그런 하루 아니었을까요. 고된 업무에 흐트러진 자세를 괜스레 고쳐 잡고, 흐릿한 창밖을 괜히 또 바라보고, 어쩐지 벅차오르는 마음을 달래며, 생업의 보람을 곱씹게 되는 하루요. 한 마디로 참 일할 맛 나는, 그런 하루 말입니다.

정학섭 경감
“대단한 분이다. 자기 형편도 안 좋으면서 이렇게 기부하는 거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훌륭한 분이다.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런 말씀하시죠.”


부부의 ‘어린이날 선물’은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이들이 마련한 1000원짜리 서른 장이 많은 아이를 도울 순 없을 겁니다. 그래도 한 명의 아이라도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이 사연을 접한 우리가 그랬듯이 말이죠.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전병준 기자 jb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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