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국내 최초 개봉한 청춘 영화 바이블
[김형욱 기자]
▲ 영화 <청춘 스케치> 포스터. |
ⓒ 아트나인 |
레이나는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곤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며 텍사스 TV 방송국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하지만 중년 남자 상사와 트러블이 일어나고 머지않아 해고당한다. 한편 그녀는 우연히 만난 어느 상업 방송국 부사장 마이클과 사귄다. 그리고 그의 권유로 그녀의 다큐멘터리를 비디오로 출시해 방송하게 된다.
트로이는 가수 지망생으로 대학 졸업 후 이것저것 안 해 본 일이 없지만 열두 번이나 해고 당한다. 최근에는 신문가판대에서 일했는데 초코바를 몰래 먹었다가 잘렸다. 그는 갈 데가 없어 레이나와 비키가 같이 사는 집에 당분간 들어앉아 살기로 했다. 그 사이 트로이는 레이나에게 들이대지만 거절당한다.
그런가 하면 비키는 GAP 매장에서 일하며 승승장구하지만 에이즈의 공포에 시달린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런 곳에서 일한다고 레이나에게 무시당한다. 그렇다, 레이나와 트로이와 비키 그리고 새미는 대학 동기 졸업생이다.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지만 막상 사회에 나오니 제각각 다른 길을 가고 있다.
30년 만에 국내 최초 개봉한 청춘 영화 바이블
2년 전 큰 호평을 받은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세브란스: 단절>의 연출과 제작을 맡아 다시금 천재성을 입증한 벤 스틸러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 등으로 코믹한 이미지를 다졌다. 그런데 사실 그의 본업은 배우보다 감독에 가깝다. <태양의 제국>으로 연기 데뷔를 했지만 그의 이름을 알린 건 다름 아닌 연출이었으니 말이다.
벤 스틸러는 1994년 <청춘 스케치>로 장편 연출 데뷔를 이뤘다. 흥행에 성공했고 호평도 받았다. 영화는 단숨에 199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 영화 타이틀을 달았다. 그런데 한국에선 개봉하지 못하고 비디오로 직행했다. 당시는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전성시대, 그리고 한국은 경제 호황 시대였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흔들리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굳이 찾아볼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청춘 스케치>가 자그마치 30년 만에 국내에서 최초 개봉했다. 비록 소규모 단독 개봉이지만 개봉 자체에 의미가 있다 하겠다. 어느덧 중년이 된 벤 스틸러, 에단 호크 그리고 위노나 라이더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의 원제는 'reality bites'다. '현실의 조각'쯤 된다고 한다. 의미심장한데, 30년 전 미국 청춘의 현실이 지금 우리네 청춘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이상을 펼치기는커녕 너무 높은 현실의 벽
네 청춘은 각각 처한 상황과 이유로 방황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레이나는 수석 졸업생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멋진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한다. 하지만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 뭐라고 해야 한다. 물론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절친 비키가 옷 매장에서 지배인 자리에 올라도 인정하지 않는다.
트로이는 도토리 쳇바퀴 돌듯 남들처럼 한 곳에 메여 있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역시 당장 먹고살아야 한다. 이것저것 잠깐잠깐 해 보지만 모두 오래 하지 못한다. 그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편 비키는 에이즈 공포에 떨고 새미는 알짱거린다.
각자의 이상을 품고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이상을 펼치긴커녕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이상을 펼치려면 돈과 안정된 삶이 마련되어야 할 텐데, 그러다 보면 이상을 펼칠 열정이 사라질까 봐 걱정된다. 그러니 현실에도 살짝 발붙이고 이상에도 살짝 발을 걸치는 애매모호한 모양새가 되곤 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청춘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방송국 부사장 마이클의 존재가 현실을 상징하고 대변한다. 트로이는 그를 두고 여피족(yuppie)이라고 하는데, 젊음(young)과 도시(urban)와 전문직(professional)의 머리글자를 따온 1980~1990년대 신조어다. 가난 따위 모르고 살아온 도시의 젊은 인텔리. 비단 30년 전이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통용될 것 같다. 그러지 못한 이들에겐 언제나 선망의 대상으로 있으면서.
그러니 레이나도 그에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람 자체가 세련되고 멋지고 쿨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하필이면 그녀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힘까지 있다. 그런가 하면 트로이는 그를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를 휘감고 있는 건 현실적인 것들뿐이니 이상만 추구하는 트로이와는 상극 중 상극이라 하겠다.
30년 전 20세기 말을 대표하는 청춘 영화의 바이블을 제대로 접하니 감회가 새롭다. 청춘은 다시 오지 않고 청춘 때만 할 수 있는 게 있으며 비록 겉치레일지라도 세상은 청춘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즐기진 못하더라도 자신이 인생의 푸르른 봄에 살고 있다는 걸 자각하면 좋겠다. 그리고 힘들 땐 한 발짝 떨어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일 여기로 오세요... '반딧불이' 별천지가 펼쳐집니다
- 5·18조사위, 정호용·최세창·최웅·신우식 '내란목적살인' 검찰 고발 의결
- [단독] 최재형 보은군수·공무원 20명 평일 근무시간에 골프
- 기시다 '독도 망언' 외교부 자료서 삭제... 윤 정권 무슨 속셈인가
-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 이성윤, '김건희 종합 특검법' 발의... "김건희씨는 특수계급인가"
- [그래픽뉴스] 윤석열-이종섭 개인폰 통화, 긴박했던 5시간 30분
- 민희진, 하이브에 화해 제안 "뉴진스 쉬면 서로 손해"
- "소리날 정도로 때리진 않았다" 카라측 '동물폭행' 의혹 반박
- 오세훈 시장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