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러 본토 공격 허용" 러 "핵무기" 언급…우크라전 격화 되나

박형수 2024. 5. 3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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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최대 무기 지원국인 미국이 자국산 무기로 러시아 영토 내 군사 시설을 타격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에 일부 허용했다. 미국이 핵을 보유한 적국에 대한 군사 공격에 자국 무기의 사용을 승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는 ‘핵무기’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경고하며 하르키우를 미사일로 공습했다. 3년째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날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무장관 회의 이후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요청에 따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무기를 사용한 러시아 내부 공격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앞서 전날 폴리티코는 복수의 미국 당국자 발언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하르키우 방어 목적’에 한정해 ‘국경 근처의 러시아 영토 내에 위치한 러시아 군시설’을 미국산 무기로 반격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할 무기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중거리 유도 다연장 로켓 시스템(GMLRS)과 야포 체계라고 보도했다.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는 러시아 본토 공격을 계속 금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독일 정부도 자국이 공급한 무기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 허용했다. 독일은 그동안 "국제법의 틀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했지만, 미국이 하르키우 인근 접경지에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데 미국 무기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한 사실이 알려지자 입장을 바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미국, 중대한 전환 맞아"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비록 제한적이긴 하나,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에 "중대한 전환(important shift)"을 의미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미국은 그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서도, 자국산 무기를 활용한 러시아 본토 공격에 대해선 ‘제 3차 세계대전을 피해야 한다’며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9일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를 방문한 블링컨 장관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러시아군이 미국의 ‘러시아 영토 공격 금지’ 원칙을 교묘히 악용해 자국 영토 내 국경에 바싹 붙은 채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하고 있다고 보고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WSJ에 따르면, 앞서 지난 15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원칙 수정’을 건의했다.

미국의 에이태큼스 발사 모습. AFP=연합뉴스


실제로 지난 10일 러시아가 접경지인 하르키우에 지상전을 개시한 뒤, 러시아군은 국경에 붙어 안전지대를 확보한 채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확연한 열세에 놓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에 무기 사용 제한을 풀어달라고 촉구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5~9일 프랑스 국빈방문, 오는 7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창설 75주년 정상회의 등을 앞둔 상태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동맹의 단결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작용한 것으로 FT는 해석했다. 최근 영국과 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국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등도 서방이 지원한 무기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에 반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미국을 압박해왔다.

이와 관련, NYT는 이번 조치에도 러시아가 하르키우 등에서 공세를 강화할 경우 미국이 무기 사용 제한을 더 완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미국·나토가 금기시했던 ‘러시아 본토 타격’을 제한 없이 허용하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이란 얘기다. 한 고위 당국자는 “이것은 새로운 현실이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새로운 국면(a new era)”이라고 NYT에 말했다. 29일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로 러시아 본토 내 군사 목표물을 일부 또는 제한 없이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지지를 표명한 국가가 10개국 이상이라고 전했다.

하르키우의 한 쇼핑센터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불길이 치솟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심각한 결과" "비례적 대응" 경고


이에 대해 러시아는 31일 새벽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를 미사일로 공습하며 보복성 공격을 이어갔다. 하르키우주(州) 접경지 노보바르스키에 러시아의 S-300, S-400 미사일 5기가 떨어져 주거용 5층 건물을 포함한 건물 20채가 피해를 봤다. 파괴된 건물에선 현재까지 시신 4구가 수습됐고 25명이 다쳤다.

우크라이나는 30일 밤 러시아가 점령 중인 크림반도를 미국에서 지원받은 무기인 에이태큼스 지대지 미사일로 공격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병합했으나 본토라고는 할 수 없다.

러시아는 미국의 결정에 대해 ‘핵무기’ ‘비대칭 보복’ 등을 거론하며 전쟁 격화 가능성을 경고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31일 텔레그램 채널에 “우크라이나와 나토 동맹은 모두 파괴적인 힘의 대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또 러시아가 전술핵을 쓰지 않을 것이란 서방의 관측을 가리켜 “그들의 경솔한 추측보다 인생은 훨씬 나쁘다”고도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같은날 "우리는 미국 무기가 이미 러시아 공격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미국이 얼마나 깊이 개입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러시아 하원(두마) 안드레이 카르파톨로프 국방위원장도 “비대칭 보복”을 하겠다며 위협했다. 이는 전날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언급한 ‘비례 대응’ 보다 한층 더 강경한 표현이다. 지난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이 자국 무기로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영토를 타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며 핵 공격 가능성을 암시한 바 있다.

31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주거용 건물 포격 현장에서 구조 작업 중인 우크라이나 구조대원들. EPA=연합뉴스


한편 러시아는 프랑스 정부에 ‘우크라이나 파병’ 관련 보도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앞서 르 몽드는 지난 30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수십명의 훈련 교관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자하로바 대변인은 “프랑스 정부는 모호한 표현 뒤에 숨지 말고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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