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독도 망언' 외교부 자료서 삭제... 윤 정권 무슨 속셈인가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외교부가 발간한 <2018 일본 개황>에 들어 있었던 '역사왜곡 사례' 항목이 <2023 일본 개황>에서 빠진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빠진 내용을 보충할 생각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올해 일본 개황 자료를 종합적으로 보완하여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라며 "최종본에는 말씀하신 여러 사안들이 골고루 수록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지난해 3월 15일에 발간한 것이 최종본이 아니었다고 해명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방부가 발간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라는 등 일본 측 입장을 반영한 표현이 들어간 것이 문제가 됐다. 그달 28일 국방부는 교재를 회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에 유리한 자료가 발행된 뒤에 논란이 터지면 뒤늦게 수습하는 일이 윤석열 정권하에서 횟수를 더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일본 개황>, 왜 3월 15일에 공개했을까
▲ <2018 일본 개황>의 목차. |
ⓒ 외교부 |
그런데 지난해 3월 15일 공개된 <2023 일본 개황>의 'PART 5 한·일 관계' 밑의 '06. 참고자료'에는 과거사 반성에 관한 발언도, 역사왜곡에 관한 망언도 나오지 않는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역사왜곡 언급 사례'라는 것이 목차에도 나오지 않는다. 2018년에 이어 5년 만에 나온 이 자료에는 한일회담·재일교포·청구권·어업·평화선·문화재에 관한 개략적 설명이 제시될 뿐이다.
▲ <2023 일본 개황>의 목차. |
ⓒ 외교부 |
한일 간의 식민지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에 과거사에 관한 반성이나 망언이 양국 관계의 주요 이슈가 될 때가 많다. 일본 당국자가 반성의 태도를 보이느냐, 망언을 하느냐에 따라 특정 시기 한일관계의 양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발언들은 한일관계를 이해하는 지표로 작용한다. 1996년 이래의 <일본 개황>이 이런 발언들을 정리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23 일본 개황>이 공개된 2023년 3월 15일은 전범기업의 강제징용 배상책임을 윤석열 정부가 떠안기로 하는 제3자 변제 방침 때문에 나라가 들썩일 때였다. 그달 6일에는 박진 외교부장관이 이 방침을 공식 선언했고, 그달 16일에는 윤 대통령이 이 방침을 들고 도쿄를 찾아갔다. 그날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오므라이스를 놓고 러브샷을 했다.
2018년판 자료가 2019년 1월 30일 공개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개황을 꼭 3월 15일에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임수석 대변인도 위 브리핑에서 "매년 정례적으로 발간하는 외교백서와는 다른 성격의 자료"라며 "작년에 발간된 개황 자료는 부정기적으로 발간된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판에 대한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의 상세 설명에 따르면, 이 자료는 공개되기 보름 전인 3월 1일 발행됐다. 삼일절에 발행된 자료를 한일정상회담 전날 공개했으니, 윤석열 정권이 날짜 선정과 관련해 한일관계를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거사 반성에 관한 발언이든 역사왜곡에 관한 망언이든, 일본의 과거 악행에 관한 발언이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찾아가기 하루 전날 공개된 자료에서 이런 발언들이 사라진 것은 이를 거론하지 않고 싶어 하는 윤석열 정권의 태도를 반영한다. 역대 한국 정부와의 차별성을 일본에 보여주고자 하는 의중이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
기시다의 '독도 망언'을 한국 정부가 지우려 하나
그런데 자료를 삭제한 것이 꼭 한일관계 자체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2018 일본 개황>의 '역사왜곡 언급 사례'를 읽다 보면, 기시다 총리의 이름이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이 파트에서 독도에 관한 망언을 가장 많이 한 당국자는 바로 외무대신 시절의 기시다 총리다. 외무대신이 아니라 독도대신이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 <2018 일본 개황> 280쪽.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독도 망언이 가장 압도적으로 많다. |
ⓒ 외교부 |
2018년판에 나오는 2013년 3월 28일 당시의 기시다는 국회 외교연설에서 "말할 필요도 없이"라는 단호한 표현을 써가며 "한국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하게 전달하고 끈기 있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발언했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런 뜻을 한국에 분명히 전달하겠다고 국회에서 다짐을 했던 것이다.
2015년 3월 19일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나온 기시다의 발언은 상당히 공격적이다. 이날 그는 "독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한국에 의한 독도 점거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채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 점거"라고 비판했다.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2023년 11월 2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 연합뉴스 |
일본 개황에 소개된 기시다의 독도 발언은 외무대신의 공식 의견이지만, 상당부분은 개인 소신에도 기초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전반적인 정치성향에서는 보수로 분류되지만, 독도와 관련해서만큼은 그 어떤 극우보다도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 그의 잦은 독도 망언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
해마다 2월 22일에 일본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중앙정부 대표가 참석하는 관행이 생긴 것은 2013년 2월부터다. 두 달 전인 2012년 12월 26일 기시다가 외무대신으로 취임한 뒤에 일어난 일이다.
2013년 3월 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기시다 외무대신은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의 사쿠라우치 후미키 의원으로부터 독도와 쿠릴열도 두 곳에 관한 질의를 받았다. 그런데 기시다는 한 가지에 대해서만 답변했다. 러시아와 분쟁 중인 쿠릴열도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답하지 않은 채 독도를 되찾는 문제에 관해서만 대답을 해주었다.
2021년 9월,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총재 겸 총리대신의 후임을 뽑는 선거운동이 있었다. 이때 출마한 후보들인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노다 세이코, 다카이치 사나네 중에서 독도에 대해 가장 명확한 입장을 피력한 인물은 기시다였다.
다른 후보들도 다들 강경했지만, 기시다는 거기에 더해 구체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 문제를 제소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의례적으로 독도 망언을 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계획'을 갖고 망언을 해왔던 것이다.
일본발 망언 중에서 한국인들을 가장 크게 분노케 하는 것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이다. <2018 일본 개황>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그런 망언을 가장 많이 한 것으로 정리됐다. 독도에 관한 망언만 놓고 보면, 기시다 후미오는 아베 신조보다 한국인들의 미움을 더 많이 받기에 충분하다.
윤석열 정부는 기시다의 망언을 대거 삭제한 <2023 일본 개황>을 윤 대통령의 도쿄 방문 직전에 공개했다. 기시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악화시킬 만한 내용이 그 속에 많이 들어 있었던 것과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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