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세종대왕상도 노렸다" ‘이 팀장’에 국보도 당할 뻔
지난해 말 발생한 ‘경복궁 담장 낙서 사건’은 불법 사이트를 홍보하려던 일당의 범행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스프레이로 낙서한 10대들과 범행을 지시한 30대 남성 등을 검찰에 넘겼다.
31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사건 총책인 강모(30)씨를 문화재보호법상 손상·은닉, 정보통신망법 위반(음란물 유포)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강씨 사주를 받고 낙서를 한 임모(18)군과 김모(17)양, 강씨의 사이트 운영을 도운 조모(19)씨도 불구속 상태로 검찰로 넘겼다. 이들은 모두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일면식 없는 사이였다.
경찰에 따르면 불법영상·음란물 공유 사이트를 운영하며 일명 ‘이 팀장’으로 불렸던 강씨는 사이트 이용자 수를 늘리고 광고 단가를 높이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씨는 사기 등 전과 8범으로 지난해 초 출소한 뒤 불법영상 사이트 5개, 음란물 공유 사이트 3개를 운영하며 도박 사이트 등으로부터 배너 광고를 받았다. 이렇게 챙긴 수익은 약 2억5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사이트에선 영화 등 저작물 2368개, 불법 촬영물 및 아동 성착취물 등 음란물 900여 개가 유통됐다.
강씨는 텔레그램 등에서 금전적 대가를 약속하며 낙서를 실행할 공범을 물색했다. 미성년자인 임군과 김양을 섭외한 강씨는 “500만원을 줄테니 경복궁 담장에 사이트 홍보 문구를 쓰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16일 오전 1시쯤 빨간·파란색 스프레이 등으로 “영화 공짜” 등 문구를 경복궁 영추문 등 3곳에 썼다. 강씨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현장을 돌며 감시하고 구체적인 장소 등을 지시하기도 했다.
강씨는 이로부터 이틀 전엔 국보인 숭례문에도 범행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성년자인 A군(15)에게 숭례문과 광화문 세종대왕상 등에 스프레이로 낙서하라고 지시했지만 겁을 먹은 A군이 중도에 포기하면서 미수에 그쳤다.
이후 강씨는 임군에게 언론사에 낙서 훼손 사실을 익명으로 제보하라고 지시했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임군은 교통비 명목으로 10만원을 받았지만 범행 뒤 500만원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범행이 모두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진 만큼 경찰 수사도 쉽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임군에게 10만원을 송금한 조씨를 검거한 데 이어 지난달 사이트 운영에 관여한 세 명을 붙잡았다. 이들이 텔레그램에서 가상화폐 등 자금을 주고받는 과정이 단서가 됐다고 한다.
오규식 사이버수사2대장은 “현재 수사 중이어서 구체적인 수사 기법은 밝힐 수 없지만 빅데이터 프로파일링과 국제 공조를 통해 텔레그램 기록을 추적했다”고 설명했다.
159일 동안 경찰을 따돌린 강씨의 도피 행각은 치밀했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강씨는 지난달 말 여권을 발급받은 뒤 해외 도피를 준비했다. 그 사이 연고 없는 전남 여수의 한 숙박업소에서 여자친구와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우회해 이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팀에 꼬리를 잡힌 강씨는 지난 22일 숙박업소에서 검거됐다.
25일 구속된 강씨는 지난 28일 사이버수사대 건물 1층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도주를 시도했다. 잠시 쉬고 싶다며 담배를 피우겠다고 한 뒤 청사 에어컨 실외기를 밟고 담을 뛰어넘어 탈출했다. 키 180㎝에 몸무게 59㎏의 마른 체격인 강씨는 왼쪽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강한 힘을 줘 풀었다고 한다. 두 시간 만에 인근 교회의 옷장에서 붙잡힌 강씨는 “부인해도 유죄를 받아 최소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주를 계획했다”고 했다.
경찰은 강씨를 제외한 나머지 공범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마치는 대로 검찰에 추가 송치할 예정이다. 오규식 대장은 “한번 훼손되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국가문화유산 후손 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는 한편, 사이버 성폭력 범죄와 저작재산권 침해 사범 척결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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