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멀어진 고우석... 마무리가 그리운 LG
[이준목 기자]
▲ 지난 3월 19일 미국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에 출전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고우석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훈련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트레이드에 이어 방출까지, 고우석에게는 '잔인한 5월'이다. 야심차게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던 고우석의 '메이저리그 드림'이 실패의 기로에 놓인 분위기다.
고우석의 소속팀 마이애미 말린스는 5월 31일, 고우석을 구단의 메이저리그 40인 명단에서 제외하고 방출대기(DFA)시킨다고 발표했다. 마이애미는 고우석 대신 최근 텍사스에서 영입한 투수 숀 앤더슨을 40인 명단에 올렸다.
고우석은 앞으로 향후 5일 내에 다른 팀에서 영입 의사를 받을 경우 트레이드 될 수 있다. 만일 제의가 없다면 마이너리그 선수 자격으로 마이애미 구단에 남거나, 아니면 팀을 떠나야 한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고우석의 메이저리그 도전 가능성은 멀어졌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고우석은 KBO리그에서는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통산 354경기에 출전하여 368.1이닝 19승 26패 6홀드 139세이브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하며 특급 마무리로 군림했던 투수다. 2023시즌에는 LG에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기고 해외진출 자격을 얻게 된 고우석은,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고 샌디에이고와 2년 450만 달러(약 62억 원) 계약을 맺으며 빅리그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처남 이정후(샌프란시스코)와 함께 동시에 '가족 메이저리거'의 탄생도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상황이 꼬였다. 고우석은 스프링 트레이닝 시범경기에서 6경기 5이닝을 던져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12.60 WHIP 2.8로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지난 3월 한국에서 열린 친정팀 LG와의 서울시리즈 스페셜 게임에서도 1이닝 2피안타(1피홈런) 2탈삼진 2실점의 난조를 보였다. 고우석에게 실망한 샌디에이고는 그를 개막 로스터에서 제외하고 마이너리그 더블A로 내려보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고우석은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샌디에이고 산하 마이너리그 더블A 샌안토니오 미션스에서 남긴 기록은 10경기 12.1이닝 2패 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4.38에 불과했다.
샌디에이고는 지난 4일 마이애미 말린스와 1대 4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타격왕 출신 올스타 내야수 루이스 아라에스를 영입하기 위하여, 고우석을 비롯한 딜런 헤드, 제이콥 마시, 네이선 마토레라까지 4명의 마이너리거를 마이애미로 보냈다. 고우석은 빅리그 데뷔도 하기 전에 트레이드부터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나마 마이애미에서는 같은 마이너지만 트리플A로 한 단계 승격했고, 현재까지 7경기 9이닝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하며 샌디에이고 마이너 시절보다는 다소 나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고우석은 마이애미에서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마이애미는 고우석보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더 많은 앤더슨을 선택했다.
앤더슨은 KBO리그 KIA 타이거즈에서 뛰며 14경기 4승 7패 평균자책점 3.76을 기록하여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부상으로 KIA에서 방출된 이후 텍사스와 계약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콜업되어 2경기 3.1이닝 평균자책점 5.40을 기록했다. 앤더슨은 지난 30일 마이애미로 현금 트레이드되면서 고우석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모양새가 됐다.
이제 고우석에게 미국에서 남은 선택지는 마이애미에 잔류하거나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어 빅리그 재도전을 노리는 것이다. 고우석을 밀어낸 앤더슨만 해도 텍사스에서 DFA가 되어 트레이드된 선수였다.
하지만 고우석과의 차이점은, 앤더슨은 최소한 미국 무대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실적이 있다는 점이다. 앤더슨의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65경기 출장 3승 5패 평균자책점 5.83이며, 올해 텍사스에서도 트리플A에서는 21.1이닝 동안 자책점 2.53으로 호투한 바 있다.
현실적으로 고우석이 미국에 남는다고 해도 빅리그에 입성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않아 보인다. 고우석은 미국무대에서 아직 검증된 실적도 없었고 올해 마이너리그에서 보여준 구속과 구위도 신통치 않았다. 결정적으로 마이너리거와 불펜투수 기준으로는 고연봉 선수라는 부담까지 있다.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한 처남 이정후와 함께, 두 KBO리그 대표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첫해 도전은 실망스러운 성적표만을 남기게 됐다.
사실 많은 전문가와 야구팬들은, 빅리그 계약이 보장된 이정후와는 달리 고우석에 대해서는 미국무대 진출 선언 때부터 성공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며 우려한 바 있다. 고우석은 지난 2023시즌 KBO리그에서도 44경기 44이닝 3승 8패 15세이브 평균자책점 3.68, 한국시리즈4경기 4.1이닝 1승 1패 1세이브 자책점 8.31이라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기에, 훨씬 수준이 높은 미국무대 도전은 무리라는 회의적인 전망을 받은 바 있다. 마이너리그 기준으로도 고우석의 구속은 그리 빠른 편이 아니며 구종이 다양하거나 제구력이 두드러지게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선택지는 국내 복귀다. 포스팅으로 미국에 진출한 고우석이 KBO리그 무대로 돌아온다면 원소속팀 LG와 계약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고우석이 떠난 이후, LG도 지난 시즌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다. 불펜진은 새 마무리 유영찬과 베테랑 김진성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지난 시즌만큼의 안정감은 아니라는 평가다. 하지만 포스팅을 거쳐 해외에 진출하면서 임의해지 선수가 된 상태라 규정상 올해 복귀는 불가능하다.
염경엽 LG 감독은 고우석이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된 지난 5월초 인터뷰에서 고우석의 거취에 대한 질문을 받자 "솔직히 내 입장에선 고우석이 빨리 돌아오는 게 좋다. 하지만 선수가 미국 무대에서 좋은 경험을 쌓고 본인이 꿈꾸던 투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관건은 선수 본인의 의지다. 고우석이 아직 빅리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마이너리그에서 험난한 도전을 계속 이어갈 수도 있다. 다만 선수의 꿈과 도전 자체는 존중한다고 해도, 걱정스러운 것은 고우석이 어린 유망주도 아니고 한창 전성기를 보내야 할 나이의 선수라는 점이다.
기약없이 마이너리그에서 불확실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과연 야구인생에 얼마나 득이 될지는 미지수다. 미국무대에서 냉정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 고우석이 과연 결단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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