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감정은 없다... 수많은 어른들에게 필요했던 영화

김성호 2024. 5. 3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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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37]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픽사 in 전주' <인사이드 아웃>

[김성호 기자]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했다. 아무리 화려한 꽃도 열흘을 붉지 못하고, 아무리 대단한 권력도 십 년을 가기 어렵다. 젊음과 미모는 순식간에 시들고, 부와 명예 또한 고꾸라지기 일쑤다. 일부 반례가 있기야 하겠으나 반례는 반례일 뿐, 거침없이 흐르는 시간의 수레바퀴로부터 좋은 것을 지켜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간 세계 가장 뜨거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군림한 픽사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부터 <라따뚜이> < 월-E > <업> 등 걸작이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작품을 그야말로 양산해낸 픽사다. 전 시대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되는 CGI 기술력에 더하여 직접 창작한 극이 기존 애니메이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작품성은 물론 산업적 측면에서도 픽사의 기세는 무서웠다. 픽사를 삼킨 월트 디즈니 픽쳐스는 픽사의 창의적 작품군을 전 세계로 배급하며 관련 상품을 끊임없이 제작해 유통했다. 2013년 디즈니 스튜디오의 <겨울왕국>이 나오기까지 픽사의 독주라고 불러도 좋을 시대가 이어졌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또한 픽사의 독차지였다.

속편 장사에 몰두하던 픽사가 기울어갈 무렵
 
▲ 인사이드 아웃 포스터
ⓒ JIFF
 
그랬던 픽사가 2010년대 들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2010년 <토이 스토리 3>, 2011년 <카 2>, 2013년 <몬스터 대학교>, 2016년 <도리를 찾아서>, 2017년 <카 3: 새로운 도전>, 2018년 <인크레더블 2>, 2019년 <토이 스토리 4>로 이어지는 작품군에서 보듯이, 픽사의 역량이 점차 독창적 창작물에서 속편 제작으로 기울고 있었던 것이다. <토이 스토리 3>처럼 뛰어난 작품도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은 원작에 미치지 못했고, 일부 참담한 실패도 이어졌다.

같은 기간, 다른 스튜디오의 역주 또한 두드러졌다. 부진을 거듭하던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가 내놓은 <겨울왕국>이 시작이었다. 그나마 드림웍스 정도 말고는 픽사의 대항마가 없다는 한탄이 무색하게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미니언즈>,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의 <몬스터 호텔> 시리즈 등이 연달아 흥행하며 픽사가 왕좌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다는 세평까지 끌어냈다. 마침 <겨울왕국> 이후 실사영화 못지않게 성장한 애니메이션 시장이 다른 스튜디오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곧 개봉을 앞둔 <인사이드 아웃 2>의 전편, <인사이드 아웃>은 이 같은 흐름에서 제작된 픽사의 창작 애니메이션이다. 기존 동화를 각색해 애니메이션화 시키던 디즈니가 순수창작인 <겨울왕국>으로 시장을 재편한 데 자극받은 것일까. 속편 제작에 전념하며 안주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픽사가 총력을 기울인 작품이 <인사이드 아웃>이다.

개봉 임박 <인사이드 아웃 2>, 원작은 어땠을까?
 
▲ 인사이드 아웃 스틸컷
ⓒ JIFF
 
총감독부터가 피트 닥터, 칼아츠 졸업 뒤 픽사에 영입된 애니메이션 업계의 기수가 아닌가. 데뷔작 <몬스터 주식회사>를 시작으로 두 번째 작품 <업>을 통해 픽사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했던 그다. 조직 최대의 위기에서 그를 다시 한 번 마운드에 올린 건 자연스런 수순처럼 여겨진다. 이 영화는 한편으로 그간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에 대하여 자주 언급되던 시각, 이들이 관객의 감정을 철저히 분석하여 심리적으로 사건과 캐릭터를 매만진다는 비평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이야기와 캐릭터, 픽사의 주무기 중 하나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제목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은 안에 든 것을 바깥으로 쏟아낸다는 의미다. 무엇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뜯어보고 다시 조립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인간에 대해 알기 위해서도 그를 구성하는 여러 내적 요소까지를 하나하나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인사이드 아웃>이 바로 그와 같은 영화이며, 영화가 알고자 하는 건 바깥이 아닌 저 자신이다. 말하자면 영화는 제 감정을 이루는 여러 요소를 쏟아 바라본 뒤 그를 알고 다시 수습한다. 제 감정의 모양이며 흐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어른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닌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일군의 픽사 작품들과 함께 <인사이드 아웃>을 소개한 데는 이 영화의 의미며 메시지가 변화하는 시대와도 무리없이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을 테다. 물론 내달 개봉하는 <인사이드 아웃 2>의 홍보와 긴밀히 엮여 있는 때문도 있겠지만 말이다.

제 내면을 돌아보기, 감정의 얼굴을 살펴보기
 
▲ 인사이드 아웃 스틸컷
ⓒ JIFF
 
영화는 사람들 머릿속에 감정을 빚어내는 일종의 컨트롤타워가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11살 소녀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타워 속엔 다섯 개의 감정들이 존재한다. 기쁨이와 슬픔이, 버럭이와 까칠이, 소심이까지 다섯 명의 감정들이 제 역할을 수행하며 라일리가 느끼는 온갖 감정들을 생성해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기쁨이와 슬픔이가 컨트롤타워에서 떨어져나오는 일이 발생하고, 라일리는 전처럼 만족스런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기쁨이와 슬픔이가 컨트롤타워로 복귀해 라일리를 일상으로 되돌리는 것, 급박하다면 더없이 급박한 이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가 되겠다.

영화는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인격을 가진 감정들이 있고, 사람마다 이들 중 대표감정 하나씩을 갖는다는 설정 아래 전개된다. 누군가는 버럭이가, 누구는 까칠이가, 누구는 기쁨이가 그이를 대표하는 감정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사람이 제 내면의 구성요소를 들여다보도록 한다는 뜻이다.

태어난 수십 년 쯤 산 인간이라면 제 내면을 찬찬히 돌아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겠으나 불행히도 팍팍한 일상은 그와 같은 여유며 자세를 허락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써 저는 돌아보지 않은 채 되는 대로 사고하고 되는 대로 감정을 표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떠올린다. 그들 중 적잖은 수는 일어난 감정대로 행동하여 타인의 마음에까지 생채기를 내놓고는 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그것이 얼마나 철없고 무례한 행동인지를 알지 못하니, 이를 가리켜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경우라고 말한다.

쓸모없는 감정은 없다는 발견

<인사이드 아웃> 속 감정들 가운데 쓸모없는 것은 없다.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분노와 짜증, 소심한 것마저도 나름의 기능이 있다.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저를 지키려 든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의 평온을 지킨다. 물론 감정이란 이성이며 지성과는 별개의 것이어서 수시로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회피는 고립을, 분출은 갈등을, 기쁨은 오만을, 슬픔은 무력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두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히 다룬다면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제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을 테다. 이를테면 소심한 마음이 신중한 마음으로, 버럭하는 마음은 용기로, 기쁨은 퍼져나가는 즐거움으로, 슬픔은 공감으로 쓰일 수가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도 못난 것이 아니다. 모든 감정이 쓰임이 있다.

<인사이드 아웃>은 저를 돌아보게 한다. 이 영화는 감정을, 나아가 나를 알게 한다. 그로부터 남을 이해하게 하고, 깊이 다가서게 한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 전주돔, 그러니까 올해의 픽사돔을 찾은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저와 남에 다가서는 기회를 얻었으리라 여긴다. 단 한 걸음이라도, 단 몇 초라도 그럴 수 있었다면 이 영화는 제 역할을 해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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