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외교독립운동', 생소했지만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이윤옥 기자]
"오늘(5월 30일) 외교부가 마련한 '여성 외교독립운동으로 바라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여성의 역할(아래 여성외교독립운동)'이란 주제의 발표를 듣고 청중들께서 '여성외교독립운동'이라는 말이 다소 생소했을지 모릅니다.
이번 주제는 외교부에서 실험적으로 시도해 본 것으로 사실은 이 주제를 기획한 담당자로서 여성독립운동을 '외교적인 측면'에서 조명하는 작업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 아래 전 세계에서 펼쳐졌던 외교독립운동에 대한 대내외 인식을 확산하고 균형감있고 체계적인 학술적 토양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이긴 했으나 이러한 시도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솔직히 회의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립운동의 다각적인 시각의 필요성을 확인했고, 외교부에서 시작한 '외교독립운동'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돼 실무자로서 기쁩니다."
'여성외교독립운동' 발표장을 지켜본 외교부 박장호 외교정보기획국장의 말이다. 지난 5월 29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협력'이라는 주제로 제19회 제주포럼이 개막된 가운데 둘째날 세션으로 30일 오후 3시부터 '여성 외교독립운동으로 바라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여성의 역할'이란 강연이 있었다. 연사는 기자가 맡았다.
여성외교독립운동, 솔직히 감이 오지 않았다
사실 이번 강연 의뢰는 지난 4월 3일, 외교부 정지훈 외무서기관으로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됐다. 실무를 맡은 정 서기관으로부터 '여성외교독립운동'에 관한 발표를 해줄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몹시 망설였다.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전반적인 강연이라면 원고 없이도 몇 시간씩은 족히 할 수 있을 뿐더러 미주(하와이, 미국 본토), 중국(임시정부, 만주 등), 러시아, 일본, 멕시코 등 특정 지역을 한정한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던 나였다. 나아가 3.1만세운동, 의열투쟁, 학생운동, 광복군, 계몽운동 등 어떤 분야를 지정한다고 해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여성외교독립운동'이라는 주제는 솔직히 생소했다. 얼른 감이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라를 일제에 강탈당한 채 빈손으로 조국독립을 위한 처절하고도 고난에 찬 발걸음을 내디딘 선열들의 삶에서 그것도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처지에서 '여성외교독립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이미지를 기자는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외교독립운동'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계속 꼬리를 무는 이 화두에 '강연을 하겠다'라고는 했으나 고민은 이어졌다. 요지문을 제출하고 강연을 위한 발표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고쳐쓰기를 여러 차례 끝에 30일 드디어 강연장에 섰다.
▲ 여성외교독립운동 발표장 2024제주포럼, 여성외교독립운동 발표장 모습 |
ⓒ 외교부 |
강연자료를 만들면서 깨달은 것은 그동안 '독립운동=무장투쟁'이라는 깊은 고정관념이 나 자신 속에 꽁꽁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강연 주제에 근접된 시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여성외교독립운동'이라는 주제의 신선함에 놀랐다. 그래서 이미 제출했던 요지문과 발표자료를 다시 고치고 또다시 고쳤다.
이번 포럼이 국제적인 포럼이기에 더더욱 외국인의 처지에서 한국 여성독립운동의 특징과 그 의미 그리고 실천했던 실제 예로 들기 좋은 여성독립운동가는 누가 좋을까 등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강연과는 사뭇 다른 시각으로 이번 강연을 준비했다.
"그동안 독립운동가(남녀 포함)라고 하면 무장투쟁 부분이 많이 드러났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올해 3.1절 105돌을 맞이한 해로서 이제는 외교적인 관점에서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교육분야, 문화분야, 계몽문야 등 다각적인 관점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고 그 업적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여성외교독립운동에 대한 발표는 그 첫 삽을 떴다는 관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여성외교독립운동 세션의 좌장을 맡은 국가보훈부 강윤진 보훈정책관의 말이다. 세션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외교적 관점이든, 문화적 관점이든 간에 '독립운동을 바라다보는 다양한 시각'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생각하게 됐다. 외교부에서 마련한 이번 세션은 바로 그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강연을 마치고' 나서 깨달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이러한 유연성 있는 다각적인 차원의 시각을 마련한 외교부의 참신한 시도에 마음속으로 응원의 손뼉을 쳤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장했고, 한(恨)으로만 바라다보던 독립운동을 외교, 문화, 교육 등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의 지평을 연 것 같아 기뻤다.
"일제강점기 당시 외국 국적 여성들의 독립운동, 발굴 필요 있어"
이날 외교부 주최의 '여성 외교독립운동으로 바라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여성의 역할' 세션에서는 국가보훈부 강윤진 보훈정책관이 좌장을 맡았고, 토론은 제프 로빈슨(Jeff Robinson) 주한 호주대사와 김정민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학예연구팀장이 맡았다.
제프 로빈슨 주한 호주대사는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2022), 이사벨라 멘지스(건국포장 추서, 2022), 데이지 호킹 (건국포장 추서, 2022) 등 3명의 호주 여성 선교사들이 부산 일신여학교(현 부산 동래여고)를 설립하고, 옥고 등을 감수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3.1만세운동에 참여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헌신한 사실을 소개했다.
아울러 제프 로빈슨대사는 특히 이사벨라 멘지스 선생의 조카이자 호주 역사상 최장수 총리를 역임한 로버트 멘지스 총리 재임시 일어난 한국전쟁에 호주군 파병을 결정한 것도 고모인 이사벨라 멘지스의 독립운동 활동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호주를 포함한 외국 국적 여성의 독립운동 활약상을 늦었지만, 한국 정부가 발굴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토론자인 김정민 학예연구팀장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여성 외교독립운동가의 업적과 역할이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미래세대의 통합적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균형 있는 독립운동사의 재조명이 시급하다고 했다.
김 팀장은 대한부인구제회 임원으로 하와이 여성독립운동을 이끈 김노디(김혜숙) 선생, 1919년 대한인총대표회의에 동참한 우조앤(우복자) 선생 등을 소개하면서 역사 속에 숨겨져 알려지지 않고 있는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다각적으로 연구·발굴해 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발표 끝부분에서 기자는 "21세기에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으로 국난의 시기에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러한 신념을 단순히 자신과 가족에 국한하지 않고 국가의 영역에까지 확산시켰다는 점을 이해한 바탕 위에서만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여성의 역할'이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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