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인생작 만난 변우석의 눈물 "이 감정 잊고 싶지 않아"

고은 2024. 5. 3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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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속 류선재 연기한 변우석

[고은 기자]

세상에는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방영 내내 시청률 4%를 유지했던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tvn)가 전례 없는 '신드롬'을 만들어낼 줄 누가 알았을까. 하루가 다르게 갱신되는 화제성 앞에 방송가도 딱 맞아떨어지는 설명을 붙이려고 노력하지만 어떤 단어도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마음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 OST '소나기'는 멜론 일간차트 5위에 오르며 최고 성적을 달성했고 시청자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마련된 팝업스토어는 밤샘 대기와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다. 최종화 단체 관람에 준비된 천 석은 5분도 안 돼서 매진됐다. 당장 6월부터 진행되는 변우석의 아시아 팬미팅 투어는 배우 본인도 티켓팅에 실패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드롬의 중심에는 배우 '변우석'이 있다. <선재 업고 튀어>(tvn)는 '임솔'(김혜윤)이 톱스타 '류선재'(변우석)를 살리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고, 끝내 서로를 구원하는 '타임리프 로맨스물'이다. 변우석은 10대, 20대, 30대의 모든 순간 속에서 오직 '솔'만을 사랑하는 순애보 '선재'를 연기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드라마는 16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배우 변우석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 펼쳐졌다.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변우석은 "'트루먼 쇼'인가 싶을 정도로 이 신드롬이 실감이 안 난다"며 소감을 전했다. 대만 팬들이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자신의 얼굴을 띄운 것을 보고는 꿈이 아닌가 착각했다고. 인터뷰 내내 "진짜요?" 라는 감탄사로 운을 뗀 변우석은 자신이 돌아온 길을 천천히 곱씹으며 믿기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눈물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 못 참았다"
 
 변우석
ⓒ 바로엔터테인먼트
 
- 마지막 화 단체 관람에서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그곳이 스태프 관이었다. 사실 선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스태프분들 덕분이다. 한 두 시간 전에 미리 조명을 설치해 주신 조명 감독님, 조명 스태프분들, 그리고 그림을 잘 담아주시는 촬영 감독님이 계셔서 가능했다. 혜윤이와 바닥에 앉는 신이 있었는데 예쁜 각도로 찍으려면 감독님은 물속으로 들어가서 촬영하셔야 했다. 장화신고 들어가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서 예쁜 앵글로 담아주셨다. 그리고 현장에서 스태프분들이 워낙 많은 사랑을 준다. 그 감사함도 컸고, 내가 사랑한 선재로서의 시간이 이제 끝나간다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못 참았다.(웃음)"

- 수영 선수, 배우, 아이돌까지 한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했다. 
"처음 대본 받고 작가님의 글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장면 안에 내가 꼭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막상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막막함도 있었다. 대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싶었다. 수영을 2~3개월 배웠고 노래는 음악 감독님이 섬세하게 잘 잡아주셔서 실력보다 결과물이 잘 나왔다. 가끔 혼자 코인 노래방 가거나 샤워할 때 틀어놓고 따라 부르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소나기' 많이 듣고 있다.(웃음)"

- 김혜윤 배우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혜윤이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리허설과 촬영 당시 혜윤이가 주는 감정, 그러니까 '임솔'을 연기하는 눈빛을 내가 받았기 때문에 오로지 선재로서 감정을 줄 수 있었다. 주인공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촬영하는 날이 많았는데 처음 해보니까 컨디션 조절이 힘들었다. 어떻게 컨디션을 잘 관리해서 연기에 집중하는 순간을 만들지 고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혜윤이가 초콜릿이랑 젤리를 많이 챙겨줬다. 아무래도 당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던 것 같다."

- '변우석 = 류선재'로 각인돼 본명을 잃었다는 얘기가 있다. 선재와의 싱크로율은. 
"내가 사랑했던 캐릭터로 불리는 일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싱크로율은...정확히 어느 정도 닮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어서다. 나도 좋아하는 게 있으면 꾸준히 하고, 오래 생각하는 편인데 선재의 깊이는 특별했다. 선재는 거절의 시간을 지나면서도 15년 동안 '솔'만 사랑하는 성숙함을 가졌지 않았나. 그런 선재를 연기하면서 선재가 가진 감정이 훨씬 진하다고 느꼈다."

- 드라마처럼 타임 슬립을 할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
"많이 얘기한 주제인데도 매번 답이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6살로 돌아가서 부모님에게 천재 아들을 안겨드리고, 할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는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다른 시간 속의 변우석이 또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선재 업고 튀어> 16화를 보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서 여기 있고 싶다."

올곧고 집요하게 노력하는 배우
 
 변우석
ⓒ 바로엔터테인먼트
 
변우석은 혜성처럼 등장한 것 같지만 어느새 9년 차 배우다. 모델로 먼저 얼굴을 알린 변우석은 '내가 하고 싶고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 연기'라는 것을 깨닫고 배우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시작은 흔들림의 연속이었다. 그는 "오디션은 물론 대본 리딩을 하고 나서 떨어질 때도 있었다. 가끔 친구들이 '우석아 넌 왜 안 나와?'라고 물어봤는데, 물론 장난인 걸 알지만 나에게는 뼈 같은 말들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힘든 순간이 닥칠 때마다 '이겨내자'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고 한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꽃 피면 달 생각하고' '힘쎈여자 강남순' 등 다양한 작품에 조·주연으로 출연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올곧고 집요하게 자신만의 궤적을 그린 변우석은 <선재 업고 튀어>를 만나 배우 인생 제2막을 열었다. 

- '웬만한 일은 다 못하는데 그게 내 원동력이다', '하고 싶은 건 한다'고 얘기한 걸 봤다. 욕망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갈망이 큰 것 같디. 연기를 잘하고 싶다기보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내 일을 잘하고 싶다. <선재 업고 튀어>를 만나고 작품이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많은 분들이 '월요병 치료제다', '사는 게 힘들었는데 행복해졌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배우의 일이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일이라는 자각이 들더라. 앞으로 더 깊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이 일에 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 <선재업고 튀어>는 열성팬 '임솔'이 최애를 살리는 얘기이기도 하다. 변우석도 덕질 경험이 있나.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어렸을 때는 우리 강아지 '피츠'를 덕질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서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너무 좋아했다. 그의 영화나 연기를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되게 잔잔하게 감정을 끌고 가다가 어떤 장면에서 폭발시키는 연기는 언제 봐도 놀랍다. 캐릭터는 <듄>의 '폴'이 가장 멋있었다면 영화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제일 좋아한다."

- 오디션 떨어지고 힘들 때 바다에 갔다고. 지금 바다에 간다면 무얼 하고 싶나.
"일단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맨발로 해변을 걷고 싶다(웃음). 작품 촬영 10개월, 방영 2개월까지 선재로 1년을 살았다. 그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 예전에는 오디션 떨어지고 힘들어서 바다에 왔는데 지금은 행복함과 또 다른 숙제를 안고 가지 않을까. 이제는 바다에 있는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 댓글을 많이 보는 편인가. 팬들이 예전 영상에 '선재야 나 2020년까지 왔어'라고 방명록을 남기는 중이다. '남편보다 선재'라는 말도 있다는데. 
"정말 너무 웃기다. 알고리즘에 내 옛날 영상들이 계속 뜬다. 댓글 보니까 항상 아련한 느낌으로 말을 걸고 있다. "너 보러 여기까지 왔어", "나 아직도 여기 있다"고 하더라(웃음). 그 덕에 나도 함께 과거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신기하다. 변우석이라는 사람의 10년을 함께 봐주시는 느낌이다. 이제 드라마 캐릭터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진짜 좋아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반응, 아이들 반응을 함께 올린 영상들도 봤는데 그것도 너무 웃겼다. 작가님이 옛날에 알던 친구들이 드라마를 보고 연락이 온다고 했을 때 특정 층이 아니라 많은 분이 드라마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체감했던 것 같다."

- 가족들과 주변 반응은 어떤가.
"엄청나게 대견해하신다. 사실 나도 실감이 안 나지만 주변 사람들도 실감을 못하는 것 같다. 부모님이 지인들에게 사인 요청을 많이 받아서 집에 가면 사인만 계속 하고 있다(웃음). 그럼에도 가끔 "이게 현실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에게 이런 순간이 찾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고 신기해서 그런 것 같다."

- <선재 업고 튀어>는 변우석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나. 
"'인생작'이라고 하고 싶다. 대본을 읽고서, 촬영하는 도중에도 작가님과 통화하면서 인생작을 만났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항상 달라져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번 다른데 지금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어렸을 때 수학을 백 점 맞은 적이 있는데 너무 기뻐서 다음에 또 백 점을 맞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한 작품과 캐릭터가 사랑받는 경험을 처음 해봤는데 정말 소중했다. 다시 이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다음 작품에서도 꼭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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