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남직원에 주차 자리 주고 20년 넘은 내겐 안 주고"
매년 5월 25일부터 31일까지는 정부에서 정한 남녀고용평등강조기간이다. 고용노동부는 남녀고용평등 실현을 통한 여성의 고용기회 확대와 일·생활 균형 직장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고용평등강조주간을 맞아 여성노동전문상담실 평등의전화에 접수된 2023년 상담을 분석하였다. 여성노동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평등의전화는 95년부터 서울, 인천, 광주, 마산창원, 부산 등 5개 지역의 여성노동자회에서 상담창구를 개설하여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전국 11개 지역(서울, 인천, 부천, 수원, 안산, 전북, 광주, 대구, 마산창원, 경주, 부산)에서 운영 중이다. 평등의전화는 입사에서부터 입사 후 성차별,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직장 내 성희롱,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사용 및 이를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 및 퇴직 압력, 직장 내 폭언·폭행 등 여성노동자가 직장에서 겪는 문제들을 상담한다. 2023년 평등의전화에서 진행된 상담은 총 6,393건이다. 이중 초기 상담은 3,428건이다. 초기 상담 중 여성 상담은 3,037건(88.6%), 남성 상담은 349건(10.2%), 알 수 없음 42건(1.2%)이다. 평등의전화를 통해 진행되는 상담은 피해내용의 복잡성과 사건해결 어려움, 내담자의 일상복귀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재상담이 이루어지는 특성을 보인다. 2023년 한해 재상담은 전체 상담의 47.0%(3,007건)에 이른다. 평등의전화 상담사례집에서는 여성노동자들의 상담 경향과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남성 상담과 재상담을 제외한 여성 초기 상담 3,037건을 분석하였다. 분석기간은 2023년 1월부터 12월까지다. 직장 내 성희롱 상담분석 결과는 지난 3월8일 세계여성의날에 맞춰 발표하였고, 그 외 상담유형에 대한 분석은 네 편의 기사로 연재할 예정이며 네 번째 기사는 성차별 상담을 살펴보았다. <기자말>
[박은진]
평등의전화에 접수된 성차별 관련 상담은 총 21건으로 전체 상담 중 0.7%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도와 동일한 비중이다. 전체 상담 중 성차별 관련 상담이 적은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임신·출산·양육 등으로 인한 차별을 모·부성권으로, 여성노동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직장 내 성희롱을 별도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장에서 성별을 이유로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인지되어 있어 명백하게 성별을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성별을 이유로 드러내지 않으나 교육·배치·승진·임금이나 모집·채용·퇴직·정년·해고 등의 과정에 적용하는 기준이 성차별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결국 여성 차별은 여전히 만연하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성별업무 분리 등으로 성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중립을 가장한 기준으로 인해 이를 차별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상담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평등의전화에 접수된 성차별 사례 중 대표적인 사례가 승진 차별 사례이다. 사업주는 성(性)과 무관하게 승진 심사를 진행하였다고 하지만, 해당 사업장은 영업관리직의 경우 전원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업지원직의 경우 전원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난 3년간 인사평가 평균이 남성 노동자와 동일하거나 높은 여성노동자 2명은 모두 승진심사에서 탈락한 반면, 남성 노동자는 4명 중 3명이 승진했다. 이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에서 고용상 성차별 불인정 판단을 받았다.
이번 사건은 성별분업 가치관에 기초해 '여성=지원업무, 남성=중요업무'에 배치하고 여성의 직무가치를 평가절하하여 차별한 전형적인 승진 차별 사례다. 여성들을 일방적으로 지원업무에 배치한 차별이 승진 차별로 이어진 것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와 전북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는 이 사건의 상담을 접수받고 법률동행지원을 결정하고 내담자와 함께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을 준비했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승진차별 인정 판결을 받아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차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차별의 방법 및 정도가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 심사를 통해 원심을 취소하고 승진차별 인정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성차별이 발생해도 재직 중에 있는 여성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성차별 관련 판례가 극히 적은 것이 현실이다. 또한, 승진 차별은 사업장 내부 권한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더욱 증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승진 차별과 같은 간접 차별 금지 조항이 실제 효과가 있으려면 구체적인 법적 판단기준을 명시해야 한다. 채용부터 해고까지의 과정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인사 관련 정보 및 어떠한 절차와 판단기준이 적용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을 사업장에서 보유하고, 언제든지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지원자 수와 합격자 수 혹은 승진자와 해고자 수를 공개하게 하는 것은 기업 인사권의 문제가 아니라 지원자의 알 권리와 성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원칙인 것이다.
성별임금 격차 27년째 1위, 유리천장 지수 10년째 꼴등
임금은 생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일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에도 성별임금 격차가 크다는 것은 같은 교육과 훈련을 받은 여성 노동자들이 같은 직종에 근무해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등의전화 상담에서도 같은 직급임에도 남성과 여성의 급여 차이가 많이 나거나 여성 노동자의 기본급은 당연히 최저시급인 사업장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 성평등 웹툰 ‘끝파도-#3 독한여자’ 중 한컷. 한국여성노동자회가 기획하고 작가 은송이 글과 그림을 그렸다. 내용은 여성노동상담실 평등의전화에 제보된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
ⓒ 한국여성노동자회 |
유리천장은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2013년부터 유리천장 지수를 조사하였다. 성별 임금 격차, 여성 이사회 임원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 10개 항목을 토대로 평가를 시작한 이래 대한민국은 10년째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합리적 이유 없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는 직접 차별도 문제지만 성차별 의도 없이 성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였으나 그러한 중립적 기준이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는 결과를 야기하는 간접 차별이 더 큰 문제이다. 법적으로 간접 차별이 법적 차별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간접 차별을 판단할 구체적인 법적 판단기준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평등의전화 상담사례에서 살펴보면, 지속 근무를 하는데도 남성은 무기 계약 혹은 정규직으로 근로계약을 하고 여성은 11개월씩 끊어서 근로계약을 해 퇴직금을 못 받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23년을 근무하면서도 전체가 승진 대상인데도 여성에게는 승진의 기회가 없고, 심지어 신입사원에게도 주차 자리가 배정되는데 20년이 넘도록 주차 자리도 배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례가 있었다.
"경력 23년의 사무직 종사자이다. 부서원들은 다 남성이고 전체가 승진 대상인데 여성에게는 승진의 기회가 없다. 심지어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도 주차 자리 배정이 되는데, 20년이 넘도록 일해도 주차 자리도 배정받지 못하고 있다. 성차별이 아닌가?"
"2023년 3월 직급 구간 변경 심사 대상이었는데 직급 변경 심사에서 탈락하였다. 여자 직원은 6명 모두 직전 승진 이후 12년, 짧게는 6년이 지났으나 모두 승급에서 탈락하였고, 남자 직원은 평균 5-6년 내에 모두 승진하였다.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했으나 패소하였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하고 싶은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채용부터 성차별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은 면접 대상자와 면접 위원의 위계 관계를 고려할 때 섣불리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면접 위원의 요구를 거절할 시 채용 불합격 등 불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기술직 신규 인력 공개채용 계획을 발표한 모 대기업에서는 기술직 신입 공채 합격자 200명 중 여성은 단 6명이었다. 또, 23년 모 지역의 신협 채용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직무 내용이 아닌 외모 평가 및 춤과 노래를 지시했고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차별적 문화에서 비롯된 행위이므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라고 권고한 사례가 있었다. 해당 지역 여성노동자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며 일단락되었는데, 여전히 채용 조건을 충족하고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하거나 면접 시 결혼, 남자 친구, 출산 계획을 묻는 사례가 있음을 평등의전화를 통한 상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내버스 기사 모집공고에 지원 서류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없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하는 것 같다. 이력서 넣고 회사에 전화하면 여자냐고 묻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운전 경력이 30년이 넘는데, 운전 경력 몇 년 안 된 남자 직원은 합격하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면접도 건성으로 진행하고, 채용에 불이익을 주는 것 같은데 채용 성차별이 아닌가?"
▲ 성평등 웹툰 ‘끝파도-#3 독한여자’ 중 한컷. 한국여성노동자회가 기획하고 작가 은송이 글과 그림을 그렸다. 내용은 여성노동상담실 평등의전화에 제보된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
ⓒ 한국여성노동자회 |
한겨울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짧은 치마를
회사가 정한 제품이나 가이드에 따라 용모를 꾸미는 것을 꾸밈노동이라고 한다. 보통 여성 노동자에게 강요되는 꾸밈노동은 직무의 일환이 아니라 여성을 보이는 존재로 규정하는 성차별이다.
평등의전화 상담에서도 고객 응대를 하는 업종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 남성은 바지에 운동화를 신을 수 있지만 여성은 한겨울에도 무릎 위까지 오는 치마에 얇은 스타킹과 구두를 신게 한다는 사례가 있었다.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평등의전화 상담에서 성희롱 피해를 비롯한 각종 불이익을 당해도 생계를 위해 참고 다녔지만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는 상담이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가 더 이상은 성차별 피해의 원인이 되지 않는 성평등한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인데 성희롱으로 퇴사를 했었다. 사장한테 문제제기하고 2일 만에 퇴사했다. 취업은 어렵고 여자로 태어나서 인정받기 힘들다. 여자를 존중해주지 않는데 모멸스러운 순간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취업도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전 직장에서 7년 동안 일했는데 부당한 적이 많았다. 성희롱도 참고 다녔는데 괜히 참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넘겼던 것들이 분노로 올라온다. 여성으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고 억울하다."
성차별적인 조직문화가 여성 노동자의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살 만한 세상 아닐까.
● 여성노동전문상담실 평등의전화 2023년도 상담사례집 전체 보기 (클릭)
● 평등의전화 : 여성노동전문상담실
여성노동자회 산하 전국 11개 평등의전화에서는 근로조건, 직장 내 성차별, 성희롱, 모성권 침해, 직장 내 괴롭힘 등 여성 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번호를 이용하면 전국 어디서 전화를 해도 가장 가까운 지역 상담실로 연결되어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 대표번호 1670-1611
덧붙이는 글 | 박은진 활동가는 전북여성노동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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