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평결' 트럼프 "진짜 판결은 11월 대선"...표심 여파 줄까(종합)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을 약 5개월 앞두고 이른바 ‘성 추문 입막음 돈’ 의혹 사건과 관련한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미 역사상 형사재판에서 전직 대통령이 유죄를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지에서는 그가 최대 4년의 징역형 또는 보호 관찰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음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직접 입을 열 예정이다.
배심원단,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美 전직 대통령 최초
뉴욕 맨해튼 주민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30일(현지시간) 오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심리를 마친 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제기된 34개 범죄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지난달 15일 재판이 시작된 지 약 6주 만이다. 배심원단이 심리에 착수한 지 이틀 만이기도 하다. 당초 현지에서는 재판 심리가 다음 주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으나 약 10시간 만에 모두 마무리됐다.
이로써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받은 첫 전직 대통령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34개 혐의에 모두 유죄가 선언되기까지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면서 "평결이 내려진 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표정하면서도 어두운 얼굴로 앉아있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CNN방송은 "직후 눈살을 찌푸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빠르게 법정을 떠났다"면서 "붉어진 얼굴에, 트럼프 부자 모두 화가 난 표정이었다"고 보도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직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의 폭로를 막기 위해 당시 개인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통해 13만달러(약 1억7000만원)를 지급한 뒤 해당 비용을 법률 자문비인 것처럼 위장해 회사 기록을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번 재판이 단순 회계장부 조작이 아니라 2016년 미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저질러진 별도의 선거법 위반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가 중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유죄 평결에 따른 형량 선고는 7월11일에 이뤄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되는 공화당 전당대회(7월15~18일)가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이다. 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대 4년의 징역형 또는 보호 관찰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판결에 항소할 예정으로 전해진 만큼 사건이 최종 마무리될 때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수사를 이끈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사장은 직후 기자회견에서 "나는 내 일을 했다. 두려움이나 호의 없이 사실과 법을 따르는 것"이라며 "유일하게 중요한 목소리는 배심원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이번 재판에서 유죄 평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직 개인변호사 마이클 코언은 주요 매체들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오늘은 (법적) 책임과 법치를 위해 중요한 날"이라며 "진실은 항상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측 변호인인 토드 블랑시는 "코언의 증언에 의존한 평결은 부적절하다"면서 "코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진짜 판결은 11월 대선"… 지지층 결집에 모금사이트 다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평결 직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앞에서 "이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부패한 판사에 의한 조작된 재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나는 무죄"라며 "진짜 판결은 11월5일 (대선에서) 국민에 의해 내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전체가 지옥으로 가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정적을 상처입히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에서 행해졌다"면서 "우리는 마지막까지 싸울 것이고 승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도 '11월5일의 승리. 미국을 구하라!!!(VICTORY ON NOVEMBER 5TH. SAVE AMERICA!!!)'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아들인 에릭 트럼프 역시 엑스(옛 트위터·X)에 "2024년 5월30일은 도널드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한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유죄 판결을 계기로 또 한번 지지층 결집에 나선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음날인 31일 오전 11시(동부시간 기준)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판결이 정치적 의도에 따른 마녀사냥이라는 입장을 재반복하며 지지자들에게 표를 호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평결이 나온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자금 모금 사이트엔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선거자금 후원 사이트 '윈레드 닷컴(winred.com)'이 다운되기도 했다. 트럼프 캠프측은 엑스 계정에서 "너무나 많은 미국인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후원하기 위해 윈레드에 몰려들며 홈페이지가 다운됐다"며 "가능한 한 빨리 웹사이트를 복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지지층 결집 행보는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 기소 등 사법리스크가 부각될 때마다 확인됐었다.
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죄 평결에도) 여전히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서 "오랜 기간 자신에 대한 소송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해온 만큼, 이번에도 자신을 희생자로 묘사하면서 선거 캠페인 기간 이번 판결을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트럼프 지지층 결집에 대응해 자신의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정치자금 후원을 호소했다. 그는 엑스 게시물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며 "투표장에서"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캠페인(선거운동)에 오늘 기부하라"며 캠프 후원 링크도 첨부했다. 바이든 캠프측은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에서도 "트럼프 측이 모금 기록을 세울 수 있다"면서 "그 돈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적을 보복하고 위협하며 백악관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VS 바이든… 박빙 판세에 여파 줄까
현지에서는 이번 유죄 평결이 약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판세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4가지 사안으로 형사 기소됐으며 이번 재판은 그 중 첫 번째다.
이번 평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사법리스크 우려가 재점화하고 지지층 이탈로 이어질 경우 오차 범위 내 '박빙 판세'를 이어가고 있는 경쟁자 바이든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현지에서는 이번 평결이 11월 대선에 큰 여파를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게 확인된다. PBS뉴스아워, NPR 등이 공동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 유권자의 67%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유죄 판결이 11월 대선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76%는 무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오히려 이전 사법리스크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지지층 결집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PBS뉴스아워 조사에서 공화당 응답자의 약 25%는 오히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그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답변했다.
프랭크 브루니 듀크대 저널리즘 및 공공정책 교수는 NYT 기고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죄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일간 가디언은 "여론조사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견해는 (판결과 별개로) 이미 반영돼 있음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향후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주목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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