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태원 모친이 준 예술품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 [최태원·노소영 이혼 2심]
최태원(64) SK그룹 회장이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1조 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2심 법원이 판결했다. 이혼소송 1심 재산분할액 665억원의 20배가 넘는 액수다. 항소심 재판부가 노 관장의 선친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광 속에 SK 그룹이 성장했다”며 기여도를 1심과 달리 폭넓게 인정한 결과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 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송 비용의 70%를 최 회장에 부담하라고도 했다. 이는 한국 사법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 판결이다.
최태원 회장의 SK㈜ 지분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한 게 이번 판결의 핵심이다. 1심은 이를 최 회장 특유재산(特有財産)으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부부의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 재산분할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SK그룹 지주사인 SK㈜ 주식을 비롯해 최 회장의 재산은 모두 분할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SK㈜ 주식도 특유재산이 아니라 “혼인 기간 중 취득한 재산으로 부부 공동 재산”이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공동 재산을 4조 115억원으로 산정하고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정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이 재산분할액을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했다.
재판부가 ‘재산분할 대상’으로 본 최 회장의 재산(총 3조 9883억원) 대부분은 주식이다. SK그룹의 지주사인 ㈜SK 주식을 약 2조원 760억원, 비상장사인 SK실트론의 지분 29.4%를 총수익스왑계약(TRS)이란 파생상품으로 보유한 걸 약 7500억원으로 산정했다. 나머지 계열사인 SK디스커버리 지분 2만1816주(0.12%), SK케미칼 우선주 지분 6만7971주(3.21%), SK텔레콤 주식 303주, SK스퀘어 주식 196주 등은 대략 115억원으로 봤다. 또 2018년 최 회장이 친족 23명에게 증여한 ㈜SK 지분(약 1조원)도 분할 대상으로 봤다.
눈에 띄는 점은 최 회장이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쓴 약 219억원 이상의 금액을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 시킨 점이다. ▶2015년~2019년 총 73차례에 걸쳐 최 회장이 김 이사장에게 이체한 10억8476만원 ▶혼외자 학비 5억 3400만원 ▶티앤씨재단 출연금 49억 9900만원 ▶김 이사장 가족에 대여해준 11억원 등이 포함됐다. 이혼 소송 당사자 간의 재산분할에서, 제 3자와의 부정행위로 인해 비롯된 재산 감소나 부정행위 상대방의 재산 증가분까지 고려한 것이다.
또 1심과 달리 최 회장이 모친으로부터 상속받은 163억 8600만원 상당의 예술품 740점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 것도 특징이다.
재판부 “노태우가 SK 방패막이 역할”
6공화국 시절 노 전 대통령 도움으로 사위인 최 회장의 회사가 커진 것을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로 인정한 셈이다.
노 관장 측이 항소심에서 새롭게 꺼낸 ‘300억원 비자금을 건네고 받은 선경 건설 명의의 어음 6장’의 존재가 이런 판단을 주효하게 뒷받침했다. 노 관장 측은 1990년대에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약 300여억원이 최종현 전 회장에게 전달됐으며, 이는 1992년 증권사 인수, 1994년 대한텔레콤 주식(SK㈜ 주식의 뿌리) 매입 등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 여사가 최근까지 보관해 온 선경 건설 명의의 50억원 어음 총 6장의 사진이 재판부에 제출됐다. 1심에선 제기되지 않았던 주장이다.
반면에 최 회장 측은 SK그룹에 비자금이 유입된 적이 없다며, 이는 19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도 확인된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300억 어음의 존재는)30년 정도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사실”이라며 “최종현과 최태원이 노태우의 존재를 배경으로 객관적으로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한 기업활동을 하는 등 노태우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노태우가 이러한 상황을 용인한 이상 최종현의 태평양 증권 인수,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 및 SK그룹의 성장에 노소영 측의 기여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자녀들 탄원서 “아버지 끝까지 잘못 인정않고 합리화…위선적 모습”
두 사람의 자녀들(장남 최인근씨, 장녀 최윤정씨, 차녀 최민정씨)이 지난해 5월 일제히 재판부에 아버지인 최 회장을 비판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당시 자녀들이 ‘끝까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하는 위선적인 모습’, ‘진실되지 않은 언행과 자식의 신뢰를 이용하는 모습’이라는 취지로 적었다”며 탄원서를 직접 인용했다.
재판부는 2심에서 초래된 인지대, 변호사비 등 일체의 소송비용도 최 회장 측에서 70%를 부과하라고 판단했다. “각자 쓴만큼 부담하라”고 판단한 1심과 달랐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올)는 “노 관장 측이 청구한 2조원의 약 70%가 이번 판결에서 인정된 만큼, 그에 비례해 소송비용도 70%를 최 회장 측에 부담시킨 것”이라며 “노 관장이 승리한 재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盧 측 “아주 훌륭한 판결”…崔 측 “편견과 예단에 기반한 판결”
이혼 소송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심리 과정은 비공개되고, 재산분할액 등 최종 결정만 공개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날 이례적으로 재판부는 결정 내용을 넘어서 사실상의 심리 과정을 약 1시간에 걸쳐 자세히 설명했다. 민사소송법상 재판부는 필요한 경우에 한해 판결 이유의 요지를 고지할 수 있다.
이날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모두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변호인단 역시 노 관장 측만 출석했다.
두 사람은 1988년 9월 결혼해 세 자녀를 뒀으나 2015년 파경을 맞았다. 최 회장은 당시 “노 관장과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면서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 사이에서 낳은 혼외 자녀의 존재를 알리며 이혼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해 본격적인 법적 절차에 들어갔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 2018년 2월 소송으로 번졌다. 이혼할 수 없다는 뜻을 고수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하겠다고 입장을 바꿔 맞소송(반소)을 냈다.
노 관장은 당시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회사 SK의 지분 중 50%를 지급하라고 청구했지만, 1심 법원은 사실상 그 1%가량만큼의 현금 분할만 인정했다. 그러자 노 관장 측은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재산분할 대상을 주식이 아닌 ‘현금 2조원’으로 변경하고, 요구 위자료도 30억원으로 올렸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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