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숙제… 풀어줄 연대
우에노 지즈코 지음, 조승미·이혜진·공영주 옮김
오월의봄, 944쪽, 4만8000원
한국은 고령자 100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1970년 3%이던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은 2008년 10%를 넘었고, 17년만인 내년 20%를 돌파해 1000만명을 넘어선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속에 ‘단군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보다 앞서 인구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은 70년 고령화사회(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 94년 고령사회(14% 이상), 2005년 초고령사회(20% 이상)에 진입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고령자 돌봄 문제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다.
‘좋은 돌봄은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돌봄을 실천할 것인가’를 파고든 일본의 석학 우에노 지즈코의 ‘돌봄의 사회학’은 10여년 전 연구이긴 하지만 일본이 우리보다 20년 정도 앞선 고령화 선배이기 때문에 훌륭한 참고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에서 우리의 노양장기요양보험(2008년)에 해당하는 개호보험(介護保險)이 시작된 2000년 이후 10년 남짓한 기간 철저한 현장조사를 통해 일본 사회에 일어난 변화를 추적하고 돌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우선 개호보험이 일본 사회에 끼친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 돌봄이 가족만의 책임이 아니라고 보는 국민적 합의가 성립됐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가족혁명’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가족주의가 굳건한 아시아에서는 육아도 고령자 돌봄도 실상 100% 가족 책임으로 귀결됐고, 이런 상황에서 개호보험은 ‘돌봄의 사회화’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면서도 “적어도 돌봄의 부담을 일부나마 공적 책임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성립됐고, 사회보험인 개호보험의 강제 가입 요건은 눈 깜짝할 새 이용자의 권리의식을 고양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저자는 책의 핵심 개념이자 일종의 규범으로 ‘당사자 주권’을 제시한다. 우선 당사자 주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돌봄의 전제를 살펴야 한다. 돌봄은 주는 이와 받는 이의 상호행위다. 그 상호행위에는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돌봄을 주는 쪽은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받는 쪽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돌봄의 행위는 니즈(필요)가 있는 곳에서 발생한다.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니즈가 있어서 행위에 참여한다. 하지만 니즈의 1차적 귀속처는 받는 쪽이다. 돌봄 제공자가 돌봄 관계에서 벗어나더라도 돌봄을 받는 쪽의 니즈는 사라지지 않는다. 돌봄을 하는 쪽의 니즈는 돌봄 관계 속에서만 발생하는 2차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저자는 돌봄을 받는 당사자들이 니즈와 권리를 주장해야 하며, 이것이 당사자 주권이라고 말한다.
당사자 주권 개념을 세우면 돌봄의 질은 돌봄을 받는 쪽의 판정에 따라 정해진다. 저자는 좋은 돌봄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집단 돌봄이 아닌 개별 돌봄, 시설 돌봄이 아닌 재택 돌봄, 시설 내 다인실 돌봄이 아닌 개인실 돌봄이다. 정리하자면 당사자의 개별성에 대응하는 돌봄, 니즈가 있는 당사자를 중시하는 돌봄이 좋은 돌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상적인 돌봄에는 정답도, 매뉴얼도 없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고, 당사자가 100명이라면 100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고, 당사자가 한 사람뿐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이상적인 돌봄은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사자에게도 “좋은 돌봄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질을 판정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봄 서비스 이용자로서 일종의 ‘소비자 교육’이 필요하고, 돌봄을 주는 쪽도 받는 쪽도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돌봄은 누가 실천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저자는 모두가 경영자이자 노동자인 워커즈콜렉티브와 생협 등 새로운 공공성(common)을 갖춘 비영리단체나 시민사업체에서 실천하는 돌봄 서비스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며 시민사회의 역할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 한계는 여전하다. 따라서 저자는 관(官·국가), 민(民·시장), 협(協·시민사회), 사(私·가족) 각 부문이 서로를 보완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복지다원사회론’을 제시한다. 기존 국가·시장·가족을 근간으로 하는 복지국가론을 대체하는 개념이다. 복지국가론은 ‘시장의 실패’는 국가가 보완하고, ‘국가의 실패’는 시민사회가 보완한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전제는 이혼 사별 등의 이유로 가족 구성원이 흩어진 ‘가족의 실패’다. 따라서 복지 대상은 혼자 사는 노인이나 한 부모 여성 등에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반대로 말하면 가족 구성원이 다 모여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것으로 가족에 의존하는 보수주의적 복지체제일 뿐”이라며 “겉으로는 제대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족도 내부에 돌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복지국가론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고령자와 장애인, 영유아를 통합해 나이와 가족 구성을 따지지 않고 돌봄이 필요한 개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편적인 사회서비스법을 제안한다. 실현 로드맵으로는 고령자와 장애인을 포함해 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당사자 2000만명이 연대하는 ‘복지 이용자 조합’의 조직을 제시했다. 2000만명의 당사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만들어진다면 이들은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책에 영향을 끼칠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 스스로 ‘그림의 떡’일수도 있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사람은 누구나 빠르든 늦든 사회적 약자가 된다. 누구든 자신이 약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오면 불가피하게도 위험과 안전의 재분배에 대한 니즈가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사회연대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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