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잠기는거 아녀?" 작년 폭우피해 아직도 '삽질중'…주민 분통 [르포]
산사태가 휩쓸고 간 경북지역 마을은 여전히 폐허 상태였다. 사방댐 건설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오송 지하차도 인근 주민은 "수해대책이 미흡하다"며 불안해했다. 지난해 7월 '역대급' 집중 호우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북과 충북 오송 지역 상황이다. 중앙일보는 장마철을 앞두고 이들 지역을 찾아 수해 복구 실태를 점검했다.
지난해 7월 산사태 흔적 고스란히
지난 28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로 향하는 길은 모내기를 마친 논과 산은 온통 푸른색이었다. 하지만 마을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녹음이 우거진 여름 풍경은 찾을 수 없었다. 마을 주택 10여 채는 아직도 콘크리트 내벽을 그대로 내놓은 채 부서지고 내려앉은 채 방치됐고, 집과 집 사이에는 흙더미와 자갈이 뒤덮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7월 13일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전체가 토사에 파묻혔던 곳이다. 당시 예천과 영주·봉화·문경 등 경북 북부 지역에서 산사태에 따른 사망자는 23명에 달한다.
그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났지만, 벌방리는 여전히 폐허나 다름없었다. 마을 입구에 ‘수해 피해지를 안전하게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적힌 현수막이 무색했다. 좁은 마을 길을 쉴 새 없이 오가는 레미콘 차만이 복구 현장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30일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6~7월 집중호우와 태풍 ‘카눈’으로 677곳 148.95㏊에 산림 피해가 났다. 하지만 복구율은 52%에 그치고 있다. 주민과 땅 주인 동의, 공사업체 공개경쟁입찰 등 행정 절차가 늦어지면서다.
각종 행정절차 지연에 복구도 더뎌
산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사방댐 건설 사업도 지지부진했다. 집중호우시 토사 유출로 주민 피해가 예상되는 지점에 사방댐 9개를 건설할 예정인데, 현재 완공됐거나 완공을 앞둔 것은 2개다.
박우락 벌방리 이장은 “민간이 아닌 공공기관에서 복구를 추진하다 보니 빠르지 않은 것 같다"라며 “장마가 다가오고 있는데 복구가 늦어져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벌방리 마을과 인접한 진평리 주민도 늦어지는 복구 작업과 수해 예방 사업에 불만을 터뜨렸다. 진평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50대 주민은 “지난해 산사태가 나고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말하더니 아직 수로 공사조차 제대로 안 됐다”고 지적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각종 행정 절차 지연으로 착공이 늦어지긴 했지만, 공사 일정 대비 진도는 양호한 편이다. 인력과 장비를 신속히 투입해 우기가 오기 전 복구를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오송지하차도 참사 주변도 ‘공사 중’
지하차도 침수사고가 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주민도 사정은 비슷했다. 미호강 제방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한 주민은 “제방 유실 원인이 부실 공사로 인한 인재로 밝혀졌지만, 또 범람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7월 15일 미호강에서 350여m 떨어진 궁평2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자동차 17대가 침수되고 14명이 숨졌다.
금강유역환경청은 병천천·미호강 합류지점~미호천교 아래까지 1.68㎞ 길이 새 제방을 쌓아 하천 폭을 기존 350m에서 610m로 넓히기로 했다. 지난 28일 지하차도 참사 주변 현장에선 신설 제방 공사가 한창이었다. 금강유역환경청은 우기 전까지 성토와 다지기 작업으로 제방 모양을 만들겠다고 했다.
공사 현장을 지나던 80대 주민은 “제방도 문제지만 미호강에 잔뜩 자라난 나무가 물 흐름을 막고 있다”며 “사고가 난 지 1년이 다 되도록 미호천교 아래쪽 하천은 준설이 안 됐다”고 지적했다.
청주·예천=최종권·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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