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타이거 마스크의 추억

2024. 5. 3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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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처음 본 가면은 1970년대를 한창 달구던 프로레슬링의 타이거 마스크였다.

김일 선수가 어서 링에 올라와 이왕이면 저 빗살무늬 마스크까지 벗겨주었으면 하고 내심 염원했지만, 타이거 마스크는 박치기에 쓰러지고 끝내 링 밖으로 튕겨 나갈지언정 자신의 맨얼굴은 끝까지 보여주지 않으려 두 손으로 가면을 부여잡고 그야말로 사력을 다했다.

참된 자아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할 얼굴 또한 약점은 감추고 욕망은 채우고자 '가면(persona)' 노릇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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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원(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조직신학)


어릴 적 처음 본 가면은 1970년대를 한창 달구던 프로레슬링의 타이거 마스크였다. 김일 선수가 어서 링에 올라와 이왕이면 저 빗살무늬 마스크까지 벗겨주었으면 하고 내심 염원했지만, 타이거 마스크는 박치기에 쓰러지고 끝내 링 밖으로 튕겨 나갈지언정 자신의 맨얼굴은 끝까지 보여주지 않으려 두 손으로 가면을 부여잡고 그야말로 사력을 다했다. 그 덕에 우리는 오늘도 타이거 마스크가 누구였는지 모르고 산다.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에 따르면 사람은 ‘실제 인간’과 ‘등장인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자아의 번영을 위한 무대에서 인간은 ‘등장인물’이라는 의상을 선택한다. 본래 실제 인간과 등장인물은 하나님의 형상과 신적 소명이 조화되도록 밀접하게 연결된 한 쌍의 속옷과 겉옷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에덴에서의 타락 이후 실제 인간이라는 속옷은 심각하게 손상된 듯하다. 그 후론 누구도 뒤틀린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드러내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대신에 등장인물이라는 두꺼운 외투로 감추어 버린다. 참된 자아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할 얼굴 또한 약점은 감추고 욕망은 채우고자 ‘가면(persona)’ 노릇을 하곤 한다. 지난 수년간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해야 간신히 모일 수 있던 코로나 시대의 낯선 풍경이야말로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자부하던 현대 문명의 화려한 치장 뒤에 가려졌던 민낯이 폭로된 일대 사변이 아니었을까. 사실 코로나 이전 대부분의 만남이 각자 분장하거나 마스크(가면, 탈)를 쓴 등장인물들의 만남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요즘 MZ세대가 ‘관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미니멀리즘이란 과한 것은 덜어내고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러면 어째서 관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걸까. ‘표면적 관계로부터 느끼는 허전함’에 지쳐가는 반면, 소중한 사람에 대한 ‘진짜 그리움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번성하는 길을 찾고 싶은 인간은 등장인물이라는 겉옷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실제 인간이라는 속옷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가면이 아니라 자기의 진짜 얼굴에 정성을 기울인다. 하나님의 공동 은혜로 ‘모든 인간에게는 여전히 어떤 얼굴이 있다’는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말처럼 사람의 얼굴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얼굴은 존재를 나타내고 자신을 보여주는 통로다. 타자의 얼굴은 단지 밖에서 오지 않고 저 위에서 오는 어떤 것! 얼굴에는 낮음만 있지 않고 높음이 공존한다. 이는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얼굴이 그분을 비추는 거울 같기 때문이 아닐까.

C. S. 루이스는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에서 오루알 공주의 입을 빌어 이렇게 자문한다. “우리가 아직 얼굴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을 맞댈 수 있을까요?” 성경은 얍복 강가에서 얼굴을 숨기신 하나님과 먼저 씨름한 덕에 고독한 야곱이 자신과 형의 얼굴 모두를 되찾게 되었다고 전한다(창 32:30).

하나님 얼굴은 타자의 얼굴을 통해 거울로 반사하듯 현현하는 계시! 그 누구도 하나님 얼굴을 직접 보고 살 수가 없다. 햇빛은 달빛으로 반사해서 볼 때 아름답고 해로움이 없다. 햇살을 받는 대상의 광채에서 태양을 인식하듯이, 타인의 얼굴을 통해 주님 얼굴을 보이고 내 얼굴까지 보이는 법. 거기에 외로움이 들어올 틈이나 있을까. 제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나르시스 연못에 비친 자아의 얼굴만 들여다보면 나의 온전한 얼굴은 만날 길 없다. 하나님의 얼굴과 타인의 얼굴이 없는 나만의 얼굴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송용원(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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