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기먹는 하마’ AI 반도체 시대, 한전 나서야

2024. 5. 3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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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인공지능(AI) 혁명과 기후변화는 현생 인류가 직면한 문명사적 도전과제다. 지금까지 문명은 주로 인간 육체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기계 발명을 통해 고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자동차·전화·인터넷 등 수송과 통신 혁명을 통해 인간의 체력과 시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AI 혁명은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기술 혁명이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이해·분석·예측·창조에 이르는 모든 지적 활동을 반도체가 대체하려는 시도다.

「 초집적 반도체 생산에 전력 10배
60년간 구축한 전력망의 2배 필요
한전 적자 누적, 요금 정상화해야

기후변화는 탈화석에너지를 요구하지만 AI 혁명은 막대한 전기량을 필요로 한다. 핵심은 궁극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무탄소 전기’로 바꾸는 일에 있다. 사진은 충남 보령시 주교면 보령화력발전소의 모습. 신진호 기자

AI 혁명에 대한 윤리적 논쟁도 있으나, 이미 기술 발달은 시위를 떠난 화살 같은 형국이다. 기술 발달은 호기심의 연쇄 반응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지, 윤리 논쟁이 끼어들 여지가 크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싫든 좋든 AI 혁명에 발맞추지 못하면 새로운 문명 대열에서 낙오될 수 있다.

기후변화는 탈화석에너지를 요구하고 있다.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에너지는 현대 문명의 기초다. 따라서 화석에너지를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소위 ‘무탄소에너지’로 대체하지 못하면, 인류는 문명 퇴보와 이상기후 중 양자택일이란 갈림길에 설지도 모른다.

AI 혁명은 문명 발달의 새로운 동력이다. 반면 기후변화는 문명 발달의 제약 요인이어서 상충한다. 하지만 두 이슈를 조화시키며 문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치트키(Cheat key)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생뚱맞게도 전기다.

오픈AI의 챗GPT 로고. 챗GPT에 의한 검색은 기존 포털 검색보다 10배 이상의 전기가 필요하다. REUTERS=연합뉴스

AI 혁명은 ‘전기 먹는 하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AI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필요한 전기량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예컨대 초고집적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기존 장비보다 10배의 전력을 소비한다. 여기에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데이터센터는 말할 것도 없고, 챗GPT에 의한 검색은 기존 포털 검색보다 10배 이상의 전기가 필요하다는 연구도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만 추가로 필요한 전기가 10GW에 이른다는 전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기후변화 방지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무탄소 전기’로 바꾸는 일, 즉 전전화(全電化)에 있다. 왜냐하면 지금 인류가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무탄소에너지인 원자력·수력·태양광·풍력·수소가 모두 전기를 매개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에너지라는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결국 탄소 중립도 AI 혁명도 그 성패의 열쇠는 충분한 무탄소 전기의 수급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자주 논란거리가 되는 원자력 없이 충분한 무탄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느냐에 있다. 원전을 제외하면 사실상 남는 무탄소 전원은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태양광과 풍력 같은 간헐성 전원뿐이다. 인류는 국가 차원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완성된 전기저장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매 순간 중단없이 운영돼야 하는 AI 시스템을 간헐성 전원에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전이 불가피한 또 하나의 이유다.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지난 16일 세종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전기료 인상 필요성을 설명했다. 예측에 의하면 2050년까지 현재의 2.3배에 달하는 송전망을 확충해야 하지만 한전은 100조 원이 넘는 부채로 허덕이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무탄소 전원을 충분히 확보해도 송전망이 부족하면 모두 허사다. 송전망 부족으로 신설 발전소들이 놀고 있는 지금 한국 사정이 여기에 속한다. 게다가 전력 수요가 늘고 재생에너지가 증가하면 덩달아 송전망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다. 실제로 2050년까지 현재의 2.3 배가 필요하다는 예측도 있다. 지난 60여 년 동안 구축한 전력망의 약 2배 이상을 30년 안에 건설해야 하는 엄청난 규모다. 비상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송전망 확충 특별법’ 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모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일이고 현행법상 한국전력이 감당할 몫이다. 하지만 한전은 100조 원이 넘는 부채로 허덕이고 있다. 그동안 정치 논리에 떠밀려 원가 이하로 책정된 전기 가격을 오랜 세월 방치해온 것이 원인임은 물론이다. 최근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김동철 한전 사장의 호소는 결코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경제 논리에 의한 전기 가격 정상화가 탄소 중립과 AI 혁명의 출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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