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인의 조선가족실록] 유유·유연 형제 가족의 비극
가짜 남편에 걸려든 형수, 시동생을 범죄자로
■
「 유유, 아내 백씨와 불화 끝에 가출
사기꾼 채응규가 남편 행세 접근
정체 발각될 위기 채응규 줄행랑
유연은 고문으로 허위 자백 처형
훗날 유유 돌아오자 채응규 자결
조사 부실 조선 법정 애꿎은 죽음
」
유유, 성불구일 가능성
유유가 가출한 동기를 놓고 사람들은 미쳤다고도 하고 심질(心疾) 때문이라고도 했다. 유연의 증언에 따르면 유유는 미친 게 아니라 아버지의 무시와 아내와의 불화, 가변(家變)까지 겹쳐 가출은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가변이란 무엇일까. 1557년 겨울에 유예원의 대구 집에 불이 나 다 타고 남은 것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묵재일기』, 1557년 10월 18일) 이때 유예원은 서울로 올라가 관직을 구해볼 참이라고 했다. 이듬해 유유가 가출했으니 가변이란 화재사건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유예원은 왜 장남 유유를 무시했을까. “아내를 맞이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식이 없어 아버지가 업(業)이 박하다며 나무라고 가까이하지 않았다.” 유유의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유가 성불구일 뿐 아니라 여성성을 겸한 제3의 성(性)임을 암시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아내 백씨의 성질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백씨의 아버지 백거추가 유서방(유유를 가리킴)을 곤경에 빠트린 일로 딸을 모질게 대한 일도 있었다. (『묵재일기』, 1557년 8월 11일)
집을 나간 유유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느 날 황해도 해주에 유유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가출한 지 4년이 흐른 1562년 여름이었다. 유유가 채응규로 변성명을 하고 살아있다 하니 가서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서울의 큰 자형 이제(李禔)였다. 이제는 유연의 누나 유씨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고 사별하였고, 재혼하여 여러 자식을 두었다. 첫 부인과 사별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는 처가와의 연을 이어가며 처남 유연의 중매까지 선 것이다. 자형의 전갈을 받은 유연은 노비 몽합과 억종을 보내 유유가 맞는지 사실을 알아오게 했는데, 돌아온 종들이 채응규는 유유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채응규는 백씨가 노비 편에 보내온 옷과 편지를 받고는 백씨에게 답장을 써서 보낸다. 알지도 못하는 남의 부인에게 사적인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해 겨울에도 가짜 유유 채응규는 이제의 종을 보내 백씨에게 편지를 전했다. 이때 유연은 형이라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을 텐데 없는 것이 의아한 나머지 백씨에게 온 형의 편지를 보자고 하는데, 백씨는 잃어버렸다고 한다. 유연이 보면 안 되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난 1563년 겨울에 채응규가 서울 이제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전갈이 왔다. 사실 이제는 20년 전에 본 처남 유유의 외모를 확인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유연과 백씨가 와서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유연은 억종을 먼저 올려보내고 자신은 늦게 올라갔다. 먼저 간 억종이 백씨의 안부와 버선(機子) 한 쌍을 전했다. 이에 가짜 유유 채응규는 “네 안 주인이 병이 깊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가 곧 내려가마. 너는 속히 대구로 가 노자를 갖추어 오너라”라고 한다.
유연은 채응규가 미심쩍었지만 그를 데리고 대구로 내려간다. 열흘 거리의 대구로 가는 동안 유연은 채응규의 이모저모를 상세히 관찰하는데 가짜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대구에 도착하자 유연 일행은 바로 채응규를 결박하여 관에 보내며 그 진위를 가려달라고 한다. 옥에 갇힌 채응규는 자신이 진짜 유유임을 주장하며 부부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증거 하나를 던진다. 첫날 밤 백씨가 월경 중이었고 왼쪽 허벅지에 검은 점이 있으니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추관이 사람을 보내자 백씨는 사실임을 입증해주었다. 부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정보다. 그런데 길어지는 조사 과정에서 더 이상 진짜를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는지 채응규는 갑자기 미친 척하여 보방(保放, 보증인을 세우고 죄인을 방면)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밖으로 나와 정해진 집에 유숙하던 채응규는 밤을 틈타 줄행랑을 놓으며 자취를 감춰버렸다. 유유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채응규와 내통한 것으로 의심되는 백씨가 시동생 유연을 형을 죽인 패륜범으로 관에 고소를 했다. 이번엔 유연이 체포되었다. 도망간 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자가 유유가 맞는지 아닌지 아주 기본적인 조사도 없이 유연은 바로 서울로 압송되어 삼성교좌(三省交坐, 죄가 중한 강상죄수를 의정부·의금부·사헌부가 합좌·심문하는 것)를 받게 되었다. 채응규가 유유가 아닌 줄 어떻게 알았나? 유연이 답한다. “형의 몸은 약질에다 왜소하다. 채응규는 장대하다. 형의 얼굴은 작고 누렇고 얽은 자국이 있으며 수염이 없다. 채응규는 얼굴이 검고 크며 수염이 빽빽하다. 형의 음성은 여자와 같은데, 채응규는 크고 우렁차다.” 둘의 다름이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이유 있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위관(委官) 심통원(沈通源)은 유연을 능지처사에 처했다.
채응규 방술로 사람들 미혹시키는 재주
유연이 처형당한 지 15년이 지난 1579년에 평안도에 진짜 유유가 나타나며 사건의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대담한 사기꾼 채응규도 살아있었다. 채응규와 그의 처 춘수를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하던 중 채응규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고 춘수만 잡혀왔다. 춘수의 진술에 의하면 채응규는 방술(方術)로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재주가 있었고, 무격(巫覡, 무당과 박수)을 모아 도량을 열고 여염을 돌아다니며 촌부들에게 악독한 짓을 일삼았다. 장연 한필성의 딸이 혼인 사흘 만에 소박을 맞고 홀로 산 지 몇 년이 되었는데, 채응규가 듣고 남편인 것처럼 접근하여 그 딸을 범했다. 유유를 칭한 것도 이와 유사한 수법이었다. 채응규는 유유와 같은 지역권에서 함께 지내기도 한 사이로, 접촉을 통해 유씨 집안의 정보들을 확보하였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사람은 유유의 아내 백씨다. 그녀가 직접 채응규를 만나 진짜와 가짜를 가려 줄 수 있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직접 만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채응규의 속성상 세 차례의 왕복 편지를 통해 백씨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수도 있다. 두 남녀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한문학자 강명관은 채응규가 대담하게 유유라고 자처할 수 있었던 것은 유씨 집안 내부에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백씨를 지목한다. 유유 사건을 상속과 재산권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사건을 축소시키는 것이다.(『가짜남편 만들기』, 푸른역사, 2021)
‘마르탱 게르의 귀향’ 사건과 흡사
유유의 가출과 가짜 유유의 등장은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유명한 사건 ‘마르탱 게르의 귀향’과 매우 흡사하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나간 게르가 12년 만에 귀향해보니 자신을 사칭한 가짜가 집안의 모든 것을 차지하여 아이까지 낳은 것이다. 3년을 살아온 가짜가 어느 시점에서 의심을 받게 되는데, 아내 롤스 혼자만 진짜라고 우긴다. 다 속아도 같은 침대를 쓰는 아내는 그가 가짜임을 모를 수 없을 텐데, 끝까지 가짜를 비호하는 롤스의 욕망과 심리는 아내 백씨의 그것과 닮아 있다. 유유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백씨가 채응규의 아들을 유유의 아들로 둔갑시켜 양자로 삼고 10년을 양육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채응규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한편 1560년 바스크의 법정은 남의 가정을 침범한 가짜 게르에게 사형을 선고하지만 관련인 그 누구도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조선의 법정은 사건의 관련인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것도 모진 고문을 가해 거짓 자백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한 가족을 송두리째 파멸시키는 우(愚)를 남겼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인싸’ 부장도 포기한 소심男…LG 최연소 사장 된 비결 | 중앙일보
- 김호중은 운전석, 길은 조수석서 내렸다…그날 동행 CCTV 공개 | 중앙일보
- 웃통 벗고 이것만 입었다…탑건도 나훈아도 홀린 '그 바지' | 중앙일보
- "성관계 문제로 짜증나서 장난"…'계곡살인' 이은해가 전한 그날 | 중앙일보
- 남보라 "저 차 뽑았어요" 자랑에…'7000개 좋아요' 쏟아진 까닭 | 중앙일보
- 15세 딸에 "성관계 하자" 속삭인 男…아빠 주먹에 맞고 숨졌다 | 중앙일보
- "학교는 지방, 학원은 대치동" 초등생부터 짐싸는 강남 엄마들 [지역의대 전성시대] | 중앙일보
- "BMW 받혔는데 그냥 가라더라"…뉴진스님 미담 쏟아진다 | 중앙일보
- "짜고 치나" 한밤 3시간, 김동연 '남북 분도' 라방이 남긴 것 [현장에서] | 중앙일보
- 입냄새까지 끔찍한 그놈…美 '구취 강간범' 17년만에 붙잡힌 이유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