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AI와 육체노동의 부활
최근 AI에 의한 일자리 감소를 상수(常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늘었다. 사무직 업무에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해본 사람이 많아진 결과다. 흥미로운 건 이런 결과를 인류의 황혼과 연결 짓는 이들도 덩달아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산업화의 역사가 곧 기계화로 인한 노동 대체의 역사인데, 육체노동자의 일자리 감소엔 둔감하던 일들이 연산(演算) 기계에 의해 지식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자 이를 인류의 미래와 연결 지을 이유가 뭘까. 자동화의 범주가 정신노동으로도 확장되었을 뿐이지,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산업화의 일관된 흐름이다. 지식노동자라고 언제까지 예외여야 할까.
새로울 게 없더라도 이런 현상이 문제적인 건 변하지 않는다.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직공(織工)들이 방직기를 파괴하던 것과 유사하게, AI로 일자리를 잃을 정신노동자들도 분노와 좌절을 표현할 게 당연해서다. 당장 국내에서도 실제 사례가 나왔다. 지난해 6월엔 웹툰 작가 등단을 노리는 지망생들이 ‘AI 웹툰 보이콧’ 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AI를 활용했다는 의혹이 있는 작품에는 별점 테러가 쏟아졌다. 그림 AI가 화공(畫工)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위기감이 드러나는 반응이다. 러다이트 운동처럼 실패하겠지만, 과거와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변화하는 세계 인구구조다.
한국의 인구가 늙어가는 건 무수히 강조되었지만, 이것이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건 그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국제연합(UN)의 인구 추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15세부터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는 계속 줄어든다. 가장 낙관적인 전망으로도 2032년 65.6%를 정점으로 하락을 시작하니, 근로가 가능한 ‘젊은 인구’는 세계적으로 점점 귀해지게 된다. 세계화와 인구 증가로 인해 협상력을 잃었던 육체노동의 전적인 부활이다. 인위적으로 최저임금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육체노동에 대한 모종의 멸시가 사라지지 않아도, 노동시장의 힘이 그런 변화를 긴 시간에 걸쳐 자발적으로 만든다. 이미 현대자동차 생산직 신규채용에 박사학위가 있는 지원자도 나오지 않았던가.
고령화가 선진국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젊은 육체노동자 공급 부족은 개발도상국보다 선진국에서 더 절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나 고령자에 대한 간병과 돌봄노동은 로봇으로 대응하기도 까다로울 정도로 여러 행위가 복합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이니, 사람이 아니고선 제대로 수행하기도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의 발달은 선진국에서의 육체노동자 공급 부족을 완화해주는 정말로 다행스러운 장치다. 과거에는 단순사무직에 종사했을 노동자들이 AI에 의해 몸값 높은 육체노동 시장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래의 노동은 지금과 여러모로 다르겠지만, 그것을 악화나 열화로만 그릴 필요는 없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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