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희망도 경험이 필요하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매드맥스 시리즈의 여성 주인공 퓨리오사가 어떻게 전설적인 사령관이 됐는지를 설명한다. 문명이 붕괴한 후 퓨리오사는 풍요로운 ‘녹색의 땅’에서 태어나지만 어린 시절 마을 밖에 나갔다 납치된다. 그녀는 야만적인 디멘투스 일당에게 어머니를 잃고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다.
영화의 두 축인 퓨리오사와 디멘투스는 강인하지만 그 이유가 다르다. 디멘투스에게 강함은 무자비함을 의미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잔인함으로 기가 질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가 그토록 무자비할 수 있는 것은 “희망 따위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퓨리오사는 희망의 존재를 믿는다. 강렬한 희망을 품고 있기에 슬퍼하고 좌절하지만 견디고, 맞서고, 다시 일어선다.
두 인물이 갈라져 나온 지점은 ‘희망을 경험했느냐’다. 디멘투스는 희망에 관한 기억 자체가 없다. 그래서 희망을 말하는 자를 보면 가소로울 뿐이다. 퓨리오사는 다르다. 황무지로 끌려가기 전 자신이 살던 ‘녹색의 땅’을 기억한다. 그곳의 푸르름과 소리와 바람이 세포 속에 살아 숨쉰다. 그녀로선 희망을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가 없다.
희망을 한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은 희망이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한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희망을 맛보게 하는 건 매우 중요한 과제다. “젊은이여, 꿈을 가지라”고 요구만 할 게 아니라 희망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렇게 마음에 작은 씨앗이 뿌려질 때 야망도, 소망도, 작은 꿈들도 지속 가능한 힘을 얻는다.
기자 시절, 소년원에 갔다가 표정에서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는 아이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이 희망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희망’은 ‘퇴직’에나 어울리는 시대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진짜 희망의 순간을 만들고, 기억하고, 나눌 수 있다면 아직 많은 것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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