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장벽 여전히 높다…문제점 꼽아보니
연구·경영 짊어진 교수 “재도전 어려워”
학생·교원 창업 성공 사례가 쏟아지지만 여전히 빙산의 일각이다. 현실에서는 실패 사례가 수두룩하다. 문제는 단순 사업성 부족이 아닌 학업이나 본업 부담을 못 이겨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상당수라는 것. 이에 전문가들은 ‘창업 수’만 늘리는 식의 무분별한 활성화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구조적·제도적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하라는 조언이다. 실제 학생·교원 창업 시 어려움을 살펴보고 전문가들의 대안을 들어봤다.
휴학 허용 고작 2년? “현실성 없어”
먼저 학생 창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현실적 지원 부족’이다. 학교마다 학생 창업 활성화를 외치면서도 현실과 괴리된 정책을 펼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학생 창업 전담 인력이다. 학생들의 경우 창업은 물론이고 비즈니스 경험조차 많지 않아 도움이 절실하지만, 관련 인력이 태부족이다.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박사가 발표한 ‘창업교육혁신선도대학(SCOUT) 창업친화적 학사·인사제도 사례집’에 따르면 국내 4년제 대학들의 학생 창업 전담 인력은 학교마다 1~2명에 그치는 실정이다. 최화준 박사는 “국내 4년제 대학 27곳을 조사했는데 13개 대학이 1~2명이라고 밝혔고, 5명 이상 전담 인력이 있는 곳은 4곳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창업자의 학업 부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재학 중 회사를 창업한 문주인 메타텍스쳐 대표는 “학업과 창업을 병행하며 어려움이 있었다”며 “대학에서 학업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창업은 밤낮없이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학업은 제 학문적 의무지만 동시에 창업 도전 과정에서는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창업학 전공자들이 일정 학점 이상을 이수하고 학교가 승인하는 학습 목표를 달성하는 조건부로 창업대체 학점인정제도가 도입된다면, 학생들이 더 유연하게 학업과 창업을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생 창업 시 허용되는 휴학 기간 역시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국내 4년제 대학 대부분은 창업 휴학 허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서울대 역시 지난해에서야 학생들의 창업 휴학 기간을 2년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 역시 창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증화(PoC) 전 테스트를 진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에 많은 학생 창업자들이 ‘무기한 창업 휴학’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실제 국내 가장 적극적인 학생 창업 정책을 펼친다고 평가받는 카이스트는 2022년부터 사실상 무기한 창업 휴학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카이스트는 올해 졸업생 창업자까지 지원하는 제도를 추진 중이다.
경영·자금·연구 모두 창업자 몫
교원 창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창업 방식’과 관련 있다. 학생 창업이 대부분 ‘공동 창업’인 반면 교원 창업 대다수는 1인 창업자 주도 형태다. 교수가 기술 연구는 물론이고 경영과 영업 전반을 책임진다. 문제는 창업에 뛰어든 교원들의 경영·영업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부족할뿐더러 시간적 제약도 있다는 사실이다. 교수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분야까지 홀로 책임지고, 그 결과가 본인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부담이 상당하다.
더 큰 문제는 창업 교수들이 받는 부담이 랩실 석·박사 제자들에게 옮겨붙는다는 것. 최근 국내 이공계 석·박사 커뮤니티 김박사넷 등에서 “무조건 창업 겸직 교수 랩실은 피하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교수들이 창업 과정에서 발생한 업무 일부를 제자들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는 귀띔이다.
결국 창업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 일각에선 미국 사례를 주목한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투자자 주도’ 형태 교원 창업이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창업 초기부터 VC 같은 투자자들이 붙어 주요 주주로 각종 부담을 책임지는 형태다. 경영 역시 VC가 영업한 전문경영인이 맡는다. 창업자인 교수는 자문 등 비상임 역할에 머물며 기술 측면에만 관여한다. 덕분에 수십 회의 연쇄 창업도 가능하고 본업 부담도 덜하다.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잘 알려진 빅파마 모더나의 창업자 로버트 랭거 MIT(매사추세츠공대) 화공과 교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를 강조한다. 2022년 한국바이오협회와 진행한 대담에서 그는 “창업 초기부터 VC와 협업을 통해 진행했고, 전문경영인을 초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비슷한 형태로 40개가 넘는 기업 창업에 참여했다. 모더나도 그중 하나다.
미국식 따르기엔 ‘현실적 제약’
결국 대안은 ‘공동 창업?’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식을 그대로 따르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역임한 뒤 현재 숭실대 창업지원단에서 활동 중인 허공회 교수는 “문화·제도적으로 한계가 있어 미국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선을 그었다. 허공회 교수는 “한국 기업은 모든 걸 창업자의 몫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스타트업 시장은 창업자 지분이 낮은 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한국은 후속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도 창업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면서 “제도적 문제도 여럿인데, 창업 투자 회사의 경영 지배 목적 투자가 제한돼 있어 VC가 창업을 주도하는 형태가 막혀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현실적 대안은 뭘까. 전문가들은 미국식 모델을 섞은 ‘공동 창업’ 모델 등을 제시한다.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과 미국의 교수 창업 제도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교수의 훌륭한 기술과 경험 많은 경영자가 결합된 창업이라서 교수가 경영 능력 없이 창업하는 모델이나 기업 출신 경력자가 기술 없이 창업하는 모델에 비하면 매우 좋은 출발이며, VC 투자도 잘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교내 벤처캐피털 모델 등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최화준 박사는 일본 교토대 혁신 캐피털 사례를 예로 들었다. 교토대 혁신 캐피털은 교내 교수와 연구자들의 창업 활성화를 위해 설립됐다. 통상 벤처펀드 만기는 8년 내외인 반면 해당 펀드는 12~15년 만기 기간에 더해 5년을 조건부로 추가할 수 있다. 학교가 장기간 직접적인 창업 지원에 나서 창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형태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1호 (2024.05.28~2024.06.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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