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연구소 20주년 맞는 박석무 이사장 "사람 먼저 돼야 나라다운 나라 만들죠"
박석무 이사장 "다산 세계화, 정부 나서야"
“지난 20년간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생각과 철학을 우리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죠. 다음 20년은 다산의 지혜가 좀 더 실천되고, 외국어로 번역해 세계인에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다산연구소 창립 20주년을 맞는 다산학자 박석무(82‧우석대 석좌교수) 이사장의 포부다. 박 이사장은 다산학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다산학 권위자. 그가 2004년 6월 다산연구소 창립과 함께 다산의 가르침으로 정치‧사회 현실을 비판해온 칼럼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는 연재 1220회를 기록한 최근까지 36만명이 구독했다. 1979년 다산의 편지글을 번역해 스테디셀러가 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비롯해 『다산기행』『다산 정약용 평전』『목민심서,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흠흠신서』 『다산학 공부』 등 저서를 통해 다산의 500권 넘는 저술, 2700여편 시에 담긴 방대한 사상을 대중화하는 데 일조했다.
"지도자, 사람다운 사람 먼저 돼야"
“다산의 가르침을 세계화하는 게 우리 국격을 높이는 일”이란 박 이사장을 29일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영국엔 셰익스피어, 독일엔 괴테, 한국엔 다산”이라는 박 이사장은 다산 사상의 정수로 민본주의와 공렴(公廉) 정신을 꼽았다. “다산의 민본주의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안녕을 유지할 수 있다 했습니다.” 그는 다산 문집 『여유당전서』 간행을 주도한 해방 조선의 한학자 겸 정치가 정인보(1893~1950)를 빌어 “다산의 경학(經學)은 (중국 유교 경전을 새롭게 해석한) 민중적 경학”이라고 했다.
그는 또 “다산은 공직자로서 공정함과 청렴함, 즉 공과 염, 두 가지 논리를 가슴에 안고 온 정성을 다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칠 것을 강조했다”면서, 그에 비춰 작금은 “민주주의가 후퇴해버린 때”라 비판했다. “다산 시대로 말하면 위민사상, 백성을 위하는 사상 얘기”라면서 “다산은 지도자가 자기를 먼저 다스려 인격과 교양을 갖춰야 나랏일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사람다운 사람이 안 되면 어떤 능력으로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거부, 정파 쫓다 국익 팽개쳐"
이날 21대 국회가 여‧야 파행 속에 역대 최저 법안 통과율로 막을 내린 데 대해서도 박 이사장은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다, 국익을 팽개친 것”이라 쓴소리를 했다. “채 상병 특검법만 해도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진실을 밝히는 건 국익이다. 그런데 그 진실이 밝혀지면 특정 정파 소속 사람에게 불이익이 올 수가 있다면서 특검을 거부하는 것은 공정 상실”이라 명명했다. “다산의 모든 논리는 국익‧공정으로 통했다. 법을 적용하면 임금의 최측근부터 하라 했다”면서 “다산의 지혜를 실천하면 해결 못 할 문제가 없다. 다산에 점점 더 빠져드는 이유”라 밝혔다.
전남 무안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한학을 접하며 다산에 매료된 그다.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중 해직, 옥살이했다. 1988년 13대, 1992년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언론 통폐합의 진실을 파헤치고, 교육행정 분야 증진에 힘썼다. 2004년 다산연구소를 출범한 것도 “다산의 개혁 정신, 인간 사랑 정신, 실사구시(實事求是) 철학을 오늘날 시대정신으로 승화시켜 세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였다.
"유튜브에 틀린 정보 많아…독서 본분 되찾아야"
올 초 김태희 전 다산연구소장에 대표직을 맡긴 박 이사장은 다산 철학을 쉽게 풀어주는 기고‧저술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20년간 뜻있는 개개인의 후원으로 다산연구소를 운영하며 학계 후학도 양성했다. 다산연구소의 또 다른 연재 ‘풀어쓰는 실학’ ‘다산 포럼’에는 내부 연구원뿐 아니라 각 분야 외부 필진도 참여하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정부가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데 대한 비판, 대학제도 문제점을 짚기도 하죠. 다산의 비판 정신을 이어가는 겁니다.”
다산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지금도 원문을 확인한다는 그는 “시대가 바뀌고, 각도를 달리해서 볼 때마다 새로운 논리를 발견하고 연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그렇게 개정판을 5차례 펴냈다. “유튜브에 부정확하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시대”라 짚으며 “그럴수록 지혜를 정제해서 담은 책을 봐야 한다. 다산도 ‘독서란 인간의 본분’이라 가르쳤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개인이나 민간단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다산연구소가 아니면 어떻게 다산 정신이 이만큼 보급됐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면서 다산학 세계화를 위해선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다산 전문 번역가‧연구원을 양성해야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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