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핵보다 무서운 양자컴…美싱크탱크 "中에 앞선다 못해"
인공지능(AI)과 함께 미래의 핵심 기술로 평가되는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을 앞서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이 미국에서 나왔다. 과학계에선 두 기술을 선점할 경우 세계 경제·산업은 물론 군사·안보 분야의 주도권이 바뀌는 ‘헤게모니 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29일(현지시간) 중앙일보가 입수한 보고서에서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 미국의 선도적 위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CNAS는 판단의 근거로는 “양자 컴퓨팅을 전략적 기술 우선순위 목록의 최상위 목록에 올려놓은 중국 정부의 역할”을 제시하며 “이미 기술인력, 초전도 기술에서 중국은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 ‘양자 과학기술 연구·응용 전망’에 대한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을 주재하면서 “세계는 100년간 없었던 대격변을 겪고 있다”며 “양자 과학기술 발전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인지하고 대세를 파악해 선수(先手)를 잘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시 주석은 2017년엔 빅데이터 기술 확보를 지시했고, 2018년엔 AI, 2019년엔 블록체인 기술을 제시하며 “공격 방향을 명확히 하고 역량을 집중해 핵심 기술 정복에 진력하라”고 주문했다.
이 가운데 특히 AI와 양자기술은 미래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수퍼컴퓨터보다 수억 배 이상 빠른 연산 능력을 지닌다. 일반 컴퓨터로 300조 년이 걸리는 암호도 수십초 내에 해킹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과 초인적 지능관 판단력, 무기 조정 능력 등을 갖춘 초인공지능(ASI) 기술이 가장 먼저 결합될 가능성이 큰 분야는 바로 군사 부문이다.
외교소식통은 이날 통화에서 “지난주 미국외교협회(CFR)가 세계 주요 싱크탱크를 워싱턴으로 초청해 진행한 비공개 회의의 핵심 주제도 양자컴퓨터와 AI였다”며 “특히 양자컴퓨팅 기술을 선점하면 핵무기를 포함한 적국의 모든 암호 코드를 해킹할 수 있기 때문에 적의 핵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핵균형을 깰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싱크탱크의 공감을 얻은 결론 역시 ‘인류는 핵보다 양자기술로 먼저 멸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CNAS도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양자 분야에서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밝혀왔다”며 “만약 중국이 양자 기술을 주도할 경우 지금까지 도달할 수 없었던 암호화 프로토콜을 해독하고 민감한 정보를 노출시키는 등 미국의 군사, 정부 인프라 분야까지 위협하는 데 사용할 수단을 얻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특히 관련 분야의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지적하며, 미국이 더 큰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보고서는 “맥킨지에 따르면 양자기술 관련 일자리 3곳당 자격이 있는 전문 인력은 1명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라며 “미국에선 양자 컴퓨팅 혁신에 필요한 전문가는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에 비유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025년까지 최대 100만명의 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라며 “중대 개입이 없다면 양자 컴퓨터 분야의 인력을 50%도 채우기 어렵다”고 했다.
CNAS의 분석에 따르면 전세계 양자 컴퓨터 관련 대학원의 상위 학위 프로그램 20개 가운데 10개만 미국에 있고, 양자 기술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분포한 곳은 중국과 유럽, 영국과 러시아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21년 미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양자 관련 분야의 미국 졸업생과 박사 학위자 중에서도 절반이 외국인이다.
그러자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8월 군사용 AI 기술과 양자컴퓨터, 최첨단 반도체 등 3개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리는 등 중국의 위협에 대한 극도의 경계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중은 미래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지만, 한국은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로 명명한 기술 개발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심사조차 마무리하지 못했다. 심사를 담당하는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은 지난해말 발표하기로 했던 예타 결과 발표를 세차례 미뤘다. 이 과정에서 당초 2조원 규모였던 예산 규모는 3200억원 수준으로 축소됐다고 한다. 과학계에선 양자 예타 심사가 올해 4분기까지 미뤄질 경우 내년 예산에도 반영되기 어려울 거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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