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한반도 핵 재배치론' 확산…"나토식 핵공유 검토해야"

김형구 2024. 5. 3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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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의원이 지난 1월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의회에서 한반도 핵무장론이 잇따라 분출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고도화되고 북·중·러 밀착 구도가 두드러지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나오는 목소리들이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의원은 29일(현지시간)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고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식 핵무기 공유를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위커 의원은 이날 미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 예산을 550억 달러(약 76조원) 증액하는 내용의 ‘주요 국방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이같은 안을 제시했다.

위커 의원은 “북한 김정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며 “미국은 한반도에서 억지력이 약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정기적 한·미 군사훈련,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유지하고 인도태평양에서의 핵 공유 협정 및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새로운 옵션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커 의원은 현재 미 의회에서 심의하고 있는 2025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이런 내용을 반영하겠다고 했다. 국방수권법안은 미국의 국방 정책과 관련 예산안을 총괄하는 연례 법안이다. 위커 의원은 지난 15일 폭스뉴스 기고문에서도 1990년대 초 미국이 한국에서 전술핵을 철수한 뒤 오히려 한반도와 태평양 안보 환경이 크게 악화됐다고 지적하며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아시아 버전의 나토식 핵 공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 제임스 리시 의원. 로이터=연합뉴스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제임스 리시 의원도 지난 15일 ‘군비 통제와 억제력의 미래’ 청문회에서 “핵무기의 동아시아 복귀 옵션 모색을 금기시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동아시아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핵무기를 이 지역에 재배치하기 위한 옵션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상원에서 국방·외교 정책을 감독하고 관련 예산을 편성하는 양대 상임위인 군사위·외교위에서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이 잇따라 나온 것이다. 위커 의원과 리시 의원은 오는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점할 경우 각각 군사위원장, 외교위원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들이 펴는 핵 재배치론의 무게감은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공화당을 중심으로 미 보수 진영 내에서 한반도 핵 배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4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확장억제 능력이 가상이 아니라 실제 한국에 있다는 확신을 보여줘야 한다”며 한반도 전술핵 배치론을 지지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유력 후보로 꼽히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ㆍ전력개발담당 부차관보 역시 최근 중앙일보에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때 나온 ‘워싱턴 선언’의 한계를 언급하며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집권시 유력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ㆍ전력개발 담당 부차관보가 지난 4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조셉 리 기자

물론 재집권을 노리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인사 사이에서 한반도 핵 배치론을 두고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시 추진할 정책 과제를 개발 중인 보수 성향 싱크탱크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의 프레드 플라이츠 부소장은 지난 2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트럼프 재집권시 한국의 핵무장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정책의 목표는 한국의 핵무장을 통한 핵균형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가 돼야 한다. 트럼프는 지금보다 더 강한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다”며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한동안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한반도 핵무장론이 미 의회 핵심부에서 잇따라 터져나오는 것은 이전과 달라진 한반도 주변 안보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공화당을 중심으로 최근 전술핵 재배치론이 대두되는 것은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근간으로 확장억제를 강화한다는 워싱턴 선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빠른 속도로 고도화되고 있는 만큼 더욱 실질적인 동맹 안보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위커 의원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2022 국방안보전략(NDS)’이 북한 등의 위협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위커 의원은 상원 군사위에서 내달 국방수권법안을 심사할 때 자신의 제안을 개정안 형태로 반영할 계획이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또는 나토식 핵 공유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며 확장억제 강화론을 일관되게 펴고 있는 만큼 위커 의원의 제안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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