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악의 시기에 '팝의 성경' 쓴 브리트니 스피어스
[이승원 기자]
▲ 브리트니 스피어스 '원조 팝 요정 왔어요!' 2018년 4월 12일 미국의 팝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스의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29회 글래드 미디어 어워즈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AP=연합뉴스 |
일반적으로 좋은 음악이 인기를 끌기 마련이지만, 가수의 상업적 전성기와 음악적 전성기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 혹자는 놀라운 음악적 성과로 주목받은 후 대중적 회전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하고, 또 누구는 큰 상업적 히트 이후 생긴 여유를 기반으로 완연한 창작력을 뽐내기도 한다. 그 간극도 서사도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나 팝 스타의 극단적 암흑기와 음악적 황금기가 정확히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생 최악의 시기에 21세기 팝의 성경 < Blackout >을 뽑아낸 '팝의 요정'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말이다.
거듭된 성공, 그리고 거대한 추락
브리트니의 초기 활동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연예계 등용문이었던 미키 마우스 클럽에서부터 경험을 쌓은 그는 1998년 데뷔 싱글 '...Baby One More Time'부터 대박을 터뜨렸고, 미국 빌보드 차트는 물론 세계 곳곳의 싱글 차트를 제패하며 단숨에 21세기를 책임질 차기 팝 스타로 발돋움했다. 데뷔 앨범 < ...Baby One More Time > 역시 천만 장 이상의 엄청난 판매고를 달성, 팝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로 꼽힐 정도로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두 번째 작품은 화려한 데뷔에 미치지 못한다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어진 2집 < Oops!... I Did It Again > 또한 1집 못지않은 거대한 성공을 거둔다. 유명한 팝 가수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고,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인기를 구가했다.
깜찍한 소녀에서 화려한 섹시 콘셉트로의 전환을 보여준 3집 < Britney >와 4집 < In the Zone >에서도 브리트니의 위상은 여전했다. 판매량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이 또한 최정상 수준이었고, 특히 'Toxic'의 경우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상징하는 곡이자 팝 역사상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렇듯 꽃길만 걷는 듯하던 브리트니지만 2004년 케빈 페더라인과의 결혼 이후 그의 인생은 기나긴 암흑기에 접어들게 된다. 결혼 이후 계속된 남편과의 불화설, 술과 약물에 빠져 자기관리에 실패한 모습 등이 점차 이미지를 갉아먹었고 정신 상태도 망가질 대로 망가지며 삭발, 문신 등 기행을 일삼기도 했다.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팝 역사에 남을 엄청난 추락이었다.
그녀의 다섯 번째 앨범 < Blackout >은 이러한 암흑기의 한복판에서 발매된 앨범이다. 논란의 여파로 화제가 되긴 했지만 브리트니 커리어 중 처음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지 못했고, 실추된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당시 평단의 평가도 곱지 못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커리어 최고작임은 물론 댄스 팝 역사 위에 군림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지금과 비교하면 정확히 딴판이다.
▲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 Blackout > 앨범 커버 |
ⓒ 소니뮤직 |
< Blackout >이 이러한 당시 상황을 타개하고 지금의 위상에 도달한 데에는 브리트니 본인의 인생 서사가 한몫을 했다. 이후 'Womanizer'를 통해 화려한 부활에 성공하면서 전작인 < Blackout >이 재기의 발판 역할을 한 작품으로 뒤늦게 재평가된 것이다.
그 중심에 당시 심경을 고스란히 담은 브리트니의 가사가 있다. 작품에는 암흑기 내내 그를 괴롭힌 파파라치들, 대중의 비난 섞인 시선, 결혼-이혼 과정에서의 씻지 못할 상처 등에 대한 매섭고 날 선 감정이 잔뜩 실려 있는데, 당시 댄스 팝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던 이러한 가사 구성이 이후 대부분의 댄스 팝, 여성 서사의 정석으로 자리잡으면서 자연스레 브리트니의 이 시도는 혁신의 위치로 올라섰다. 그중에서도 파파라치와 언론의 집착을 "더 내놓으라"는 섬뜩한 음성으로 표현한 'Gimme More', 한 판 붙어보자며 거칠게 도발하는 'Piece of me'는 대표적이다.
작품의 사운드 철학 역시 가사 이상으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날카로운 가사가 담긴 만큼 매섭게 쏘아붙이는 전자음, 한층 톤-다운된 색채는 레이디 가가와 함께 단조로웠던 팝의 문법을 다변화하면서 댄스 팝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그 방식과 완성도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후 팝을 선도한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 빌리 아일리시 등이 모두 그에게 경의를 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 나아가 < Blackout >은 2010년대 발생한 팝의 장르적 발전에도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직계 후손이라 평가받는 찰리 XCX를 기수(旗手)로 삼은 레이블 'PC뮤직'의 일명 '하이퍼팝'은 팝을 넘어 음악계 전반에 건강한 혁신을 이끌어냈는데, 이는 노출도 높은 전자음, 불안정하면서도 찬란한 사운드 구성이라는 작품의 철학과 방법론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다시 말해 팝이라는 장르가 단순히 대중적 측면을 넘어 지금처럼 장르 본연의 구체적인 미학을 갖추게 된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이러한 영향력에 힘입어 < Blackout >을 향한 세간의 평가는 지금도 끊임없이 높아지고 있다. 발매된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이 앨범을 자랑스럽게 리스트에 추가했고, 보수적인 평론지로 알려진 미국 롤링 스톤 또한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 중 하나로 < Blackout >을 뽑을 정도. 당시 상업적 아쉬움과 평단의 매몰찬 눈빛을 끌어안았지만 음악의 완성도와 영향력만으로 재평가받아 팝의 정상에 올라선, 브리트니의 인생처럼 짜릿한 서사를 지녔기에 더 매력적인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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