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트렌드]치열한 미국의 시니어 산업② 자원봉사·공동체
은퇴(隱退)를 뜻하는 영어는 retire다. 더 달리려고 바퀴를 갈아끼운다는 의미다. 언어유희가 아니라 실제로 Re-Tire, 타이어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지난날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 동양권에서 ‘물러난다’는 뜻으로 쓰임과 차이가 있다. 교육 기회가 없는 흑인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전해지는 미국의 사업가이자 시인인 사무엘 울만(1840-1924)은 '청춘(Youth)'이란 시를 78세에 썼다. 청춘은 나이의 문제(not a time of life)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a state of mind)이며,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말이다. 이렇듯 인생이란 좋은 것이고, 점점 나아지는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미국 시니어들은 대부분 노후에도 인생 3막 출발을 위해 봉사활동이나 할 거리를 찾는다.
먼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시니어 센터(Senior Center)’가 있다. 1800년대 ‘노인클럽’에서 시작해 2024년 기준 약 1만1000개가 운영 중이다. 연령층은 60대 중반부터 7080세대까지 함께 이용한다. 우리나라 경로당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정부 보조금과 일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데, 각 센터를 이용하는 노인층에서 자발적으로 기부한 금액이 전체 예산의 3%를 넘는다. 센터별로 회원비를 받지만 저소득층도 부담없는 수준이다. 무료로 제공되는 수업도 많다. 보통 따뜻한 점심 식사를 제공한다. 에어로빅이나 피트니스 기구를 활용한 운동부터 관절염과 낙상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태극권과 워킹클럽까지 다양한 신체 건강 관리 프로그램이 있다. 뜨개질이나 라인댄스, 요리 교실 및 선물용 카드 만들기 등의 취미 활동 외에도 웰니스 프로그램으로 영양학 수업, 금연 및 정신 건강 돌봄 등이 있다.
시니어를 위해 미래를 계획하는 기회들도 있다. 의미있는 인생 만들기, 자존감 강화법, 노후 생활에 부딪칠 수 있는 갖가지 이슈에 대한 대처방안을 알려주는 프로그램, 사회 변화에 적응하기 등이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취업 교육이 흥미롭다. SCSEP(Senior Community Service Employment Program)를 통해, 파트타임으로 지역내 비영리기관에서 일할 수 있게 한다. 노숙인을 위한 담요 뜨기, 유기견 식사 만들기 등 시니어 센터 강좌를 통해 실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연계한다. 또 비영리기관의 구조, 업무 방식, 제도를 배우고 시니어의 기존 직장 경력을 활용해 마케팅, 회계, 행정 등 사무직종으로 시니어 인턴십을 연결해준다. 수업이 교육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장과 연결되는 것이다. 무료 봉사가 주를 이루지만, 성과에 따라서 유료 정규직형으로 발전하기도 한단다.
뿐만 아니라 배려의 폭도 넓다. 지역 센터별로 차이가 있지만, 이민자 비율이 높은 곳에서는 시니어를 위한 영어 실습이나 초기 지역 네트워크 형성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배우 윤여정이 열연한 영화 ‘미나리’에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한국인 이민자 가족 이야기가 나오는데, 말도 통하지 않고 집 외에는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것이다. 또, 지역 학교와 협력해 다세대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은퇴 시니어들이 취미로 시작할 수 있는 원예 활동을 가르쳐주고, 그 시니어들은 동네 아이부터 청소년들에게 식물과 채소에 대해 알려준다. 레크리에이션을 텃밭에서 같이 하기도 하고, 시청의 지원을 받는 ‘커뮤니티 가든’이란 비영리기관에서 무공해 채소를 함께 길러 나눠 먹기도 한다.
이처럼 미국 시니어층은 지역내 자원봉사 참여가 자연스럽다. 종교단체에서 하는 활동을 제외하고도, 만 55세 이상 봉사자 비중은 4명 중 1명꼴인 25%다. 어르신은 공경과 돌봄의 대상으로 생각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니어 봉사활동이 적은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가 있다. 연방정부 주도 아메리코프스(AmeriCorps Seniors)는 시니어 전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공공 영역만이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도 고령자의 경험과 역량을 중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인식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이로써 시니어는 보장성을 강화해야 하는 사회의 짐이 아니라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이며 기여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한다. 또한, 포브스 헬스의 지난달 기사에 따르면, 시니어 센터에서 같은 지역의 사람들과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으로 혜택이 크다고 한다.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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