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서 끊이질 않는 中 스파이 논란, 이유는?

사공관숙 2024. 5.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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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유럽연합(EU) 회원국은 물론 미국의 아태 지역 동맹국 언론에까지 ‘중국 스파이’라는 키워드가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단순 의혹에 그친 이슈성 보도도 많지만 실제 간첩 혐의가 드러나 파문을 일으킨 사건도 여럿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벨기에, 네덜란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호주, 필리핀 등 9개국이 넘는 곳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근래 들어 ‘중국 스파이’ 사건이 부쩍 자주 언론에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영국 BBC는 지난 15일 보도에서 “서방은 그간 중국의 도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첩보 영역에서도 뒤처져 중국 간첩의 위협에 더욱 취약해졌다”고 비판했다. BBC 캡처


가장 최근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건 ‘중국 간첩설’에 휩싸인 필리핀 루손섬 밤반시의 여성 시장 앨리스 궈다. 출신 배경이나 과거 행적이 묘연한 데다 시장실 바로 뒤편 중국인을 주 고객으로 한 온라인 카지노가 ‘로맨스 스캠’(온라인에서 이성에게 접근해 돈을 뜯는 사기 수법) 범죄 소굴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국 BBC가 지난 19일 필리핀 루손섬 밤반시의 여성 시장 앨리스 궈를 둘러싼 ‘중국 스파이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전 세계 언론이 들썩였다. BBC캡처


조사해보니 이 업소 부지의 절반과 헬기 1대가 궈 시장 소유였고 의심스러운 정황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필리핀인, 아버지가 중국인임은 알려졌지만 이달 초 열린 청문회에서 신변 관련 질문에 궈 시장이 구체적인 답변을 못 한 것도 의혹을 키웠다. 영국 BBC가 지난 19일 궈 시장을 둘러싼 ‘스파이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전 세계 언론이 들썩였지만 아직 궈 시장과 중국의 명확한 관계성이 밝혀진 건 아니다.

앨리스 궈 필리핀 밤반시장. 래플러 캡처


필리핀은 한 달 전에도 ‘중국 스파이’ 논란으로 떠들썩했다.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적 교두보 지역에 중국 유학생 수천 명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마닐라타임스 등 현지 매체는 필리핀 정부가 루손섬 카가얀주 투게가라오시 한 사립대에 4600여 명의 중국 유학생이 등록한 상황을 조사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18일 보도했다.

카가얀주는 대만에서 400km 떨어진 필리핀 최북단 지역으로 미군 기지 2곳이 자리 잡고 있다. 필리핀 대학 내 중국 유학생이 많은 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긴장이 고조된 시기에 군사적 요충지 한복판에 중국 학생이 급증한 건 필리핀 군 당국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마닐라타임스 등 현지 매체는 필리핀 정부가 루손섬 카가얀주 투게가라오시 한 사립대에 4600여 명의 중국 유학생이 등록한 상황을 조사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18일 보도했다. JTBC 캡처


수상한 정황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 해군의 핵잠수함 기지가 있는 브레스트 지역에 중국 스파이의 ‘허니팟’(미인계) 공작이 의심된다고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해군 기지에서 일하는 직원과 중국 여학생의 결혼식이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 해군의 핵잠수함 기지가 있는 브레스트 지역에 중국 스파이의 ‘허니팟’(미인계) 공작이 의심된다고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FT 캡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6일 미국 최첨단 5세대 전투기 F-35를 도입하기로 한 스위스에서 벌어진 ‘스파이 소동’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스위스 공군 비행장 근처에서 중국인 가족이 운영하던 ‘호텔 뢰슬리’가 중국 정보기관의 감시 초소로 의심된다며 스위스 연방 경찰이 조사에 나선 것이다.

WSJ은 이들이 진짜 중국 간첩인지, 군사 정보를 수집했는지를 판단할 물증은 아직 없다고 밝힌 한편 해외 거주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스파이가 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2017년 개정된 중국 ‘국가정보법’ 7조에 따르면 모든 중국인은 국가의 첩보 활동과 기밀 유지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최첨단 5세대 전투기 F-35. 게티이미지


앞서 언급한 사례는 중국이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주장할 수 있는 의혹만 무성한 사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속된 말로 ‘빼박’인 정황도 상당수다. 지난 13일 호주 ABC 방송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포코너스’가 밝힌 전직 중국 공안부 소속 비밀경찰의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호주로 망명한 중국 공작원 출신 에릭(가명)은 자신이 2008년부터 2023년까지 해외에서 해온 비밀경찰 활동과 해외 체류 반체제 인사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사냥’ 방식을 상세히 폭로했다.

지난 13일 호주 ABC 방송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포코너스’는 전직 중국 공안부 소속 비밀경찰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ABC 영상 캡처


그 밖에도 중국의 첩보 활동과 간첩 이슈는 올해 들어 부쩍 자주 서방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중국 스파이로 암약한 혐의로 소속 정당에서 제명된 전 벨기에 상원의원 프랭크 크레이엘만 사건(1.15, FT), 네덜란드 군 정보당국이 공개한 중국 정부 지원 해커들의 군 전산망 해킹 사건(2.6, 로이터), 사이버 공격을 일삼아 온 중국 우한 기반 해커 조직 ‘APT 31’에 대한 미국과 영국 당국의 제재(3.25, 로이터), 중국 간첩 혐의로 기소된 전직 영국 의회 연구관 크리스토퍼 캐시와 크리스토퍼 베리 사건(4.22, 영국 더타임스), 중국 국가안전부에 방위산업 기술을 빼돌린 독일 국적자 토마스 F., 헤르비히 F., 이나 F. 사건(4.22, 영국 가디언), 독일 극우정당 독일대안당(AfD) 소속 막시밀리안 크라 의원의 보좌관 궈젠이 EU 의회 협상‧결정 관련 정보를 중국에 넘긴 혐의로 체포된 사건(4.23, 독일 DPA) 등 한 사건이 잠잠해지기 무섭게 또 새로운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식이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독일 남부 도나우에싱겐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극우 정치인 막시밀리안 크라의 마스크를 쓴 시위자가 중국과 러시아 국기를 들고 가슴에 '독재자를 위한 대안'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서 있다.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준비하기 위한 AfD 회의가 열린 가운데, AfD의 유력 후보인 막시밀리안 크라는 보좌관이 중국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고, 스스로도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의심스러운 금품을 받은 혐의로 독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적국을 염탐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스파이 활동은 본디 물밑에서 조용하고 치열하게 이뤄지고, 첩보의 영역은 암묵적인 그림자 지대라 여겨진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작심이라도 한 듯 중국의 첩보 활동이나 관련 의혹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개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전 세계 곳곳에서 중국 스파이의 위협이 점점 더 확대되는 데 따른 미국과 동맹국들의 반격이자 상대적 열세로 인한 불안감과 경계심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쉽게 말해 중국의 위협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데, 이에 반해 각국이 직면한 도전을 단독으로 대응하기 힘드니 동맹국끼리 함께 행동에 나섰다는 뜻이다.

최근 서방 매체들은 앞다투어 중국 스파이 이슈를 보도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27일 보도한 기사. NYT 캡처


BBC는 “서방은 그간 중국의 도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첩보 영역에서도 뒤처져 중국 간첩의 위협에 더욱 취약해졌다”며 “(최근 서방 전역에서 중국 스파이가 체포된 것은) 평소에 숨겨져 있던 서방과 중국 간의 권력 및 영향력 경쟁이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나이젤 잉크스터 전 영국 대외정보국(MI6) 작전국장은 “중국 정보기관은 이미 2000년대부터 산업 스파이 활동에 관여했지만 서구 기업들은 중국 시장 내 입지가 줄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주도의 정보공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수장들이 첫 공개회의를 갖고 중국의 위협에 대해 경고한 것도 기업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행보였던 셈이다.

지난해 10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열린 신흥기술·보안혁신 회의'에 참석한 '파이브 아이즈' 정보 수장들. 연합뉴스


중국과의 첩보전에서 현재 미국과 동맹국들이 직면한 주요 도전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다. 서방과 다른 우선순위와 목표를 가진 중국 스파이, 압도적인 중국의 수적 우세, 중국의 제도적‧기술적 제약에 따른 난도 증가이다.

BBC에 따르면 서방 스파이는 적을 이해하는 ‘정보 수집’ 자체에 집중하지만 중국 스파이는 공산당 정권의 안정을 위해 훨씬 더 전략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2000년 이후 미국 내 스파이 활동 조사’ 보고서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은 핵심 기술 탈취 같은 상업적 스파이 활동 외에도 막대한 양의 개인정보 도용, 정치적 강압 행위, 영향력 행사 등을 추가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서방에서 부쩍 늘어난 해킹 사건과 정치계의 중국 간첩 스캔들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중국 정보당국인 국가안전부가 미국 등을 상대로 정보 수집에 매진하면서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상하이의 캡비전 본사 건물 앞에 보안 카메라가 서 있는 모습. 셔터스톡


첩보 활동에서 중국의 수적 우세는 가히 압도적이다. BBC에 따르면 중국에서 안보‧정보 분야에 종사하는 인력은 약 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EU 외무부는 벨기에 브뤼셀에만 250명이 넘는 중국 스파이가 활동 중이라고 지적했다. MI6는 중국 스파이가 전문 네트워킹 플랫폼 ‘링크드인’을 통해 영국에서만 2만 명 이상의 사람에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CSIS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미국 기업이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지적재산 도용 소송만 1200건을 넘고, 공개적으로 미 국가 안보에 심각한 피해를 준 중국 간첩 사건만 224건에 달한다. 미 군사 전문지 ‘인도-태평양 디펜스 포럼’에서는 중국이 서방 학자와 비즈니스 전문가를 포섭하기 위해 최소 500개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또 중국의 해킹 프로그램 규모와 해커들이 훔친 개인 및 기업 데이터는 다른 모든 국가의 규모를 합친 것보다 많다.

미 군사 전문지 ‘인도-태평양 디펜스 포럼’은 중국이 서방 학자와 비즈니스 전문가를 포섭하기 위해 최소 500개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태평양 디펜스 포럼 보고서 캡처


최근 서방 정보기관이나 공작원들이 중국 정보를 수집하기 더 어려워진 것도 객관적인 사실이다. 중국 국내에 안면 인식과 디지털 추적 기술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 기업이나 정부 기관이 자체 개발 프로그램을 널리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서방 첩보원들의 정보 획득 난도는 더 올라갔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반간첩법’, ‘대외관계법’ 등을 강화하고 나서면서 체포의 위험성도 크게 늘었다. 서방 동맹국 간의 정보 공유 및 협력이 절실해진 까닭이다.

중국 국가안전부(MSS)가 지난달 공개한 영상에서 외국 스파이 역을 맡은 배우가 자신의 여러 신분증을 보이고 있다. 중국 MSS 영상 캡처


BBC는 중국의 스파이 활동을 따라잡기 위한 서방 국가의 노력을 조명한 14일 보도에서 “스파이 활동에 대한 과도한 폭로는 상대국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우려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이런 ‘폭로전’은 첨예한 대립이나 위기 상황에서 자국의 선택지를 줄이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긴장이 고조되고 불신이 난무하는 상황일수록 열린 의사소통 채널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BBC에 밝혔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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