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일상의 신비

2024. 5. 3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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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 대한 동경은 누구에게나 있다. 대신 가까이 있는 것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멀리 있는 것을 동경하는 내면에는 현재에 대한 부정이 깔려 있다. 먼 곳에 대한 동경은 현재가 식상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가 보아도 행복할 것 같은데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먼 곳에 대한 동경은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가까운 곳에 비밀이 숨어 있다.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서 날아오지 않는다. 가상의 사람과는 사랑을 나눌 수 없다. 행복이나 사랑은 가까운 곳에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 멋진 주인공은 나와 거리가 멀다. 매일 부대끼고 만나고 때로는 토라지는 관계 안에서 사랑은 만들어진다. 멀리서 백마를 타고 오는 동화 속 이야기는 현실과 다르다.

정신병에 걸리면 현실 감각이 현저히 떨어진다. 허구의 세계에 갇혀 현실에 대한 이해력이나 적응력이 떨어진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실과 너무 먼 이상은 허구다. ‘지금 여기’라는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매일 마주치는 일상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감동은 가까운 곳에 널려 있다. 매일 하는 일에서 탄성이 터져 나와야 한다.

한라산 정상을 등반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지만 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네 나지막한 산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오를 수 있다. 친구를 새롭게 사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래된 우정을 가꾸는 것이 더 좋다. 가까이 있는 친구가 최고다. 좋은 스승도 가까이 있다. 경청의 태도만 가져도 스승은 어디나 있다. 가까운 곳에서 보배를 찾아야 한다. 문제는 익숙함이다. 익숙해지면 싫증 나고 진부해진다. 그 순간 모든 것은 피상적으로 대하게 된다.

익숙해지면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자 하는 것만 듣는다. 자신의 바깥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때 소중한 것을 홀대하게 된다. 피상적인 일상에서 건져 올릴 것은 없다. 지루하고 밋밋한 일상에 갇히면 신비는 사라진다. 가슴은 더 이상 뛰지 않는다. 그때가 위기다. 활동은 많아지지만 활력은 사라진다. 생존만 있고 생기는 없다.

가까운 곳에 숨어 있는 신비를 알아차리기 위해 일상과 일시적인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플러그를 잠시 뽑듯 잠깐 멈춰야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작업이다. 다시 가슴이 뛰게 해야 한다. 감각의 촉을 갈아야 한다. 어깨가 들썩이고 춤을 추게 해야 한다. 일상을 신선하게 맞이하지 않으면 타성의 늪에 빠진다. 고도의 민감성을 살려야 한다.

스치는 바람에도 가슴이 일렁거려야 한다. 섬세한 눈이 살아나야 한다. 보석을 알아보는 민첩한 눈을 가져야 한다. 숨어버린 것을 찾아내는 것이 실력이다. 주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보배를 보배로 알아보는 섬세한 감각이 곧 실력이다. 가까운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해 내면 그곳에 기적이 일어난다. G K 체스터턴은 우리의 영원한 영적·심리적 과업은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질 때까지 응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들의 꽃 한 송이를 통해서도 깊은 진리에 눈을 뜨게 하셨다. 이전보다 권태가 빨리 찾아 드는 세상이다. 현대인들은 만연한 권태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자극적 즐거움을 찾는다. 삶은 잠시만 방심해도 공허에 휩싸이고 만다. 과거라는 괴물은 나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려면 숨어 있는 신비를 되살려야 한다. 일상을 새롭게 하는 테크닉은 각자의 몫이다. 충격적이거나 특별한 것을 찾지 않아도 된다. 일상 속, 아주 가까운 곳에 가슴이 요동치게 하는 기쁨이 숨어 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담긴 축복을 캐낼 줄 알면 된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향연에 축포를 쏘아 올려야 한다. 강 저편에 대한 로망을 내려놓고 지금 내 곁에 주어진 것,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작은 사건과 사랑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잠시 눈을 감기만 해도 일상 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신비를 목격하고 경이를 발견하는 삶을 살면 내일이라는 시간에 대한 기대감은 더 높아진다.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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