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필터’의 필요

조민영 2024. 5. 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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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이라는 지역을 알게 된 건 최근이다.

코미디언 김민수, 이용주, 정재형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경상도 여행 코너 '메이드 인 경상도'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서다.

지상파 채널을 떠나 유튜브에서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콘셉트를 보여주는 젊은 코미디언들의 대표주자격인 이들의 영상은 한때 자주 봤었다.

비난이 쏟아졌고 피식대학은 영상을 올린 지 8일 만인 지난 18일 결국 사과문을 올리고 영상을 비공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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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영양’이라는 지역을 알게 된 건 최근이다. 코미디언 김민수, 이용주, 정재형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경상도 여행 코너 ‘메이드 인 경상도’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서다. 지상파 채널을 떠나 유튜브에서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콘셉트를 보여주는 젊은 코미디언들의 대표주자격인 이들의 영상은 한때 자주 봤었다. 넷플릭스의 토크쇼나 영미권 팟캐스트를 패러디해 영어로 진행하는 과감한 시도를 한 피식쇼로 백상예술대상까지 받은 이들의 유머는 위험 수위를 넘나들면서도 왠지 모를 지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경상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영양에 왔쓰유예’라는 제목으로 띄운 이 영상이 유튜브피드에 뜬 건 그들에 대한 호의적 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곳만의 어떤 특색이 담겨 있을 거란 기대로 영상을 재생했다가 불편함에 끝까지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간중간 ‘저래도 되나’ 싶은 표현이 너무 충격적이라, 확인하는 심정으로 건너뛰며 봤다. 영양군을 방문한 그들은 식당 주인 앞에서 음식을 노골적으로 폄하하고 이 지역 환경, 특산물 등을 거침없는 표현으로 깎아내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편함은 나만의 몫이 아니었다. 영상은 순식간에 논란의 대상이 됐다. 비난이 쏟아졌고 피식대학은 영상을 올린 지 8일 만인 지난 18일 결국 사과문을 올리고 영상을 비공개 전환했다.

하지만 게시 당시 구독자가 무려 318만명이던 채널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영상이 공개돼 있던 일주일 동안 이미 확산할 대로 확산한 영상을 직간접적으로 봤을 사람은 못해도 수백만명 이상일 것이다. 대부분의 시청자가 그 영상으로 영양이라는 곳을 처음 접했을 테니 너무나 명백한 ‘지역 혐오’를 검증할 길도 없이 ‘재미없고 물이 더럽고 맛있는 음식도 없는’ 곳이란 이미지가 남았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온라인에서, 더구나 개그를 표방한 혐오는 쉽사리 밈(meme·유행어 또는 패러디)으로 진화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된다.

더욱이 이번 영상을 그저 그런 유튜버의 말실수 정도로 보긴 어렵다. 이번 논란 속에 29일 현재까지 20만명 가까운 구독 취소로 구독자 수가 298만명대로 내려앉았다고는 해도 여전히 수백만명의 시청층을 보유하고 있다. 라이브로 진행하던 중의 돌발 상황이 아닐뿐더러 편집을 거쳐 만든 영상 전반이 고루 조롱기로 가득했다. 그런 영상이 가능했던 건 결국 ‘이렇게 해도 웃기니 괜찮다’는 식의 무례함과 오만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아슬아슬한 풍자, 날것의 재치가 조롱과 혐오로 변질되는 경계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는 누구도 말하기 어렵다. 코미디가 어려운 건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야 해서다.

피식대학의 논란에 대해 선배 코미디언 박명수가 남긴 충고는 그런 점에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웃기기 위해 뭐든 할 수 있지만 남을 폄하하거나 남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 안 된다”면서 “코미디언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선은 지켜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저기까지 가지는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시청자든 출연진이든 가리지 않고 호통치는 ‘버럭 명수’답게 직언을 한 것이다.

그는 특히 “1인 미디어 시장이 많이 커져서 모니터링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저 같은 경우는 10명 이상 모여 서로 의견을 얘기한다”고 말했다. 웃음 뒤에 숨어 확산할 수 있는 혐오를 거를 ‘필터’를 스스로 장착해야 한다는 의미다. 구독자 수백만명 채널의 힘을 가진 콘텐츠 창작자에게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너무 쉽고 빠르게, 많이 만들어지는 콘텐츠 르네상스를 지켜내기 위한 ‘필터’의 필요성을 공유할 때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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