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지속가능한 공급망 만들겠다는 EU
갖춰야 EU서 기업활동 가능
늦어도 2027년부터 적용
EU가 주창한 규제, 글로벌
스탠더드된 사례 많아
국내 기업 청정에너지 사용 등
대폭 안 늘리면 국제 공급망
편입 갈수록 어려워질 가능성
유럽연합(EU) 이사회가 지난 24일 ‘기업의 지속 가능한 실사지침(CSDDD)’을 최종 승인했다. 2020년 4월 EU 집행위가 처음으로 계획을 발표한 이래 4년 넘게 걸린 입법 과정을 끝냈다. 지침이 적용되는 기업은 직간접 공급망 내에 인권 침해나 환경 기준을 위반하는 경우가 있는지 미리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관련된 이해관계자와 협력을 강화하고 기후전환계획을 수립하며 이행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이를 위반했을 때는 해당 기업의 전 세계 매출액의 5%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지침은 관보 게재 20일 후 발효될 예정이다. 발효 후 2년 내 회원국에서 국내법으로 전환되면 늦어도 2027년부터 EU 역내 및 역외 기업에 적용되기 시작해 2029년에는 4억5000만 유로 이상의 순매출을 기록하는 모든 기업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EU 역내에서만 해도 적용 대상 기업이 5400여개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지침은 EU에서 영업하는 한국 대기업들뿐만 아니라 그 대기업과 하청 관계에 있는 우리 중소기업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화 이후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은 국제화되고 매우 복잡해졌는데, 공급망상의 여러 문제를 파악해 인권이나 환경 기준으로 볼 때 합당한지 확인하는 의무가 대기업 또는 최종 모기업에 새롭게 부과된 것이다. 공급망 실사 범위도 광범위하다. 상류부문(업스트림) 비즈니스 파트너의 생산, 서비스, 설계, 채굴, 조달, 운송, 보관, 원자재·상품·부품 공급, 상품 개발과 하류부문(다운스트림) 비즈니스 파트너의 유통, 운송, 보관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EU는 최근 경제 규모도 상대적으로 위축돼 글로벌사우스(개발도상국)와의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미국과의 소득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미래 규제를 만들고 선도하는 역할은 이어나가고 있다. EU 역내에서 환경과 노동 및 인권 기준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EU 역내 기업들에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역내 시장을 매개로 자신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 세계 기업들에도 비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규제를 계속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탄소 관세에 해당하는 탄소 국경조정제도나 이번 공급망 실사지침이 그 대표적 예가 된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EU가 주창한 규제가 미국 등 서방 7개국에서 인정받으면 곧 전 세계로 퍼지곤 했다. 더욱이 일부 에너지 관련 환경 규제는 중국이 오히려 앞서나감으로써 규제의 확산이 더 빨라지기도 한다.
이 조치는 지침(directive)이다. EU 입법 조치 중 즉각 적용되는 규정(regulation)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일단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이점은 있다. 회원국의 국내 입법 조치가 완비되고 나서야 적용되기 때문이다. 다만 회원국에서 개별적으로 추후 도입되는 법적 규제가 이번 지침보다 더 엄격할 수 있기 때문에 2027년 이후라도 회원국 간 입법 조치의 차이를 잘 인지하고 있어야 기업 활동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또 2025년부터 공시 의무가 있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적용 대상 기업은 공급망 실사지침 이행 의무가 면제되는데, 어차피 CSRD가 지속가능성에 대한 공시 의무를 부여하는 지침이므로 공급망 실사지침 이행 의무 면제가 특별한 혜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침이 유럽의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당초 안보다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적용 대상 기업의 매출액 기준이 올라가서 대상 기업 수가 줄었고 적용 시점이 3개년에 걸쳐 단계별로 적용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경과 인권 분야에서 취약한 대표적 산업인 섬유, 가죽, 의류, 농수산, 철강, 원유, 가스 분야가 적용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연근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여권을 일부 선장들이 ‘보관’하는 잘못된 사례가 모두 실사지침의 대상이 될 뻔했다. 하지만 국내에 소재하는 우리 기업들이 사용하는 청정에너지 비율이 대폭 확대되지 않는다면 우리 기업들이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은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될 국가적 과업이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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