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흔들림을 잡아주는 소중한 이들
마음은 절대 아니라 우겨도 나이 듦의 흔적은 몸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휴대폰 화면에 입력하는 짧은 문자 속 오타가 늘어난 지도 이미 수년째입니다. 계속 틀리는 철자에 화를 내봐도 그 대상은 본인인지라 상처는 두 배가 됩니다. 팔꿈치가 아파서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한방병원에서 침을 맞아도, 마사지로 근육을 풀어도 도통 차도가 없습니다.
최근에는 정체 모를 이명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질의한 결과물들은 단순한 스트레스에서 온갖 무서운 질환의 전조증상까지 그 스펙트럼이 광대합니다. 너무나 많은 원인과 해결책들로 가득 찬 웹상의 페이지들로 질식할 듯 헤매다, 어느새 고양이가 금붕어를 쳐다보는 동영상으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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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임수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
올바른 판단은 점점 어려워져
혼자 똑똑해지는 것으론 한계
서로를 돌보는 것이 더욱 필요
」
포기하고 살던 중, 다른 일로 온라인 게시판을 둘러보다 “3년간 고생하던 이명을 이렇게 고쳤다”라는 한 게시글의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생각도 안 한 장소에서 ‘우연히’ 환우의 극복기를 발견하고 홀린 듯 누르자 몇번이고 스크롤이 필요한 장문의 글이 따라왔습니다.
내용은 먼저 본인이 지난 3년간 얼마나 고생했고 수많은 치료법을 모색했는지 알려주겠다는 호의에 가득 찬 서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다음 본인이 찾아본 치료법을 하나씩 열거해 나갑니다. 신경외과, 통증의학과, 이비인후과에서 시작하여 한방병원과 마사지, 필라테스, 요가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이 효과적이었는지 차례차례 자세히 설명해주는 글쓴이의 친절함에 감동의 물결이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찾은 꿀팁을 공유하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더욱 눈이 아닌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약해보면 이명의 원인은 다름 아닌 ‘거북목 증후군’으로, 그 해결책은 평상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스트레칭을 해서 근육의 긴장을 풀라는, 그야말로 ‘국·영·수를 중심으로 예습복습을 하라는’ 예전 입시 성공 전략과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허무해질 무렵 추가적인 묘법을 알려줍니다. 자세를 곧게 하기 전 온열기로 목 주위로 근육을 이완시키고 마사지를 한 후, 목 교정기를 쓰라는 이야기와 함께 친절하게도 온열기의 상품 링크까지 넣어주었습니다.
눌러보니 제품 정보와 함께 구매링크까지 들어있어 바로 주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결제창에 이르자 1+1로 사면 추가로 30% 할인해 준다는 말에 가족에게 선물하기 위해 9만9000원에 두 개를 주문했습니다. 뿌듯한 마음에 주문을 끝낸 후, 옆에 있던 지인에게 자랑스레 설명하자 곧장 돌아오는 대답은 ‘뒷광고 메시지를 누른 것 아니야?’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아차 싶은 마음에 다시 세세히 글을 읽어보았더니 그 상세한 메시지 속 외부 링크는 단 하나, 그 상품 정보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주문을 취소하며 걱정한 것은 결제 취소가 제대로 될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행히 돌아온 신용카드의 취소 문자에 마음을 놓으며 지인에게 감사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불과 10분 사이에 나의 마음을 샀던 게시판의 글이, 사실은 꾸며진 글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든 생각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어떤 소비자들에게는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진 유튜브 속 건강보조식품 간접광고 동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쉬임없이 다가옵니다. 후미진 상가에서 나이 든 분들을 모아놓고 화려한 언변과 노랫가락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형성하고는 무리한 액수로 상품을 넘기는 탈법 영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새로운 매체의 현란한 현혹에 과도한 금액을 결제하고 마는 잠재적 피해자들은 늘 비슷한 어려움에 노출된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사기에 흔들리는 것은 내가 어리석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의 이치에 밝고 또랑또랑하게 살기에 나는 결코 그런 어설픈 수법에 속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지만, 알뜰폰이 본인의 이름으로 개통되었으니 확인하라는 문자나 해외에서 카드가 결제되었으니 통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면 나도 모르게 반응하곤 합니다. 무엇보다 이메일로 온 유려한 영어 사업제안에 흔들리는 마음은 지금 내 직업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결코 속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음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처럼 미혹해진 나의 마음에 경각심을 다시 불어 넣어준 내 옆의 총명한 지인들이 늘 내 곁에 있기를 희망하는 것을 보면서 저 역시 나이 들어감을 더욱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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