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윤석열과 한동훈의 원샷 게임
원래 가까운 사이가 다투고 나면 더 멀어지곤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그렇다. 윤 대통령 말마따나 “(한 전 위원장은) 20년 넘도록 교분을 맺어온 사람”이다. 하지만 한 전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당권을 쥔 뒤 두 사람은 급속도로 멀어졌다. 여러 전언을 종합하면 양쪽 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차갑게 식은 건 분명한 듯하다. 오죽하면 “이재명보다 한동훈을 싫어할 것”이란 말까지 나오겠나. 실제 이미 점심 한 끼도 같이 못하는 사이 아닌가.
이렇게 서로 신뢰하지 않게 된 두 사람은 앞으로의 정치 여정에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풀어보면 이렇다. 두 사람이 서로를 믿는다면 사실 협조할 건 협조하고 견제할 건 견제하며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게 제일 좋다. 윤·한 갈등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약속 대련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듯이 서로 믿는 사이라면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윈윈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은 이제 현저히 줄었다. 대신 어느 한 사람이 상대방에 먼저 공세를 취하는 방식이 있다. 가만있다 뒤통수를 맞느니 선제 공격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에 쌍방이 서로에 공격적이다 보면 결국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게 바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서로 믿으면 최선의 결과가 나옴에도 믿지 못하니까 결국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를 만류하는 부류 중엔 저런 딜레마 상황을 우려해 조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죄수의 딜레마가 생기는 건 반복되는 게임이 아니라 일회성의 원샷 게임이라서다. 차기 대선 이후에 윤 대통령은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니니 말이다.
지금 여권에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 전 위원장의 당권 도전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친한계니 하는데 진정 한 전 위원장을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친윤계인 줄 알았더니 이미 친한계로 돌아선 사람들만 봐도 ‘○○계’라는 분류가 얼마나 부질 없음을 알 수 있지 않나.
앞으로 한 전 위원장의 정치 행로에서 윤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은 필수다. 아니면 최소한 2012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처럼 일종의 확약이라도 맺어야 더 나은 정치적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온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은 이미 숱하게 딜레마에 빠진 피의자를 봐왔을 테니 말이다.
허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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