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의 사람사진] '뒷것' 청년 김민기

권혁재 2024. 5. 3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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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의 미소


권혁재의 사람사진 / 김민기

30여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사진을 모아둔 박스를 뒤졌다.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본 후
김민기 대표의 사진을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 흑백 필름으로 그의 사진을 찍었다.

개중 몇장을 사진으로 인화하여 보관해 둔 터였다.
그런데 회사며, 집이며 어디에도 사진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낭패였던 기억이 스쳤다.
오래전 쏟아진 음료수로 인해 엉겨 붙은 사진들을 버린 기억이었다.

참 어렵사리 그를 만난 터였다.
알다시피 당시 그는 인터뷰를 고사하기로 정평 나 있었다.
스스로 ‘앞것’이 아니라 ‘뒷것’을 자처했기에 나서길 꺼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인터뷰에 나선 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위해서였다.
결국 ‘앞것’을 위해 ‘뒷것’이 나서는 어려운 맘을 낸 자리,
그 자리에서의 사진이 없어진 것이니 여간 맘이 쓰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사진을 저장해둔 CD 꾸러미를 뒤졌다.
다행히도 거기에 ‘김민기’라 적힌 CD가 떡하니 나타났다.
바로 그 흑백사진을 스캔해서 저장해둔 CD였다.

며칠 만에 찾았지만, 요즘 컴퓨터엔 CD를 읽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
회사로 달려가 CD를 읽을 수 있는 컴퓨터를 수소문해 그것을 넣었다.

이 사진은 30여년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었다. 첫째는 의자에 앉았음에도 구태여 한 양반다리 자세였다. 둘째는 무뚝뚝하다는 소문과 달리 수시로 보였던 웃음이었다.

두근거리는 기다림 끝에 나타난 사진 석 장.
사진 속 젊은 그는 웃고 있었다.

세 번째 또한 김민기 대표가 웃고 있는 사진이다. 그날 찍은 많은 사진 중 유독 웃는 모습만 사진으로 인화한 까닭은 그만큼 김 대표의 웃음이 특별했기 때문일 터다.

늘 무덤덤하기로 정평 나 있었건만,
그날 그는 학전을 이야기하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보였다.

1995년 8월 김광석의 1000회 기념 공연 또한 학전에서였다. 이렇듯 학전은 들국화,안치환,강산에 등 무수한 음악인의 터전이었다.

그날 그가 말한 학전은 지난 3월 15일 문을 닫았다.
아울러 73만명이 넘는 누적 관객, 4257회 공연 기록을 세운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또한 지난해 12월 31일 운행을 멈췄다.
하나, 그가 품은 ‘배움의 터전' 학전(學田)은 늘 우리 안의 터전이 될 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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