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묵의 과학 산책] 지피지기
손자병법에 이르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적과 나, 싸움, 그리고 위태로움을 해석하는 것에 따라 병법을 넘어 두루 적용된다. 사회생활의 경쟁도 해당된다. 승패는 무엇이 진정한 승리인지 보기 나름인 면이 있으니, 위태롭지 않음을 큰 문제 없이 장기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경쟁이 아닌 경우도 있다. 수업에서는 청중이 ‘적’이 되고 ‘싸움’은 강의하는 것이다. 이때 적과 싸움은 본래 의미를 떠난 상징적 용어이다. 나와 학생들 지식 수준의 차이를 알아야 강의 내용을 조절할 수 있고 위태로운 정도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고 지식 전달을 할 수 있나가 된다. 전문가 육성, 혹은 폭넓은 지식 전달 등 그 초점에 따라 좋은 강의의 기준은 바뀐다. 비슷한 상황은 공연·예술 등 다른 분야에도 적용된다.
이 모든 경우 핵심은 상대방과 자기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일 수도 있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때 적을 알고 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 처한 상황과 해야 할 일 등을 파악하는 것이고 싸움과 위태로움은 실천 의지와 끈기의 문제로 귀결된다.
더 근본적으로 적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면역체계의 핵심 문제이기도 하다. 면역 반응에 특히 중요한 T세포와 B세포들은 나와 남을 식별할 수 있도록 철저한 훈련을 받지만 그래도 완벽하지는 않다. 암세포는 적으로 바뀐 나다. 내 세포를 오인 공격하면 자가면역이 되고, 무해한 물질에 반응하면 알레르기가 된다. 지피지기,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논어의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라’는 가르침을 우리 몸의 면역체계도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백전백승은 아니라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큰 위태로움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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