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담겼으면 어쩔 뻔”…경남까지 날아갔다
29일 오전 7시16분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의 한 주택. 북한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이 마당으로 떨어졌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화생방이나 세균 등 위험 물질이 있을 수 있으니 일단 풍선에 접근하지 말고 대피하시라”고 안내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곧바로 주변을 통제했다. 이어 인근 군부대에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화생방신속대응팀과 폭발물처리반이 함께 출동해 오물 봉투를 수거했다. 군 당국이 수거한 오물 봉투에선 대변 거름과 페트병 등 다양한 쓰레기가 발견됐다. 5시간가량 뒤인 낮 12시8분 철원군 동송읍 오지리의 한 비닐하우스 위에서도 대변 거름 등 각종 쓰레기가 담긴 오물 풍선이 발견돼 군 당국이 수거 작업을 했다.
북한의 대남 전단 살포용 풍선이 접경지역인 강원도와 경기도는 물론 경북 영천과 경남 거창, 전북 무주 등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발견됐다. 이날 오전 9시51분 경남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논에도 오물 풍선이 떨어졌다. 접경지에서 직선거리로 280㎞ 이상 떨어진 곳이다. 당시 약 5m 높이 풍선 2개에 비닐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는데 주머니 속에는 페트병을 자른 플라스틱 조각과 종이 쓰레기 등이 들어 있었다.
거창군에서 산양삼·사과 농사를 짓는 이명진(36)씨는 “만약 풍선에 세균이나 화학물질 같은 게 들어 있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사람한테도 위험하지만 청정도시 거창은 농업으로 먹고사는데, 수백㎞를 날아온 풍선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 사람까지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7시40분쯤 경북 영천시 대전동 한 포도밭 비닐하우스 위로 오물 풍선이 추락했다. 밭 주인은 경찰에 “신고 약 10분 전 ‘쿵’하는 소리를 듣고 밭에 나갔다가 파손된 비닐하우스 옆에서 폐비닐 더미와 오물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오전 5시45분 전북 무주군 무주읍에선 전봇대 전선에 걸린 오물 풍선이 발견되기도 했다. 무주군 한 주민은 “풍선 안에 흙·오물이 들어 있고, 거기에 소량의 화학 약품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며 “피해는 없었지만 풍선에 폭탄 같은 무기를 실을 수 있다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했다.
한밤중에 온 재난문자에 표기된 ‘Air raid’(공습) 표현 탓에 경기·서울 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28일 오후 11시34분 파주·고양·연천·의정부·포천·남양주·동두천·양주·수원·오산·평택·용인·안성 등 경기도 내 13개 시·군에 ‘북한 대남전단 추정 미상 물체 식별. 야외 활동 자제 및 식별 시 군부대 신고. Air raid Preliminary warning [경기도]’라는 내용의 재난문자가 발송됐다. 일부 서울 주민도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재난문자를 받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재난문자에 영문으로 ‘air raid’라고 표기된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전쟁난 줄 알았다. 대피해야 하는 상황인가 싶어서 옷을 챙겨 입고 불안해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파주시 민통선 내 마을인 해마루촌에 거주하는 조봉연씨는 “늦은 밤 요란한 경보음에다 ‘대남전단 추정 미상 물체 식별’ ‘야외 활동 자제 및 식별 시 군부대 신고’라는 내용의 문자를 받고 깜짝 놀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 서울시 마포구 주민 A씨는 “당시 조금 일찍 잠들었는데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고 했다.
철원·파주·거창=박진호·전익진·손성배, 안대훈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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